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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총성 없는 전쟁 치르는 대구·경북에 ‘정치적 칼’ 겨눈 유시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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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경서 문학평론가·번역가

박경서 문학평론가·번역가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거닐고 있다. 공산당이라는 유령이.” ‘코로나19’가 대구를 덮친 지금 『공산당 선언』의 첫 구절이 문득 생각난다. “하나의 유령이 대구를 거닐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유령이”라는 패러디가 가능한 상황이다. 대구는 전염병과의 사투 중이다.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모순어법(Oxymoron)이 현실 세계에서 지금보다 더 간절하게 와 닿은 적이 있었나.

대구는 코로나로 최악 위기인데 #정치적 색깔 드러내 폄하할 땐가

작금의 대구 상황은 정말 급박하다. 코로나19 전문병원으로 전환한 대구의료원을 비롯한 각 대학병원은 의료 인력이 태부족해 거의 한계 상황에 왔다. 코호트(Cohort) 격리 상태에 있는 경북 청도 대남병원 의료진은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시민들은 마스크 한장이라도 사려고 수백m 줄을 서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젊음의 거리 동성로는 적막감만 감돈다. 어디를 가도 사람 보기가 힘들다. 간혹 생필품을 사려는 사람들만 마트를 황급히 오간다. 곧 경칩이라 꽃이 하나둘 피어날 테지만 대구는 ‘침묵의 봄’이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경북대병원 염헌규 교수는 2월 25일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자가격리 중인 한 인턴이 자신을 포함한 무증상 인턴들은 격리된 지 1주일이 지나 증상이 없으니 조기에 현장으로 복귀시켜 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성구 대구시의사회 회장은 같은 날 대구·경북 지역 의사들에게 “지금 바로 선별진료소로, 격리병원으로, 응급실로 달려와 달라”고 호소했다. 바로 다음 날 의사 60여 명이 동참의 뜻을 밝혔고, 지금은 300명 이상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권영진 대구시장이 “(정부가 중국인 입국 차단을) 그때 조치하는 게 옳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지적한 데 대해 “아주 정치적 발언”이라고 ‘정치적 칼’을 들이댔다. 유 이사장은 권 시장을 겨냥해 “그냥 눈물 흘리기 직전의 표정을 하면서 신천지에 협조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게 무슨 공직자냐”면서 “이 분은 별로 열심히 (코로나19를) 막을 생각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비아냥거렸다.

오랜 세월 대구에 사는 필자가 보기에 지금 같은 재난 상황에서 정치적 색깔을 드러낸 유 이사장의 발언은 개탄스럽다.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병사들의 등 뒤에서 총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중국 여행자 입국 금지는 대한의사협회가 무려 일곱 차례나 정부에 건의한 것이다. 따지기를 좋아하는 유 이사장은 의사협회보다 더 전문가인가.

영국의 정치소설가 조지 오웰(1903 ~1950)은 “당신이 침몰하는 배 위에 있을 때 당신의 생각은 그 침몰하는 배에 집중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 말처럼 지금 대구시민들은 코로나19 퇴치 외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대구시민과 공직자·의료인이 힘겹게 싸우며 흘리는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 아니다. 정치적 입장과 관점에 따라 견해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말은 시점과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한다. 대구의 절박한 상황을 두고 정치적으로 깎아내리는 언사는 제대로 된 지식인의 자세가 아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 ‘애민(愛民)’ 편에서 “염병, 천연두, 여러 민간 병으로 죽는 천재(天災)가 유행할 때는 마땅히 관(정부)이 구조해야 한다”고 했다. 백성이 두려워하는 일부터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재인 정부는 다산의 가르침을 깊이 새겨야 한다.

대구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애국 운동의 도시다. 일제의 침탈에 맞서 분연히 일어나 주권 수호 운동을 했듯이 다시 한번 힘을 합쳐 코로나19를 퇴치할 것이라 확신한다. “승리는 가장 끈기 있는 자에게 돌아간다”고 역설한 나폴레옹의 말을 빌려 전염병과 싸우는 대구 시민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박경서 문학평론가·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