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팔려다 약 조제 못할 판" 약사들 판매 포기 움직임

중앙일보

입력 2020.03.07 07:00

업데이트 2020.03.07 10:03

6일 오전 서울 종로5가 인근의 한 약국 앞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다음 주부터는 약국·우체국·농협에 마스크 중복구매 확인시스템을 구축해 마스크 판매자가 구매자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구매 이력을 체크해 1인당 1주(월~일요일)당 2매만 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6일 오전 서울 종로5가 인근의 한 약국 앞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다음 주부터는 약국·우체국·농협에 마스크 중복구매 확인시스템을 구축해 마스크 판매자가 구매자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구매 이력을 체크해 1인당 1주(월~일요일)당 2매만 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수도권 신도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A씨는 강화된 마스크 대책 시행 첫날인 6일 소비자와 실랑이를 하다 경찰까지 불렀다. 공적 마스크가 언제 들어올지 몰라 새벽에 줄을 선 소비자에게 번호표를 배부했는데, 마스크 입고 뒤 연락을 받고 약국을 다시 찾은 한 소비자가 딸(1976년생)의 신분증으로 마스크를 받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부 방침에 따라 주민등록증 등 본인의 공인신분증이 있어야 중복 구매를 막기 위한 조회를 할 수 있다고 반복해 설명했다. 하지만 소비자는 “그냥 줄 수 있는 것 아니냐. 약국이 마스크를 숨긴 것 아니냐”며 오히려 화를 내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A씨는 “최근에 너무 많은 일을 겪어 마스크가 들어오는 시간만 되면 심장이 쿵쿵대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지쳐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날 A씨는 관할 보건소에서 “오는 월요일 약국을 방문해 감사를 하겠다”는 연락까지 받았다. 약국이 마스크를 빼돌린 것 같다는 신고가 들어가서다.

약국 “마스크 파느라 조제 못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으로 공적 마스크 판매 핵심 유통망이 된 일선 약국이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5일 발표한 공적 마스크 판매 대책에서 늘어난 약국 업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5일까지는 평균 

100장을 2~5장씩 나눠 판매하면 됐지만, 중복 구매를 막기 위한 행정 업무가 더해지면서 업무 부담은 대폭 늘었다. 

만약 각 약국에 할당된 마스크 250장을 팔려면 최소 125명의 주민등록번호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사이트에 일일이 직접 입력해야 한다. 약사들은 마스크를 팔기 위해 ▶대기 번호표를 만들어 배포하고 ▶대기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마스크가 도착했다고 전화 ▶중복 구매 확인까지 해야 한다. 질서 유지 등 각종 잡무까지 고려하면 만만한 업무량이 아니다. 6일 공인인증서로 로그인을 해야 하는 심평원 사이트에 한꺼번에 이용자가 몰리면서 접속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온다.

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대형약국 앞에 마스크를 구하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대형약국 앞에 마스크를 구하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약사 한명이 운영하는 영세 약국은 온종일 마스크 판매에만 매달려야 한다. 규모가 작을수록 약국 본연의 업무인 처방 조제, 복약 지도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전국 약국은 2만4000여개에 달하는 데, 대다수가 약사 1~2명을 두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6일엔 공적 마스크의 78%에 달하는 571만장이 약국을 통해 판매됐다.

공적 마스크 판매 포기 약국 나올 것  

행정 업무 증가에 직원을 추가 채용해야 할 상황이지만 코로나 19사태로 매출이 줄어 이렇게 할 수 있는 약국은 소수다. 판매가 1500원으로 통일된 공적 마스크는 약국에 1100원에 공급된다. 운송비와 세금, 카드 수수료를 제하면 사실상 약국 몫은 남지 않는다. 판매 실적으로 잡혀 세금을 더 내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약사 단체톡방에선 비상시국인 만큼 정책 취지는 이해하지만, 보완책과 지원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최소한 아르바이트 직원을 고용할 수 있을 정도의 지원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적 판매 마스크 판매를 거부하는 약국이 속출한 지방 모 약사회에서는 명단을 취합 중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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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약사회 측은 이에 대해 “인프라가 없어 공인인증서 사용이 어렵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공적 마스크 판매를 할 수 없는 약국을 조사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다음 주(9일)부터 출생 연도별 마스크 판매 5부제를 실시해 마스크를 찾는 사람이 분산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바뀐 정책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소비자가 계속 나올 전망이라 당분간 혼란은 불가피하다. A씨는 “보건 마스크 제조 업체나 우체국에는 군 병력 등 인력이라도 지원해주고 자원 봉사자도 있지만, 약국엔 그마저 없다”며 “이런 어려움 때문에 대한약사회로 항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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