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무질서 속의 질서, 갯벌에도 배추밭서도 보인다

중앙일보

입력 2020.03.10 13:00

[더,오래] 주기중의 오빠네 사진관(17) 

자연은 아름답고 신비하며 강렬합니다. 만물의 근원인 자연은 역사적으로 인간의 멘토 역할을 충실히 해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사랑받는 예술 작품은 자연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과학기술문명은 자연법칙과 닿아 있습니다. 자연은 겉으로는 무질서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를 자세히 관찰하면 일정한 규칙을 따라 반복해 나타나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패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질적인 사물 사이에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패턴도 많습니다. 훌륭한 예술가는 이를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고 작품으로 형상화합니다.

사진1. Cherry Blossom, 2018. [사진 김형기]

사진1. Cherry Blossom, 2018. [사진 김형기]

사진1은 화가이자 사진가인 김형기의 ‘Cherry Blossom, 2018’입니다. 벚꽃나무 같지만 자세히 보면 좀 다릅니다. 의학적으로 촬영한 쥐의 귀 혈관 사진에 꽃을 그려 넣었습니다. 작가는 혈관 사진에서 나무의 패턴을 읽었습니다. 작품 속에 자연의 섭리가 녹아 있습니다. 작가적인 상상력으로 혈관과 나무, 꽃을 연결합니다.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키며 큰 깨우침을 줍니다.

 사진2. 프렉탈, 2012.

사진2. 프렉탈, 2012.

사진2는 영종도 상공에서 본 갯벌의 모습입니다. 물이 빠지자 갯벌의 수로가 드러납니다. 그 형태가 나무 같습니다. 혈관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사진3. 겨울나무, 2017.

사진3. 겨울나무, 2017.

사진3은 눈 맞은 나무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나무 이상의 뭔가가 느껴집니다. 온몸을 아프게 콕콕 찌르는 것 같습니다. 신경세포, 뉴런(neuron)의 패턴이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예민한 사람은 이를 더 잘 느낍니다.

사진4. 안반데기. 2014.

사진4. 안반데기. 2014.

사진4는 수확이 한창인 강원도 고랭지 채소밭입니다. 산악형 지형인 데다 규모가 커서 트럭이 밭으로 들어가 배추를 실어 나릅니다. 자동차 바퀴 자국이 나무 모양의 패턴을 남겼습니다.

패턴이 비슷한 이유는 움직임의 원리가 같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양분이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운반하는 시스템입니다. 혈액은 산소와 에너지를 신체 곳곳에 운반하며 신진대사를 돕습니다. 뇌와 연결된 신경은 통증과 같은 자극을 운반하며, 뇌로부터 몸의 움직임을 전달합니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얻은 에너지를 잎맥을 통해 나뭇가지 끝까지 운반합니다. 산에서 발원한 강은 낮은 곳을 향해 지류를 만들고 영양분을 공급합니다. 우리는 이 강물을 마시고, 농사를 짓습니다.

나무형 패턴은 ‘분배와 순환’이라는 메시지를 담게 됩니다. 좋은 사진은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킵니다. 사진을 공부한다는 것은 자연과 세계를 추상적으로 보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주특별한사진교실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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