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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대의는 어디로 갔나’ 전체주의가 된 남산의 부장들

중앙일보

입력

[윤석만의 인간혁명]21세기 '자유론(on liberty)'

영화 '남산의 부장들' 한 장면. [사진 쇼박스]

영화 '남산의 부장들' 한 장면. [사진 쇼박스]

왜 21세기 '온 리버티'인가

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on liberty)』은 J.S. 밀이 1859년 출간한 자유주의의 교과서입니다. 철학에서의 ‘자유의지’와 달리 ‘사회적 자유’란 무엇이며, 이것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깊은 통찰력으로 논했습니다. 밀은 개인의 자유가 어떻게 역사를 발전시키는지 체계적으로 논증한 최초의 학자이자 정치가였습니다.
   ‘온리버티’는 새 시대에 걸맞은 21세기의 ‘on liberty’라는 뜻과 ‘only liberty’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only liberty’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처럼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간의 모든 권리와 가치를 하나씩 제거해 나갈 때 최후에 남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 뿐(only liberty)이라는 이야기죠.
   ‘온리버티’는 인간 이성의 마지막 보루인 자유의 관점에서 한국 사회를 진단합니다.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끝나고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날카로운 현실 비판과 인문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살펴봅니다.

민주주의 핵심 원리는 다양성

라파엘로는 그리스 문화의 부활을 꿈꾸며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아테네 학당’을 그렸다. 화면 정중앙의 플라톤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이상세계인 ‘이데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옆에 손바닥을 땅으로 향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세계를 강조했다. 그림 왼편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열변을 토하고 있는 인물이 소크라테스다. [중앙포토]

라파엘로는 그리스 문화의 부활을 꿈꾸며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아테네 학당’을 그렸다. 화면 정중앙의 플라톤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이상세계인 ‘이데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옆에 손바닥을 땅으로 향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세계를 강조했다. 그림 왼편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열변을 토하고 있는 인물이 소크라테스다. [중앙포토]

 민주주의 사회에서 독선이 위험하다는 것은 모두가 압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어떤 의견이 불경스럽고 비도덕적이라 해도 자신에게 절대로 오류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불경스럽고 비도덕적인 의견보다) 치명적인 독을 품는다”고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절대적인 권력이나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하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소크라테스의 사례를 예로 듭니다. “아테네인들은 불경과 부도덕을 이유로 그 때까지 태어난 사람 중 최고의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독선은) 개인의 사사로운 삶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상대방의 영혼을 침투하고 도저히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이 같은 독선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성적인 토론을 통해 의견 각자의 타당성을 검증받는 것입니다. 설령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A라는 명제를 반박하는 주장이 나오더라도 합리적 토론의 과정을 거치면 A에 대한 신뢰는 높아질 것입니다. 반대로 토론을 통해 A의 오류와 잘못이 드러난다면 그것 또한 매우 큰 성과입니다.

진리와 절대선 강조는 경계해야 

영화 '남산의 부장들' 한 장면. [사진 쇼박스]

영화 '남산의 부장들' 한 장면. [사진 쇼박스]

 밀은 “각 시대에는 수많은 주장과 의견을 잉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지 후회되는 경우도 많다”며 “과거가 현재로 부정되듯, 현재도 미래에 번복될 것이며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많은 것들이 언젠가는 폐기될 것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밀은 ‘진리’, ‘절대선’ 같은 표현을 쓰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반증 가능성이 없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는 칼 포퍼의 말과 비슷한 맥락이죠.

 이처럼 독선을 경계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입니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자유주의고요. 그래서 밀은 “가장 정확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누구나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하며, 다양한 입장에서 다른 생각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세상의 어떤 현자도 이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지혜를 얻은 사람은 없다”고 강조하죠.

 이렇게 자유주의는 우리 사회를 밑 받치는 기둥입니다. 시민 각자가 자유롭게 의견을 펼칠 수 없다면 사회적 다양성은 피어나지 못합니다. 새로운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과거의 의견만 답습한다면 인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죠. 같은 이유로 자기 생각만 옳다고 믿으며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역사는 후퇴합니다.

"조국은 칼 슈미트와 접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전민규 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전민규 기자

 현 정권에서 이런 밀의 지적에 가장 뜨끔해야 할 이들은 소위 ‘친문’과 ‘문빠’로 지칭되는 정치인과 이들의 극단적인 지지 세력입니다. 이성과 합리를 잃어버린 맹신은 민주주의를 파괴합니다. 다양성을 상실하고 오로지 우리 편과 남의 편으로 구분되는 이분법적 사고는 상대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동반합니다. 2019년 ‘친일’ 프레임으로 자신의 주장과 다르면 ‘적폐’, ‘토착왜구’ 등의 낙인을 찍었던 일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이를 정권의 한 가운데서 주도했던 인물이 조국 전 장관입니다. 조 전 장관은 자신의 범죄 혐의가 이미 상당 부분 드러났을 때에도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자신을 포장했죠. 이 때 사용된 논리도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였습니다. 조 전 장관의 아내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지지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자신이 구속된 “유일한 이유는 사법개혁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최장집 교수는 조 전 장관이 쓴 『진보집권플랜』에 대해 “진보 대 보수, 개혁 대 수구 등 확실한 구분과 치열한 투쟁, 권력 쟁취를 지향하는 경향이 칼 슈미트의 정치이론과 깊이 접맥된다”고 평가했습니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1888~1985)는 나치에 중요한 이론적 기틀을 제공한 사람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지나친 팬덤은 이성을 마비시켜

