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송세경의 미래를 묻다

로봇 기술 강국 명단에 대한민국은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20.03.09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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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능로봇 시대

일본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감성 소통 로봇 페퍼. 그러나 아직은 사람에게 반려동물 수준의 감정적 만족을 주는 데도 이르지 못했다. 2014년 처음 나온 이래 누적 판매가 1만2000대에 그치고 있다. [중앙포토]

일본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감성 소통 로봇 페퍼. 그러나 아직은 사람에게 반려동물 수준의 감정적 만족을 주는 데도 이르지 못했다. 2014년 처음 나온 이래 누적 판매가 1만2000대에 그치고 있다. [중앙포토]

인류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희생과 노역을 당연시했다. 인간 노예를 두고 지배력의 척도로 삼았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산업화 시대가 도래하며 인간 노예는 사라지고 로봇이 등장했다. 로봇은 인간을 대신해 노역하는 ‘인조인간’ 노예다. 어원인 체코어 ‘로보타(robota)’는 ‘강제 노동’ 또는 ‘고된 일’을 뜻한다.

지능로봇 15년간 1조 투자하고도
실험실 R&D뿐, 산업화 정책 없어
중국은 정부가 로봇 시장 만들어
기업가치 10조원 유니콘도 탄생

근대 로봇의 아버지 조지프 엥겔버그는 1961년 세계 최초의 산업용 로봇 ‘유니메이트’를 개발했다. 유니메이트는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부품을 옮기는 인간의 고된 육체노동을 대체했다. 이어 산업용 로봇은 노동자를 대신해 조립·용접·운반 등을 척척 해냈다. 큰 성공을 거둔 로봇 기업들은 로봇의 활용 범위를 점점 넓혀갔다. 유해 가스와 높은 열, 자외선 등을 사용하는 반도체 제조공정 역시 로봇 제국이 됐다. 산화·식각·증착 등등 이름도 어려운 각종 공정마다 장비 안에서 로봇들이 24시간 일사불란하게 돌아간다.

2000년대 들어 로봇 기업들과 제조 강국들은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해 앞다퉈 지능로봇 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육체노동을 대체했던 산업용 로봇은 인식·판단·작업 지능 기술 발전에 힘입어 인간을 보조하는 교육·안내·엔터테인먼트 서비스 로봇과 전문가를 대체하는 군사·수술 로봇 등으로 탈바꿈했다.

대한민국, 로봇 구매의 ‘큰손’

세계적인 저출산·고령화 추세로 인해 노동력이 감소하면서 그 자리를 메꿀 로봇 수요는 계속 확대되고 다양화할 전망이다. 특히나 한국은 세계 최저 출산율 국가이자 초고속 고령화 국가다. 출산율을 높일 방법도, 고령화 속도를 늦출 뾰족한 대안도 없다. 로봇 수요가 급팽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세계 8위 무역 대국이자 세계 12위 경제 규모를 갖춘 한국은 이미 로봇 왕국이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근로자 1만 명당 설치된 로봇 대수를 뜻하는 ‘로봇 밀집도’에서 한국은 718대(2018년)로 압도적 세계 1위다. 독일(322대), 일본(308대)의 두 배가 넘는다. 적어도 로봇 구매에서는 한국이 ‘큰손’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로봇 기술력은 상황이 다르다. 고가 정밀로봇은 일본과 독일, 중저가 로봇은 중국이 장악했다. 고성능·정밀 부품도 일본·독일이 압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최초의 산업용 로봇 ‘유니메이트’.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하역 작업을 했다.

최초의 산업용 로봇 ‘유니메이트’.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하역 작업을 했다.

한국도 ‘로봇 소비 대국’에서 탈출하려고 노력했다. 미래형 지능로봇 기술개발에 정부는 최근 15년 동안 1조원 넘는 연구개발(R&D) 자금을 투입했다. 그러나 이는 논문을 쓰고 로봇 시제품을 만드는 데 대부분 소진됐다. 연구 성과는 대학과 기업의 연구실 문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지능로봇을 시험적으로라도 구매해 사용할 소비 시장이 없었다. 결국 로봇 기업들은 대부분 파산하거나 다시 정부 R&D 자금에 목매어 사는 신세가 됐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국가 R&D 자금이 미래를 선도하기 위한 투자가 아니라 대학·연구기관·기업들의 생계 자금이었던 셈이다.

몇 년 만에 로봇산업을 획기적으로 육성한 중국은 달랐다. ‘중국제조 2025’ 기치 아래 정부가 전략적으로 선도 로봇 기업을 육성하고 로봇 시장을 만들었다. 그 덕에 저가용 산업 로봇을 만들던 시아순(新松)은 세계 3위 로봇 기업이 됐다.

