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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의사들과 사전 협의도 없이 졸속 발표한 ‘전화 진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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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승국 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내과 전문의

조승국 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내과 전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정부는 2월 22일 갑자기 “24일부터 한시적으로 전화 진료를 시행한다”고 불쑥 발표했다. 하지만 참여율은 10% 미만으로 저조하다. 진료비를 받을 수 있고, 감염환자를 피할 수 있을 텐데 의사들은 왜 전화 진료에 참여하지 않을까.

진단과 치료의 지연 문제를 초래 #환자 증가 못 막고 부작용만 키워

코로나19는 무증상부터 심한 발열까지 증상의 폭이 아주 넓다. 환자를 직접 만나 자세히 묻고 X선 촬영 등의 검사를 진행하더라도 일반 감기와 코로나19 감염증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유전자 검출을 통한 검사가 필요하다. 환자의 체온조차 측정하지 않고, 증상도 일반 감기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감염 확산을 막겠다며 의사들에게 고혈압과 같은 일반 질환과 가벼운 감기 환자를 전화로 진료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앞서 대한의사협회는 일반 질환 진료와 호흡기 질환 진료의 진료소 이원화를 통해 일반 질환 환자들이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 구축을 정부에 제안했다. 고혈압·당뇨 등 일반 질환자들의 병원 내 감염을 우려해서다. 당시는 환자 발생이 많지 않아 낙관론이 나올 무렵이었지만, 정부는 안전한 일반 진료를 위한 의협의 제안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전화 진료는 진단과 치료의 지연이 가장 큰 문제다. 감염병이 전국적으로 퍼졌지만, 정부는 지금이라도 감염의 고리를 찾아 끊어야 한다. 그런데 이제 감염병 확산의 저지를 포기하고 가벼운 증상만 있다면 집에서 감기약을 먹으면서 환자 스스로 질병의 악화를 판단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덥고 습한 여름이 와서 바이러스가 잠잠해지는 것을 앉아서 기다리겠다는 것인가.

정확한 진단이 없는 투약은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코로나19의 조기 진단을 더 어렵게 한다. 환자는 결국 증상이 악화해 진료소를 찾게 될 것이다. 불완전한 진료인 전화 진료는 감염병 확산을 더 부채질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백보 양보해 전화 상담 또는 전화 진료가 정말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이번 정부의 대응은 성급했다.

정부가 제시한 전화 진료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처방전 전달 등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환자가 병원에 와서 처방전을 받아 다시 약국에 가야 한다면 전화 진료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화 진료 발표에 앞서 최소한 처방전과 약 전달 방안에 대해서라도 심사숙고하고 깊이 논의했어야 한다.

법적으로 불가한 약품의 우편 발송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도 필요하다. 한시적 의약품 택배 서비스 구축 등도 관련 기관과의 논의가 필요했다. 생색내기가 아니라 진지하게 국민 건강을 위해 이 제도를 생각했다면 정부는 실제 진료를 맡게 될 의사들과 사전에 논의하고 준비했어야 한다. 믿기 힘들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의사협회의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책임 있는 국가의 행동인지 의문이 든다.

전화 진료의 효과는 단 한 가지다. 경증 코로나19 환자 수를 일시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진단되지 않고 일반 질환 속에 숨어 있는 경증 코로나19 환자들은 자택에서 감기약으로 증상을 조절하며 자신의 면역체계를 통해 버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사이에 가족이나 주변 사람을 감염시키거나 혹은 증상이 악화해 결국 진료소를 찾게 될 것이다. 그 사이 환자는 더 늘어난다. 결국 전화 진료는 전형적인 미봉책이다.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전화 진료는 지금까지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방식과 궤를 함께한다. 눈 가리고 아웅 하기다. 이장폐천(以掌蔽天·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이란 성어가 떠오른다. 정부의 전문가 무시는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조승국 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내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