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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밖은 위험해…홈코노미 ‘방콕족’ 카드 90% 더 긁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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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6호 14면

직장인 주선영(33)씨는 오는 9일이면 재택근무 4주차에 들어선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회사에서 한시적 재택근무제를 도입했다. 3주 사이 주씨 일상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주씨는 “삼시세끼를 집에서 챙겨야 해서 매번 온라인으로 식음료를 주문하고 있다”며 “출퇴근할 때보다 집안이 어지럽혀질 때도 많아 새 고성능 무선청소기까지 구매했다”고 말했다. 주씨는 최근 운동 부족마저 절감해 소형 러닝머신 등 ‘홈트레이닝’ 용품 구입도 알아보고 있다.

음식 배달, 출장 세차, 렌털 등 #코로나 여파로 집에서 더 해결 #‘홈술’ ‘홈캉스’ 등 새 바람 타고 #수제맥주 제조기 등도 인기몰이 #“코로나로 온라인 소비 늘지만 #오프라인 소비 위축 보완 어려워”

“집에 있는 게 진정한 휴식” 49.5%  

비슷한 기간 전국에서 웬만한 오프라인 소비는 거꾸로 급감했다. 코로나19 탓에 주씨 같은 재택근무자가 늘어난 데다 외출을 꺼리는 사람이 급증했다. 기획재정부와 여신금융협회 등에 따르면 이런 ‘방콕족’이 늘면서 지난달 셋째 주 기준 전국의 백화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점(-14.2%)과 숙박(-24.5%) 업종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와 달리 온라인쇼핑(14.7%) 전체 매출은 가파른 증가세를 이어갔다. 오프라인에선 한 번에 많은 식음료를 눈으로 보고 사서 집에 비축할 수 있도록 하는 대형마트(5.0%), 집에서 가까운 경우가 많은 편의점(2.7%) 정도만 매출 수준을 예외적으로 유지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면서 집 위주의 경제활동인 ‘홈코노미(home+economy)’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소비자들이 집을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다양하게 즐기는 공간으로 해석, 집에서 주로 경제활동을 한다는 뜻에서 나온 신조어다. 홈코노미가 가뜩이나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던 차에 코로나19라는 달갑지 않은 손님까지 가세하면서 올 한 해를 뒤흔들 전망이다. 앞서 KB국민카드는 지난 2018년 1분기 발생했던 전국 25~54세의 홈코노미 관련 하루 평균 카드 결제 건수를 100으로 가정하고 이후 추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지난해 1분기 166.1, 2분기 189.9로 각각 산출됐다. 불과 1년 반 동안 홈코노미를 위한 소비가 90%가량 증가했다는 얘기다.

분야별로는 ▶음식 배달(2.14배) ▶케어(아이 돌봄과 출장 세차 등, 2.01배) ▶엔터테인먼트(1.83배) ▶집에서 요리 재료로 쓰는 신선식품 등 일상용품 배송(1.38배) ▶가전 등의 대여(렌털, 1.35배) 순으로 카드 결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수년간 온라인쇼핑의 급성장, 1인 가구의 급증 등으로 나타난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 비중은 29.8%(약 599만 가구)로 사상 최고치였다. 이들 중 집에 장시간 혼자 있기를 꺼리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가치관을 지닌 1980~200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가 많은 것도 특징적이다. KB국민카드 설문조사에서 1200명의 응답자들은 ‘집에 있는 게 진정한 휴식이어서(49.5%)’ ‘사람들로 붐비는 환경이 싫어서(30.5%)’ ‘외부 활동보다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아서(22.6%)’ 등을 집에서 경제활동을 많이 하는 이유로 꼽았다. 이들 응답자가 하루 평균 집에서 보내는 시간만 주중 11시간18분, 주말 14시간24분에 달했다.

모델들이 방콕족들을 위해 준비한 실내 운동기구 시범을 보이고 있다. [뉴스1]

모델들이 방콕족들을 위해 준비한 실내 운동기구 시범을 보이고 있다. [뉴스1]

이런 분위기로 덕을 보는 업종·기업이 속속 등장했다. ‘배달의민족’ 애플리케이션으로 배달 업계를 장악한 우아한형제들, 2016년 한국에 진출해 온라인 기반 영상 제공 서비스(OTT)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넷플릭스가 대표적이다. 우아한형제들은 수년간 눈덩이처럼 불어난 기업 가치로 지난해 말 독일 딜리버리히어로가 4조7500억원가량의 거액을 들여 인수했다. 넷플릭스는 국내 유료 가입자만 현재 3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계정 하나당 4명까지 공유할 수 있어 실제 이용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렌털 업계 1위 코웨이, 지난해 매출만 7조원대로 추산되는 온라인쇼핑몰 쿠팡도 불황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이다. 홈코노미의 부상이 배경으로 제기된다.

