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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휩쓴 기생충·심은경, 열도가 긴장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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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6일 ‘신문기자’로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심은경. [연합뉴스]

지난 6일 ‘신문기자’로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심은경. [연합뉴스]

일본 영화계에 한국 바람이 거세다. 6일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배우 심은경이 일본영화 ‘신문기자’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일본영화 첫 출연 만에, 외국인 배우 최초로 거둔 쾌거다.

‘기생충’ 4주째 일본극장 흥행 1위 #K팝·한국영화 돌풍에 쿨 재팬 흔들

극장가에선 ‘기생충’이 4주 연속 주말 흥행 1위에 올랐다. 한국 투자·배급사 CJ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기생충’은 지난 주말(6~8일)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수입 1억3370만 엔(약 15억원)을 추가하며 누적 매출이 40억4716만 엔(474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12월 27일 단 3개 스크린에서 개봉, 1월 10일 전국적으로 정식 개봉한 뒤 9주차만이다. 코로나19 공포로 관객 수가 준 와중에도 ‘기생충’은 지난달 9일(미국 현지시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이래 내내 흥행 1위를 지키며 역대 일본 개봉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에 올랐다. 한국영화가 일본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른 건 2005년 ‘내 머릿속의 지우개’ 이후 15년 만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일본 내 흥행 수입은 한국, 북미에 이은 3위다.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일본도 가렸다. K팝, K뷰티도 ‘기생충’처럼 문화적 힘이 엄청나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직후 뉴욕타임스의 타부치 히로코 기자는 트위터에 이렇게 밝히며 “그런데 ‘쿨 재팬’ 이니셔티브는 어떻게 돼 가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쿨 재팬은 일본 정부가 2010년 경제산업성 산하에 ‘쿨 재팬실’을 설치하며 내건 관 주도 대외문화 홍보·수출 정책이다.

지난달 23일 도쿄 일본기자클럽에서 회견을 하고 있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도쿄 일본기자클럽에서 회견을 하고 있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 [연합뉴스]

미국 매체 VOX는 지난 3일 ‘일본 영화 산업계가 ‘기생충’의 성공을 숙고하는 이유’란 기사에서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의 승리가 일본 영화계와 평단에 일본영화의 현 상황을 재고하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일본 영화산업이 “20세기 중반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같은 감독들이 세계 영화를 영원히 바꿔놓은 이후 쇠퇴해왔다”며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어 “K팝은 전 세계적인 문화 현상이다. J팝은 10년에 한두 번 국제적으로 히트한다. 요즘 뉴욕의 가장 트렌디한 레스토랑은 일식당이 아니라 한식당”이라 전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기생충’은 일본에서 성공하는 한국영화엔 꽃미남 배우가 나온다는 공식을 깼다”고 했다. 기존 한류(韓流)와 양상이 다르다는 얘기다.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일본의 젊은 감독들을 만나면 한국영화에 영향받았거나 좋아한다는 사람이 많다.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가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었고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며 봉준호·박찬욱·나홍진 감독 등이 거론된다고 했다. 반면, 일본 영화에 대해선 “메이저 영화가 재미없어졌고, 실사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인기작을 리메이크하거나 속편을 낼 뿐 새로운 작품이 거의 없다”고 했다.

심은경 주연의 ‘신문기자’가 정권 비판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여우주연상, 최우수 남우주연상에 오른 것도 이에 대한 파격의 맥락이다. 이번 수상이 TV 중계되자, ‘전쟁과 한 여자’(2012)를 연출한 사회파 감독 이노우에 준이치는 페이스북에 “TV에 소개조차 안 됐던 ‘신문기자’가 공중파에서 나온다. 이토록 통쾌한 일이 어디 있으랴”고 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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