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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보행자 살리자는 5030…“획일적 시행은 곤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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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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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월부터 전국 도시지역의 차량제한속도가 시속 50㎞로 낮춰진다. 앞서 서울시는 2018년부터 종로구간에서 5030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앙포토]

내년 4월부터 전국 도시지역의 차량제한속도가 시속 50㎞로 낮춰진다. 앞서 서울시는 2018년부터 종로구간에서 5030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앙포토]

‘안전속도 5030.’

도심 제한속도 시속 60㎞→50㎞ #주택가 등 이면도로는 시속 40㎞ #내년 4월 전국 도시로 확대 예정 #“세부 효과 분석, 재원 확보 먼저”

보행자 안전을 위해 도심부 내 일반도로의 제한속도를 시속 50㎞로 낮추고, 주택가 등 이면도로의 속도는 30㎞로 줄이자는 정책이다.

2016년부터 정부와 지자체에서 추진해왔다. 우리나라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보행자 비율이 38%나 되는 등 보행자 안전수준이 외국과 비교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소 줄기는 했지만, 그 수가 한해 1500명에 달한다. 서울은 이 비율이 60%에 육박한다고 한다. 인구 10만명당 보행 중 사망자 수(2016년 기준)만 봐도 우리나라는 3.3명으로 30여개 OECD(국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가장 많다. 우리보다 높은 나라는 칠레 정도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보행 중 사망자 수가 많은 원인을 찾고 대책을 고민하다 나온 정책이 5030이다. 국내 주요 도시부의 제한속도는 대부분 시속 60㎞이고, 이면도로는 40㎞다. 이를 10㎞씩만 낮추자는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우선 주요 선진국, 특히 유럽에서는 상당수 국가가 오래전부터 도심부 제한속도를 시속 50㎞로 내렸다. 그 결과 보행자 사고가 크게 감소했다. 벨기에는 아예 2021년부터 도심부 제한속도를 시속 30㎞로 더 떨어뜨릴 계획이라고 한다.

자동차 속도별 보행자 충돌시험 결과

자동차 속도별 보행자 충돌시험 결과

또 제한속도를 낮출 경우 차량과 충돌했을 때 보행자가 중상을 입을 가능성이 시속 60㎞에선 92.6%에 달하지만 50㎞에선 72.7%로 낮아진다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실험결과도 있다. 공단 관계자는 “시속 30㎞에선 중상확률이 15.4%로 대폭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갑자기 도로에 뛰어든 보행자를 발견했을 때 운전자가 급제동하는데도 속도에 따른 차이가 크다. 시속 30㎞에서 제동거리는 6m였지만 시속 50㎞는 18m, 60㎞에선 27m로 급증한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심 내 제한속도를 낮추는 건 세계적 추세”라며 “이를 통해 보행자 관련 교통사고와 사망자 수가 줄어드는 효과도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근 스웨덴에서 끝난 도로안전국제장관급회의에서도 보행자와 차량이 빈번하게 뒤섞이는 지역에선 제한속도를 시속 30㎞로 의무화하자는 내용을 포함한 ‘스톡홀름선언’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 같은 배경에서 지난해 4월 도시지역 도로의 제한속도를 시속 50㎞로 하는 내용으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개정됐고, 내년 4월부터 전국 도시지역에 적용될 예정이다. 앞서 서울과 부산 등에서는 도심에서 5030 시범운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 사이에선 5030 정책에 대한 다소 우려 섞인 반응도 나온다.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 5030을 시행했을 때 얻을 효과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빈약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5030의 효과 분석은 최근 서울시와 교통안전공단이 내놓은 자료가 거의 유일하다. 이 자료에 따르면 서울 종로 구간(세종로 사거리~흥인지문 교차로)에 해당 정책을 도입한 2018년 7월부터 12월까지 보행자 사고 건수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15.8%가 줄었다는 것이다. 19건에서 3건이 감소했다.

최근 3년 차대사람 교통사고 현황

최근 3년 차대사람 교통사고 현황

자료에는 제한속도에 따른 통행시간의 차이를 실험한 내용도 담겨 있다. 지난 1월 중순 중앙버스전용차로제가 시행 중인 한남~강남대로, 통일~의주로, 망우~왕산로 등 3개 구간에서 시속 60㎞와 시속 50㎞로 주행한 두 차량의 통행시간을 비교했다. 출근 시간과 낮, 퇴근 시간, 심야 등으로 나눠 실험했는데 두 차량 간 통행시간은 평균 2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발표 자료에서는 2분 차이가 미미하다고 보는 듯하지만 실제로 도심을 이동하는 차량이 모두 2분씩 늦는다고 하면 그 시간 손실은 상당한 규모가 될 것”이라며 “최소한 이러한 손실과 5030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효과를 수치상으로 비교 분석한 자료가 있어야 대국민 설득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서울만 해도 도심 내 도로별로 차량 통행패턴과 보행자 특성이 다를 텐데 종로구간의 실험결과만으로 정책 확대 여부를 판단하는 건 성급한 측면이 있다”며 “도로별 특성에 따라, 보다 유연한 정책 추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속도만 줄여서 보행자 안전이 제대로 확보될지도 미지수다. 학교 주변 등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의 경우 불법 주정차가 원인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인해 운전자의 시야가 가리기 때문에 비상시 대처가 어렵다. 이를 해결하려면 무인단속카메라 설치 등 불법 주정차 단속강화를 위한 대책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그리고 속도를 인위적으로 줄이기 위한 방지턱 설치 등 도로 구조도 많이 바꿔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이를 위한 예산을 충분히 확보했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 올해 행정안전부가 5030을 위한 시설개선비용으로 전국 46개 지자체에 주는 돈은 86억원에 불과하다. 지자체당 2억원이 채 안 된다. 이 정도로는 제한속도 안내표지판과 도로 표시도 제대로 교체하기 어렵다. 5030, 그 좋은 취지의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보다 구체적인 분석과 실행계획, 그리고 재원 확보 방안이 뒤따라야 한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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