유비텍의 성장은 더 놀랍다. 교육 로봇과 사람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드는 회사다. 애초 한국산 교육 로봇을 중국에 팔던 대리점으로 시작했다. “로봇을 현지화, 양산하겠다”며 국내 기술과 영업 노하우를 빼 갔고, 한편으로 로봇 부품 관련 핵심기술 개발에 몰두했다. 중국 내에서 1조원 투자까지 몰렸고, 지금 10조원 가치의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유비텍이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시장을 열어주는 중국 정부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 중국 로봇 산업의 급성장은 국가적인 산업육성 전략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한국에는 ‘연구실 문밖을 나가지 못하는 R&D’ 말고도 답답한 사례가 있었다. 바로 ‘협동 로봇’이다. 과거 표준형 상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던 시대에는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산업용 로봇이 대세였다. 그러나 소비자 기호에 맞춰 다양한 물건을 조금씩 만들어 내는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이때 활약하는 게 협동 로봇이다. 사람과 함께 일하는 조수 같은 역할을 한다.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로 넘어가면서 협동 로봇은 점점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2030년에는 협동 로봇 시장이 14조3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규제에 묶였던 협동 로봇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

로봇 활용 강국인 우리는 협동 로봇 분야에서 치고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규제에 막혔다. ‘안전 펜스와 안전 매트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는, 산업용 로봇 관련 규제다. 협동 로봇은 충돌 방지 같은 안전 기능을 갖춰 안전 펜스 등이 필요 없다. 아니, 사람의 조수처럼 일해야 하는 특성상, 안전 펜스를 둘러쳐 놓으면 인간과 협동해 일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은 산업용 로봇에 필요한 규제를 협동 로봇에 그대로 적용했다.

규제는 지난해 10월에야 가까스로 풀렸다. 그때까지 우리는 협동 로봇 관련 전문가와 기술력·노하우를 키울 기회를 원천차단 당했다. ‘이것 빼고는 다 해도 된다’는 ‘네거티브(negative) 규제’가 아니라, ‘이것 빼고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한국식 ‘포지티브(positive) 규제’가 낳은 비극이다.

지능로봇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갈 견인마다. 육성하려면 규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동시에 R&D 결과가 연구실을 뛰쳐나가게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로봇 정책은 그저 수족관 관상어만 만들었다. 이와 달리 미국·중국은 치어(스타트업)를 키우고, 바다로 가는 길까지 내어 치어를 블루오션으로 내보냈다. 소비 시장을 만들고, 투자가 계속 이어지도록 하는 게 바로 그런 ‘바다로 가는 길’을 조성하는 일이다. 한국도 이렇게 길을 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미래 산업을 일으킬 수 없다.

아직은 20% 부족한 서비스 로봇
서비스 로봇은 산업 현장이 아니라 생활 공간에서 쓰이는 로봇이다. 첫 서비스 로봇은 1997년에 나온 소니의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다. ‘반려 로봇 강아지’를 만든 것이었다. 당시로써는 엄청난 고가인 250만원이라는 가격에도 100만 대가 팔리며 큰 반향을 불렀다. 하지만 결국 단종됐다.

아이보는 눈빛만으로도 교감이 되는, 진짜 강아지에게서 얻을 수 있는 높은 친밀감을 전해주지 못했다. 잦은 고장까지 겹쳤다. 아이보는 기술 발전을 바탕으로 20여년 만인 2018년 다시 등장했으나 시장 반응은 조용했다. 인간의 반려 로봇이 되기엔 아직 부족한 것 같다.

2015년 일본 소프트뱅크는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를 출시했다. 120㎝가량의 키에 사람과 대화하고, 양손과 팔 동작 등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로봇이다. 누적 판매량은 1만2000대에 그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일본 혼다의 휴머노이드 ‘아시모’,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실버 케어 로봇 ‘키보’, 미국의 홈 소셜 로봇(사람과 감성적으로 소통하는 로봇) ‘지보’등이 줄지어 실패했다.

왜 인간과 친숙해지려는 로봇들은 실패하는가? 이유는 명확하다. 단순하고 반복되는 생산 공장은 로봇에게 최적의 환경이다. 하지만 반대로 변덕스러운 인간 세상은 지능 로봇에게 최악의 여건이다. 가족이라도 서로의 기분을 잘 파악해 맞춰주기는 몹시 어려운 일이다. 로봇에겐 더 어렵다. 그래서 로봇은 아직 ‘반려’라기보다 아주 비싼 장난감에 가깝다. 로봇에 푹 빠진 마니아가 아니라면, 호기심으로 고가의 로봇 장난감을 구매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온 최고의 히트작 로봇은 사람과 소통하는 감성 로봇이 아니라 귀찮은 일을 하는 로봇 청소기였다. 미국 아이로봇의 로봇 청소기 ‘룸바’는 지금까지 모델을 바꿔가며 전 세계에서 3000만 대가 팔렸다.

◆송세경 박사
안내 로봇 벤처 ‘퓨처로봇’ 창업자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 안내 로봇을 운영했던 기업이다. 2015년에는 CES에서 로봇 분야 기조연설을 했다. 현재 KAIST에서 ‘기계 지능 및 로봇공학 다기관 지원 연구단 기술사업화단장’을 맡고 있다.

송세경 박사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