‘투 피치’ 조롱받던 김광현, 커브로 빅리그 홀렸다

중앙일보

입력 2020.03.1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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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세인트루이스 김광현이 지난달 27일 마이애미전에서 역투하고 있다. 그는 시범경기에서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세인트루이스 김광현이 지난달 27일 마이애미전에서 역투하고 있다. 그는 시범경기에서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김광현의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투구 33개를 분석했는데, 그는 주로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에 의존했다. 커브를 좀처럼 던지지 않았다.”

2018년까지 주로 직구·슬라이더
커브·스플리터 던진 뒤 미국행
완급조절 덕에 시범경기 무실점
선발진 진입에도 청신호 들어와

미국 야구통계사이트 브룩스 베이스볼에 나와 있는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투구 분석 글 중 한 부분이다. 그는 ‘투 피치 투수’였다. 시속 150㎞가 넘는 빠른 직구와 슬라이더, 두 가지를 섞어 던졌다. 슬라이더는 시속 140㎞를 넘나들었고, 바닥에 박힐 정도로 떨어졌다. 그의 슬라이더에 타자 방망이는 연신 헛돌았다. 명품 슬라이더로 그는 KBO리그 2년 차였던 2008년 최우수선수(MVP)가 됐고, 한국 야구 최고 좌완 투수로 군림했다.

메이저리그(MLB)는 투 피치 투수를 마이너스 이력으로 봤다. 김광현은 2014년 시즌 뒤, SK 와이번스 허락을 얻어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MLB에 도전했다. 그는 “직구와 슬라이더만 던지는 투 피치 투수여서 빅리그에서 통하기 어렵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그에게 관심을 보였는데, 입찰액이 200만 달러(24억원)였다. 그에게 제시한 연봉은 100만 달러(12억원)에 그쳤다. 결국 KBO리그에 남았다.

김광현은 ‘투 피치 투수’ 꼬리표를 떼기로 마음먹었다. 2015년부터 커브와 체인지업, 스플리터 등을 익혔다. 꼬리표 떼기는 쉽지 않았다. 스프링 캠프에서 열심히 구종을 익혔다. 시범경기에서도 “올해는 다른 구종을 더 많이 구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정규리그에 들어서면 직구와 슬라이더에 의존했다. 2016년 말 왼쪽 팔꿈치 수술을 받아 2017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김광현 MLB 시범경기 일지

김광현 MLB 시범경기 일지

2018년 복귀한 김광현은 천천히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포 피치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전체 투구 중 85~90%였던 직구(39.1%)와 슬라이더(37%) 비중을 낮췄다. 커브(9.5%)와 스플리터(14.5%)를 많이 던졌다. 그는 “우타자 바깥쪽을 공략하려면 스플리터가 필요하다. 또 슬라이더와 확연히 구분되는 느린 공이 필요한데 커브가 제격”이라고 말했다.

MLB 입성에 실패한 지 5년 만에 김광현은 투 피치 투수라는 꼬리표를 뗐다. 지난해 말 MLB 문을 다시 두드렸고, 세인트루이스와 2년 연봉 총액 800만 달러(96억원)에 계약했다. 투 피치에서 포 피치가 되면서 연봉이 4배나 상승했다. 현재 진행 중인 MLB 시범경기에서 5년간 연마한 커브와 스플리터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특히 시속 120㎞ 미만의 커브 덕분에 빠른 직구와 슬라이더의 위력이 극대화됐다.

현지 중계진은 김광현의 커브를 보며 “떨어지는 폭이 훌륭하다”고 칭찬한다. 10일(한국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 마이어스의 해먼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네소타 트윈스전에서도 커브를 잘 활용했다. 김광현은 1회 맥스 케플러에게 초구 직구, 2구 커브를 던졌다. 빠른 공과 느린 공을 보여준 뒤, 3구째 빠른 공으로 헛스윙을 끌어냈다. 이어 조시 도널드슨에게는 초구에 느린 커브, 2구에는 빠른 직구를 던졌다. 도널드슨은 결국 삼진당했다. 케플러와 도널드슨은 지난 시즌 각각 홈런 36, 37개를 친 장타자다. 하지만 김광현의 구속 조절 투구에 고개를 숙였다.

김광현은 이날 3이닝 동안 2안타만 내줬고, 무실점 호투했다. 탈삼진은 4개였다. 시범경기 4경기 연속 무실점에, 8이닝 동안 탈삼진 11개다. 평균자책점은 0이다.

새로운 별명도 생겼다. 영어 이름(Kwanghyun Kim)에 K가 2개 있어 ‘KK’로 불린다. K는 탈삼진을 뜻한다. 탈삼진 쇼를 펼치는 그에게 잘 어울린다. 5선발 경쟁에서도 앞서나간다. 마이크 실트 세인트루이스 감독은 “김광현은 훌륭하고 강력한 (5선발) 경쟁자다. 어떤 환경에서라도 스스로를 잘 조절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칭찬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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