홈코노미 인기에 홈트레이닝뿐 아니라 ‘홈캉스’ ‘홈술’ 같은 신조어도 유행하고 있다. 홈캉스는 집에서 즐기는 바캉스(home+vacance)다. 여름 휴가철을 덥고 미세먼지 많은 야외보다 집에서 에어컨을 틀고 시원하고 편하게 보내려는 소비자가 그만큼 늘어났다. 이에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들은 지난해 ‘무중력 의자’ 등 관련 용품을 모아 파는 홈캉스 기획전을 마련, 성황리에 마쳤고 올해도 준비 중이다. 홈술은 집에서 즐기는 술이다.

영화관 매출 1년 새 30%나 내리막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된 데다 일과 후 회식·모임보다 빠른 귀가를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집에 각종 술을 비치하고 퇴근 후 즐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가전 업계가 ‘수제맥주 제조기’ ‘와인 셀러’ 같은 관련 제품 출시를 늘린 배경이다.

두텁게 형성된 이들 수요에다 코로나19 사태로 몰린 수요까지 많아 소비시장에서 홈코노미 강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아니더라도 영화관 방문 대신 넷플릭스 신규 가입을, 외식보다 음식 배달을 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외신들은 한국의 지난달 영화관 매출도 전년 동기보다 30%가량 감소한 것으로 추산했다. 다만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은 “온라인 소비가 늘더라도 코로나19에 따른 오프라인 소비 위축을 보완하긴 어렵다”며 소비심리 회복이 당분간 어려워진 현 상황 자체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소매판매에서 온라인 시장 비중은 오프라인 시장의 약 18%에 불과하다. 여기에 홈코노미가 힘을 더하고 있다 해도 코로나19에 따른 심각한 경제 충격에서 일부 위안일 뿐, 만회의 중심 역할까지 기대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LED 마스크, 미니 마사지기 등 손수 가꾸는 ‘홈뷰티’도 인기

홈코노미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떠오른 가운데 집에서 각종 디바이스(기기)로 손수 미용을 하는 ‘홈뷰티(home beauty)’도 인기다. 최근 수년간 시장 성장세가 가팔라 유통·가전·미용 업계 모두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5일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이 백화점 전국 점포의 지난해 뷰티 기기 매출은 전년 대비 12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 관계자는 “홈뷰티 수요 증가에 기업들이 뷰티 기기 출시를 늘려 매출이 해마다 빠르게 늘고 있다”며 “기기의 관리 부위도 얼굴뿐 아니라 목이나 전신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많이 찾는 기기로 ‘발광다이오드(LED) 마스크’와 ‘미니 안마(마사지)기’가 있다. 가면 모양의 LED 마스크는 LED 빛의 파장을 이용해 얼굴 피부 톤과 탄력 개선을 돕는 기기다. 사용법도 간단해 집에서 쓰기 쉽다. LED 마스크를 얼굴에 대고 컨트롤러 전원 버튼을 누르면 켜진다. 5분이나 20분 등 기기를 쓰기 원하는 시간을 타이머로 설정해주면 시간 경과 후에 자동으로 꺼진다. 미니 마사지기는 제품마다 온열이나 방향 전환, 속도 조절 등 기능을 갖춰 부위별로 미용을 돕고 뭉친 근육을 푸는 데도 효과적이다. 손목·어깨 등 원하는 부위에 부착하면 패드가 자동으로 움직이며 마찬가지로 타이머를 쓸 수 있다.

‘LG 프라엘’ ‘셀리턴’ ‘교원 웰스’ 등이 LED 마스크로, ‘코지마’ ‘키위스’ 등이 미니 마사지기로 시장에서 주목받는 브랜드다. 대기업부터 중소·중견기업까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 외에도 진동 클렌저와 각질 제거기 등의 다양한 기기가 있다. LG경제연구원은 홈뷰티 인기에 이런 뷰티 기기 시장 규모가 2013년 약 800억원에서 2018년 5000억원으로 커진 것으로 분석했다. 2022년엔 1조6000억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뷰티 기기를 쓰면 더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에스테틱(피부관리실)이나 마사지숍에 가지 않고 집안에서 틈틈이 자신을 가꿀 수 있다는 이점이 생긴다.

다만 뷰티 기기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미용 수단일 뿐, 의료 기기처럼 여겨 맹신해선 곤란하다는 지적이 있어 소비자의 주의도 요구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여름 LED 마스크의 온라인 광고 사례 7906건을 집중 점검해 과장 광고 943건(48개 제품)을 적발했다. 식약처는 이들 광고에서 기업들이 LED 마스크를 주름 개선과 피부 질환 치료 등에 특효가 있는 의료 기기로 소비자가 오인할 수 있게 했다며 시정명령했다. 의료 기기는 현행법상 당국이 엄격하게 심사해 인체 유효성이 입증돼야 출시할 수 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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