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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백두대간" 노르웨이 청년에게 이 말을 들을 줄이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38)

산티아고 가는길을 가리키는 노란 화살표. 각종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어 도시를 장식하기도 한다. [사진 박재희]

산티아고 가는길을 가리키는 노란 화살표. 각종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어 도시를 장식하기도 한다. [사진 박재희]

까미노 17일차_ 마데이라(Sao Jao da Madeira)에서 그리조(Grijo)까지 19km

“만날 사람은 언제든, 어디서든, 어떻게든 만난다.” 포트투 입성을 앞두고 그리조에서 쉬는 날로 정한 오늘 까미노가 알려준 법칙이다.

어렸을 때 누가 먼저 먹종이를 태우는지 경쟁하는 놀이를 한 적이 있다. 돋보기를 통과한 햇빛의 알갱이를 한 곳에 고정해 초점을 만들어야 한다. 먼지처럼 작은 점에 연기가 피어나기 시작하면 이내 일그러진 동그라미 모양으로 재가 되어 타는 부분이 넓어졌다. 그리조까지 걷던 9월의 그 날, 나는 자주 정수리에 손을 갖다 대며 그때 먹종이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 태워 재를 만들던 먹종이처럼 머리카락에 불이 붙고 있는 것 같았다. 태양은 조만간 나를 태워서 연기처럼 사라지게 할 거라고. 맹렬한 여름의 끝이었다.

새벽부터 걸어 시에스타가 시작되기 전에 겨우 도착했는데 그리조의 숙소 대문은 완고하게 닫혀있었다.

포르투갈을 걷다보면 벽에도 바닥에서도 자주 포르투갈 사람들의 그래피티 본능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포르투갈을 걷다보면 벽에도 바닥에서도 자주 포르투갈 사람들의 그래피티 본능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오후 4시 오픈’. 그렇게 매정한 안내문은 난생처음이라고 생각했다. 타죽기 전에 들어갈 곳을 찾아야 했다. 허겁지겁 주변을 돌다가 시에스타에 맞춰 임시 셔터를 내리고 있는 카페에 가까스로 몸을 꾸겨 넣고 나서 알았다. 그 매정한 안내문이 실은 오후 4시까지 천국을 예고해준 것이었음을. 포르투갈의 깊은 시골에 냉방이 되는 카페였다. 심지어 아이스커피를 마실 수 있다니! 길에서 타버리거나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내일 걸어서 포르투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늘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펄펄 끓더라. 그치? 넌 어디서 왔어?” 대각선 테이블에서 책을 읽고 있던 그가 물었다. 일찌감치 도착한 듯 여유 있는 모습의 그 친구는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왔다고 했다. 타리아이가 그의 이름이다. 아무리 지구온난화로 이상기온이라지만 9월 말 포르투갈에서 38도가 넘는 더위를 견뎌야 할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노르웨이에서 왔으니 정말 적응 안 되겠다. 난 한국에서 왔는데 지금 한국은 초가을이야.” 한국 사람이라는 말에 환하게 안색을 밝힌 그의 입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단어가 튀어나왔다. 백두대간.

“백두대간? 네가 백두대간을 어떻게 알아?” 발음이 비슷한 다른 말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또박또박 네 음절로 ‘백두대간’을 말한 데 이어 그가 덧붙였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모두 걸었다고. 백두산, 돌강, 칠보산, 개마고원, 금강산에 올랐고 남한에서도 설악산에서 지리산까지 그리고 다시 한라산 백록담에도 갔었노라고.

그리조에서 만난 타리아이. 여행중 최대한 디지털기와 멀리 지낸다. 그가 지니고 다니는 폴더폰.

그리조에서 만난 타리아이. 여행중 최대한 디지털기와 멀리 지낸다. 그가 지니고 다니는 폴더폰.

“북한의 칠보산과 개마고원을 잊을 수가 없어. 정말 아름다웠어.”

금발의 외국인 청년이 금단의 땅인 북한의 지명을 말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땅이 유럽인에게는 관광비자를 받아 들고 갈 수 있다는 곳이라는 사실이 새삼 낯설고 비현실적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고 노래를 잘하는 것 같아. 남한과 북한 어디서든 만난 사람들 모두 그랬어.” 타리아이가 남과 북 사람을 말하며 차이를 두지 않는 것에 아득할 정도의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가 북한에서 촌부에게 감자소주를 얻어 마신 이야기, 술을 마시면 흥이 넘치던 사람의 얘기를 했는데 정작 난 같은 민족인 그들의 모습을 쉽사리 상상할 수 없었다. 극단적인 반공과 냉전 시대에 도깨비 얼굴을 한 북한 사람의 모습으로 교육받았던 시절로부터 어쩌면 내 의식은 그다지 많이 성장하지 못한 것일지도 몰랐다.

타리아이는 남북한의 백두대간 전체를 종주한 몇 안 되는 외국인이다. 남한 사람도 북한 사람도 할 수 없는 경험을 한 외국인이 내 앞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놀라웠지만, 이 노르웨이 청년과 나를 정말 놀라게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도 나도 몰랐지만 우리는 이미 수년 전부터 타자에 의해 서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이다.

2015년 봄이었다. 뉴질랜드 경찰관 출신 탐험가이자 산악인 로저쉐퍼드가 대한민국의 광복 70주년을 맞아 남북한 백두대간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당시 국내 포털에서 소셜 펀딩이 이뤄지고 있었다. 남과 북이 교통할 수 없다고 해도 한반도는 백두대간으로 연결돼 민족의 정신과 기백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백두대간을 사진과 책으로 기록하고 전시해보자고 했다. 나는 기부자로 참여했었다. 수많은 기부자 중 한 사람이었을 뿐이지만 나는 펀딩에 참여한 사람이고 타리아이는 펀딩이 만들어낸 그 계획을 이뤄낸 사람이다. 그런 두 사람이 유럽 서쪽의 순례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신기했다.

“지구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 서로 왕래할 수 없는 사람들의 땅을 두 다리로 걸어 연결한 경험이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좀 마음이 아팠어.”

분단국의 산하를 연결하는 마음으로 걸었다는 외국인 청년은 언젠가 개마고원과 칠보산을 걸을 수 있기를 바라는 한국여자 앞에 나타나 말해준 것이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만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난다는 것을.

숙소에 가장 마지막으로 등장한 페이지와 조안. 약속이 없이도 계속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숙소에 가장 마지막으로 등장한 페이지와 조안. 약속이 없이도 계속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알베르게 마감 무렵 마지막 두 자리가 남았을 때 도착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내려다보았다. 다시 페이지와 조안이다. 까미노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진다. 약속을 해봐도 다시 만나지 못하는가 하면 약속을 하지 않아도 계속 만난다. 만날 사람은 어디서든 언제든 어떻게든 만나는 것이다.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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