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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비건 되기로 결심? 우선 간헐적 채식부터 해보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유재욱의 심야병원(66)

오늘 연주곡은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 이다. ‘부산에 가면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하며 운을 뗀 이 서정적인 노래는 달맞이 고개와 광안리에서의 옛사랑을 추억하지만 결국 파도에 부서져 깨진 추억의 조각을 서로 마주 보는 것으로 조용히 끝난다.

워낙 독창적인 창법을 구사하기 때문에 악기를 통해서 그 감흥을 표현하기에는 많이 모자람이 있다. 다만 그 허스키 보이스와 낮게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는 첼로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바야흐로 비건(vegan) 열풍이다. 비건은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의미한다. 주위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육식을 멀리하거나, ‘나는 채식주의자다’ 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봤어도 우리에게 비건은 아직 생소한 단어다. 하지만 서양의 역사를 보면 꼭 종교적인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의도적으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우리가 알만한 인물들을 예로 들어보면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아리아나 그란데, 카를로스 산타나 등 유명 가수들 피어스 브로스넌, 크리스티안 베일, 조니 뎁, 리차드 기어, 제임스 캐머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알렉 볼드윈, 데미 무어, 사무엘 잭슨 등 할리우드 배우들 톨스토이, 뉴턴, 아인슈타인, 에디슨, 간디, 버나드 쇼, 링컨, 클린턴 등 역사에 족적을 남긴 위인들 플라톤, 레오나르도 다빈치,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등 고대 철학자도 포함된다.

요즘 시대의 트렌드를 끌어간다는 밀레니얼 세대 중에도 채식주의자들이 많다. 이들은 축산 폐수나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 소비되는 식물과 수자원의 고갈 때문에 지구의 환경이 나빠진다고 생각한다. 지구의 환경을 위해서 생각하는 마음에서 채식을 선택한다.

나는 고기를 좋아한다. 말하자면 육식주의자다. 나는 지구환경 때문에 나의 육식 취향까지 바꿀 정도로 도덕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만성피로 때문에 아침에 일어났을 때 물에 젖은 솜처럼 축 늘어져 있는 현대인들이 육식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면, 그리고 사망 원인 1~2위를 다투는 암이나 심뇌혈관질환의 위험성을 채식을 해서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면 채식에 도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고기에 들어있는 지방은 혈관 내피세포의 기능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햄버거 하나를 먹었을 때 혈관 내피기능은 27%가 감소하고, 염증 수치를 70% 정도 증가하는데, 이 효과는 6시간 가까이 지속된다. 혈관 내피기능이 감소한다는 것은 말초 혈액순환이 잘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하루 세끼 육식을 하는 사람의 경우 하루 종일 혈액순환에 장애를 받는다는 의미다. 반대로 채식을 하면 단 3주 만에 몸의 염증 수치를 29% 줄여준다. 염증은 동맥의 혈류를 감소시키고, 관절과 근육의 통증을 일으키고, 회복을 더디게 한다.

비건은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의미한다. 주위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육식을 멀리하거나, ‘나는 채식주의자다’ 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봤어도 우리에게 비건은 아직 생소한 단어다. [사진 pixabay]

비건은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의미한다. 주위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육식을 멀리하거나, ‘나는 채식주의자다’ 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봤어도 우리에게 비건은 아직 생소한 단어다. [사진 pixabay]

한편 혈액순환 장애 말고 더욱 심각한 것은 당뇨병과 각종 암의 발생률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하버드대학 연구진은 하루 1인분의 베이컨, 소시지 등 가공육을 장기간 섭취했을 경우 당뇨병 발생률이 51%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가공육을 1군 발암 물질로 분류했는데 1군 발암 물질에는 담배, 석면, 플루토늄 같은 물질들이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기를 찾는다. 그 이유는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쓰고, 채식을 하면 힘이 없다” 는 생각과 관련이 있다. 실제로도 고기를 먹어야 든든하고 힘도 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쓴다”는 이론은 그 역사가 꽤 오래됐다. 1800년대 독일의 화학자 리비히 박사는 “근력은 동물성 단백질에서 나오기 때문에 채식만 하면 장시간 운동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 많은 사람은 동물성 단백질이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많은 운동선수가 육식 위주의 식단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에 의하면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비트 주스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자전거를 22% 더 오래 탈 수 있고, 벤치프레스 중량을 19% 더 들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주위에 보면 채식을 하면서도 엄청난 스태미나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프로 선수들이 많다. 미국의 육상영웅 칼 루이스는 1984년부터 1996년까지 4번의 올림픽에 출정해 100m, 200m, 400계주, 멀리뛰기 종목 금메달 9개를 획득했다. 하지만 세계신기록을 거듭 경신한 그가 채식주의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남자 선수를 능가하는 파워를 가진 테니스 선수 비너스-세리나 윌리엄스 자매도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채식으로 전환했고, 전설의 헤비급 복서 마이크 타이슨, UFC에서 코너 맥그리거 선수를 꺾은 네이트 디아즈 선수도 채식주의자로 유명하다.

유제품, 계란은 물론 해산물까지 먹을 수 있는 페스코(pesco), 해산물에 가금류까지 허용되는 폴로(pollo), 상황에 따라서는 육식을 하기도 하는 플렉시테리안(flexitarian)까지 매우 다양하다. [사진 pixabay]

유제품, 계란은 물론 해산물까지 먹을 수 있는 페스코(pesco), 해산물에 가금류까지 허용되는 폴로(pollo), 상황에 따라서는 육식을 하기도 하는 플렉시테리안(flexitarian)까지 매우 다양하다. [사진 pixabay]

채식주의도 여러 가지 단계가 있다. 비건(vegan)처럼 모든 동물성 식재료를 거부하는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유제품까지는 먹는 것이 허용되는 락토(lacto), 계란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 것이 허용되는 오보(ovo)가 있다. 사실 현실적으로 주위에 있는 대부분의 음식, 예를 들어 빵이나 과자에도 우유와 버터, 계란이 조금이라도 들어가기 때문에 비건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한편으로 채식주의도 융통성이 있는 세미베지테리언(semi vegetarian)들이 있는데 가수 이효리, 이상순 부부처럼 유제품, 계란은 물론 해산물까지 먹을 수 있는 페스코(pesco), 해산물에 가금류까지 허용되는 폴로(pollo), 기본적으로는 집에서는 채식주의를 추구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육식을 하기도 하는 플렉시테리안(flexitarian)까지 매우 다양하다.

채식을 시작해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만약 나처럼 기본적으로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비건처럼 엄격한 채식주의자는 힘들다. 해산물까지 먹고 소, 돼지, 닭고기를 피하는 페스코를 시도해보거나, 회식자리가 많은 한국사회에서는 플렉시테리안부터 시작해 볼 수 있다.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과거 매일 엄청난 양의 스테이크를 먹어치웠으나 지금은 간헐적 채식을 실천하고 있고, ‘고기 없는 월요일’ 캠페인을 벌여 채식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있다.

재활의학과 의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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