1979년 제2의 권력자라 불리던 중앙정보부장(이병헌)이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사건을 벌이기 전 40일 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 등이 열연했다. [사진 쇼박스]

1979년 제2의 권력자라 불리던 중앙정보부장(이병헌)이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사건을 벌이기 전 40일 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 등이 열연했다. [사진 쇼박스]

 정치인의 이분법적 선동은 대중의 합리와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순방단에 포함된 한국 기자들이 공안 측으로부터 구타를 당한 일이 있습니다. 사건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이를 접한 네티즌들의 댓글 반응이 더 큰 충격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댓글이 ‘기레기가 맞을 짓을 했다’는 식의 내용이었죠.

 중국 관영매체인 환구시보까지 “한국 네티즌들도 취재규정을 위반한 기자들을 비난한다”고 보도할 정도였습니다. ‘기레기가 어떤 맞을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통령 순방을 따라간 자국민이 무차별 폭행을 당했는데도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성적으로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를 인용한 환구시보의 기자들은 댓글을 남긴 ‘친문’ 네티즌들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조 전 장관을 지지하는 집회 현장에서도 이성이 마비된 사례는 여럿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말 서울 서초동 집회에서는 한 초등학생이 연단에 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교에서 주는 표창장을 받게 됐는데 엄마가 상을 받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매주 서초동에서 검찰개혁을 외쳤기 때문에 상을 받으면 검찰 조사를 받을 수 있다며 글썽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학생은 “민주 국가에서 검찰이 왜 죄 없는 사람을 가두는지 알 수 없다, 떳떳하게 표창장을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중앙일보 2019년 12월30일)

 이 초등학생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의 어머니는 과연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자녀 교육의 측면에서도 유년 시절의 이런 경험이 잘못된 선입견과 왜곡된 사회 인식을 심어준다는 생각을 해보진 못했을까요.

 괴물이 된 혁명의 대의

영화 '남산의 부장들' 한 장면. [사진 쇼박스]

영화 '남산의 부장들' 한 장면. [사진 쇼박스]

 다시 영화 ‘남산의 부장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작품 속에서 청와대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정치인과 재야인사, 학생 운동권, 나아가서는 일반 시민까지 ‘빨갱이’로 몹니다. 유신헌법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야당뿐 아니라 보통의 시민들까지 ‘적’으로 규정하죠. 부산에서 마산으로 시위대가 커지자 청와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특전사와 공수부대 등을 투입해 진압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 유명한 차지철의 발언이 나오죠. 캄보디아에서 크메르 루즈 정권이 수백만 명의 자국민을 학살한 사례를 들며 “100~200만 명쯤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라고 말이죠. 그러면서 박정희 대통령 역시 그의 주장에 솔깃해 하는 모습이 작품에 그려집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무고한 시민의 생명조차 새털처럼 가벼이 여길 만큼 왜곡되고 일그러진 것이었습니다.

 극중에서 ‘혁명의 대의’는 왜 이렇게 흉측한 괴물로 변하고 만 것일까요? 그것은 다양성과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독선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화에 묘사된 박 대통령뿐 아니라 인류 역사의 모든 독재자에게 공통된 일입니다. 독선은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단순명료하며 폭력적인 방식을 선호합니다.

 오랫동안 권좌에 군림했던 만큼 최고 권력자에게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쓴 소리를 하던 사람은 모두 곁을 떠나고 권력자의 비위만 맞추는 간신들만 주변에 남게 된 것이죠. 제 아무리 ‘혁명의 대의’와 ‘공정사회’를 외쳤던 사람도 독선의 벽에 갇히고 나면 괴물로 변하고 맙니다.

21세기 떠도는 전체주의 유령 

[평양 노동신문=뉴스1]

[평양 노동신문=뉴스1]

 그 때부터 전체주의 유령이 국가를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청와대·정부에서 여당으로, 이는 다시 시민단체와 언론으로, 종국에는 ‘모든 것을 지도자에게 양도한’ 맹목적 추종세력까지 진영논리로 수직계열화 된 단일대오가 형성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은 ‘적폐’가 되고, 우리 편과 너희 편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죠.

 일본을 미워하지 않으면 ‘친일’, ‘토착왜구’가 되고 조 전 장관을 비롯한 정권의 실세들을 수사하거나 이를 지지하면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적폐’가 되는 현실이 전체주의의 그것과 꼭 닮아 있습니다.

 “‘진보 vs 보수’와 같은 확실한 구분과 치열한 투쟁은 칼 슈미트의 정치이론과 깊이 연관돼 있다”는 최장집 교수의 지적처럼 조 전 장관을 포함한 현 정부의 실세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맹목적 추종세력은 전체주의의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칼 포퍼는 폐쇄적 민족주의와 전체주의처럼 피아 구분이 명확하고 상대의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를 닫힌사회라고 규정합니다. 반대로 열린사회는 ‘개인이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자율적 행동을 통해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입니다. 칼 포퍼는 “우리가 문명사회의 인간으로 남길 원한다면 단 하나의 길, 열린사회의 길만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짐승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 지금 우리는 어떤 길로 가고 있을까요?

윤석만 사회에디터 겸 논설위원 sam@joongang.co.kr

#유튜브에서도 인간혁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Ipp-I9olm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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