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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일대일로 핵심 이탈리아·이란…코로나에 길이 끊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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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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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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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산으로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추진해온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이 타격을 받을까. 일대일로는 중국이 대대적인 인프라 개발로 유라시아 국가들과 연결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다.

G7 중 첫 일대일로 참여 이탈리아 #중 이민자가 이탈리아 브랜드 제조 #이란 철도 건설사업, 일대일로 핵심 #인프라 혈맥지역 코로나19로 혼란

문제는 중동과 유럽의 일대일로 핵심 교두보인 이란과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그 여파로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일까지 이란에선 978명의 확진자와 54명의 사망자가, 이탈리아에선 1689명의 확진자와 35명의 사망자가 각각 발생했다. 사망자가 중국(2912명) 다음으로 많다.

지난달 18일 이란 테헤란의 어저디(자유) 탑에 중국과 우한을 격려하는 글귀가 비치고 있다. 이란과 중국의 돈독한 관계를 보여주는 이 행사를 벌일 당시만 해도 이란은 조용했지만 지금은 전국에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달 18일 이란 테헤란의 어저디(자유) 탑에 중국과 우한을 격려하는 글귀가 비치고 있다. 이란과 중국의 돈독한 관계를 보여주는 이 행사를 벌일 당시만 해도 이란은 조용했지만 지금은 전국에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AP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선 지난 1월 31일 유럽의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1월 23일 밀라노로 입국한 2명의 중국인 여행자로 버스를 타고 계속 여행하다 그달 30일 로마에서 확진을 받고 입원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즉시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중국 항공편을 중단시켰지만, 바이러스 확산을 막진 못했다.

이런 이탈리아는 지난해 3월 23일 중국과 일대일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서방 주요 7개국(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 중 첫 참여국이 됐다. 중국은 이탈리아 동북부 트리에스테 항구와 서북부 제노바 항구의 개발·투자에 참여할 길을 텄다. 트리에스테는 발칸반도와 중유럽·동유럽으로 이어지고, 제노바는 프랑스를 거쳐 서유럽 각지로 연결되는 물류 거점이다. MOU가 실현될 경우 미래 경제가치가 200억 유로(약 26조원)에 이를 것으로 평가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 침체를 겪고 2018년 경제성장률이 1.5%, 그해 12월 기준 실업률이 10.3%에 이르렀던 이탈리아로선 일대일로 참여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싶었을 것이다.

30만 중국인 이탈리아 정착

이란과 국경을 맞댄 이라크 중남부의 시아파 성지 나자프에서 발열 검사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란과 국경을 맞댄 이라크 중남부의 시아파 성지 나자프에서 발열 검사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탈리아엔 이미 중국 이주민들이 공장·가게를 운영하며 공동체를 형성해왔다. 유럽 온라인 통계포탈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이탈리아엔 2019년 1월 기준 29만 9800명의 중국인이 이주했다. 중국인은 루마니아(120만)·알바니아(44만)·모로코(42만) 다음가는 대규모 이주민 집단을 형성한다. BBC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이탈리아 최대 차이나타운이 있는 패션 도시 밀라노와 섬유도시인 토스카나 주 프라토에 몰려 산다. 프라토에선 중국인 소유의 의류업체에서 중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이탈리아 브랜드 제품을 제작해 ‘메이드 인 이탈리아’ 표시를 붙여 전 세계에 수출한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는 프라토의 중국인들이 저가 패스트 패션으로 시작해 중저가 의류 납품을 거쳐 세계적 고가 럭셔리 브랜드의 하청을 맡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중국-이란을 잇는 철도망

중국-이란을 잇는 철도망

독일 국제방송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패션 수도로 불리는 밀라노의 무역업체 3만9242개 가운데 3012개가 중국인 이민 1세 소유이며 이민 2세 소유를 포함하면 전체의 13% 이상을 중국계가 운영한다고 보도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탈리아에 이민 간 중국인의 90% 이상이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 출신이라고 지적했다. 원저우 상인은 상술과 해외 진출력이 뛰어나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린다. 원저우는 지난 2월 2일 코로나19 확산으로 발원지인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 이어 중국에서 두 번째로 도시가 봉쇄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란, 무역·인프라 중국 의존

프란시스코 교황이 지난해 10월 2일 바티칸에서 이탈리아 프라토에 이주한 중국인들을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란시스코 교황이 지난해 10월 2일 바티칸에서 이탈리아 프라토에 이주한 중국인들을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란에선 지난 2월 19일 순례자로 붐비는 이슬람 시아파 성지 쿰에서 2명이 처음 확진 판정을 받고 당일 숨졌다. 중동의 첫 코로나19 희생자다. 관영 IRNA 통신 인터넷판에 따르면 이란은 지난달 27일 중국 국적자의 입국을 금지했지만 코로나19 확산은 여전하다. 이란은 2018년 5월 미국이 핵 합의에서 탈퇴하고 경제제재를 재개하면서 의약품 부족이 심화해 당뇨·고혈압 등 기저 질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이란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존해왔다. 2017년 전체 수출의 31%, 수입의 37%를 중국이 차지할 정도다. 이란은 지리적으로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중간에 위치해 일대일로 사업에서 중심 역할을 해왔다. 중국은 이란과 철도 연결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신장위구르 우루무치에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을 거쳐 이란의 테헤란까지 잇는 철로 정비를 추진해왔다. 2016년 시험운행 결과 저장(浙江) 성 물류·상업 도시인 이우(義烏)에서 테헤란까지 14일, 상하이(上海)에서 테헤란까지 12일이 각각 소요됐다. 해상·육상을 거쳐 상하이-테헤란 이동 시간 30일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 고속철을 깔면 경제효과가 날개를 달게 된다.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 중국과 유럽을 잇는 전략적 우회로이기도 하다.

중국은 이란 테헤란에서 서부 타브리즈를 지나 터키·유럽으로 연결되는 노선과 동북부 시아파 성지인 마슈하드로 이어지는 철도의 개량 작업을 진행 중이다. 중국 자금과 노동자를 앞세운 인프라 사업이다. 이란 북쪽의 투르크메니스탄, 동쪽의 아프가니스탄을 잇는 교량 개선도 한창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해 이란 내 중국인 노동자들의 격리·철수 등으로 철도 사업이 중단되면 일대일로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