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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처럼…매크로 돌려 1명이 마스크 9000장 싹쓸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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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 도매업자가 단톡방에 마스크 2000장 판매글을 올리자 13분 만에 마감됐다는 글이 올라왔다. 오른쪽은 마스크 1만6000장을 판매한다는 다른 유통업자의 글. [사진 독자]

한 도매업자가 단톡방에 마스크 2000장 판매글을 올리자 13분 만에 마감됐다는 글이 올라왔다. 오른쪽은 마스크 1만6000장을 판매한다는 다른 유통업자의 글. [사진 독자]

“KF94 대형 200장 있는데 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

“2000장 살 분” “현금 인증샷이요” #유통업자들 단톡방 통해 사재기 #중국인 유학생 동원 해외 반출 시도 #경찰, 639만장 적발 공적판매 조치

“단가가 얼마예요?”

지난달 말 한 메신저의 단체대화방에서 은밀한 대화가 오갔다. ‘마스크 사재기’ 세력이 모아둔 마스크를 거래하는 현장이었다. 업체가 내놓은 물량은 삽시간에 동이 났다.

판매처 앞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는 시민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스크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매크로(Macro·반복 작업을 자동화하는 컴퓨터 프로그램)를 이용한 마스크 싹쓸이, 중국인 유학생을 동원한 중국 반출 시도 등 방식들도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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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는 5일 제보자 A씨를 통해 사업 규모가 어느 정도 인증된 유통업 대표들만 초대된다는 단톡방 대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단톡방에서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마스크를 받아온 이른바 ‘브로커’가 “KF94 소형 2000장 필요하신 대표님들 연락 달라”는 말과 함께 상자에 가득 담긴 마스크 사진을 올렸다. 거래는 13분 만에 마감됐다. “1만6000장을 전량 구매하면 당일 화물 배송이 가능하다”는 글도 있었다. 마스크가 가득 담긴 상자 무더기나 5만원권 지폐 다발 등을 담은 영상도 있었다.

현금 영상은 중국계 기업이 마스크 대량 구매를 요청하면서 지급 능력을 인증하기 위해 올린 것이라는 게 A씨 주장이다. A씨는 “예전에 장당 385원꼴이던 마스크를 장당 2000~2450원 정도에 팔고 있다”며 “중간에서 폭리를 취하니 소비자들은 장당 4000원 이상 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20대 무직자 B씨는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사건이나 드루킹 사건 등에 등장했던 매크로 수법을 사용했다. 지난 2월 초부터 지인 8명의 소셜커머스 업체 아이디(ID)를 빌린 뒤 한 대의 컴퓨터로 매크로를 돌려 마스크 9000장을 구매한 혐의다. B씨가 사용한 매크로는 ‘새로 고침’을 빠르게 반복하면서 새로운 마스크 상품이 뜨면 바로 살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중국인 유학생을 동원한 중국 반출 시도도 있었다. 서울시는 지난달 18일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1만7000장의 마스크 상자가 쌓여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조사를 벌여 화장품·의료기기 수출회사가 소유주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해당 마스크는 수출용으로 신고된 상태였다. 이 업체는 채팅 앱을 통해 4명의 중국인 유학생에게 마스크를 모두 팔아치우려 했다가 적발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알고 보니 중국 업체가 중국인 유학생을 앞세워 1만7000장을 구매하려 했던 것”이라며 “업체 제시 가격은 1장에 2600원씩, 총 4400만원이었다”고 말했다. 일반 한지 마스크 120만 장가량을 기능성 마스크로 속여 온라인 쇼핑몰 등을 통해 판매하는 등의 사기 사례도 있었다.

경찰청은 지난달 28일부터 ‘마스크 유통질서 교란 행위’ 특별단속팀을 운영한 결과 5일까지 매점매석, 공무원 현장점검 방해 등의 행위를 한 151명(72건)을 검거했다. 서울시도 보건용 마스크 제조사와 유통업체 267곳을 대상으로 집중단속을 벌여 25곳의 규정 위반 사례를 적발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단속 과정에서 확보한 마스크 639만 장은 공적 판매처 등을 통해 유통되도록 조치했다. 주변에서 마스크 관련 범죄 행위를 보면 반드시 신고해 달라”고 말했다.

이가영·김민중·김현예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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