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정배의 시사음식

코로나19와 라면

중앙일보

입력 2020.03.0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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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정배 음식 칼럼니스트

박정배 음식 칼럼니스트

라면은 쉽다. 값이 싸고 보관도 용이하다. 조리가 편하고 맛도 적당하다. 지난달부터 라면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코로나19와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 때문이다.

라면은 태생적으로 전쟁·기근과 관련이 있는 먹거리다. 중국 서북쪽 란저우의 늘여 만든 라미엔(拉麵)이 일본에서 라멘(ラーメン)이 됐다. 전후에 먹을 것이 부족했던 일본은 수분을 최소화한 인스턴트 라멘을 낳았다. 1960년대 한국에서는 도시 인구 증가와 잇따른 흉작으로 혼·분식 장려 운동이 펼쳐졌다. 분식에 익숙한 화교들이 짜장면·짬뽕·만두로 혼·분식 캠페인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1963년 한국 최초의 인스턴트 삼양라면이 등장했다. 60~70년대 내내 라면은 가정은 물론 학교·군대를 통해 한국인에게 가장 기본적인 맛의 경험을 남겼다. 삼양라면은 63년 900만원에서 66년 10억원, 70년 100억원이란 폭발적 매출을 기록했다.

[사진 박정배]

[사진 박정배]

분식 장려 운동이 한창이던 69년, 충무로에서는 신영균·최은희 같은 당대 최고 스타들이 분식점을 차려 화제가 됐다. 인스턴트 짜장면이 70년에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당시 중식당의 대명사인 아서원이 참여한 농심 인스턴트 짜장면은 짜파게티로 거듭났고, 너구리를 만나면서 짜파구리가 태어났다. ‘기생충’ 두 가족의 이상한 동거를 상징하는 짜파구리는 채끝이 더해지면서 생존의 음식에서 미식으로 신분이 수직 상승했다. 요즘 미국에서 일본과 시장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후발 주자 한국 라면이 성공의 터닝 포인트를 찍을 가능성이 크다.

2003년 사스 공포가 중국을 지배했다. 한국에서 사스 감염이 이례적으로 적은 이유를 외신이 김치와 매운맛으로 보도하면서 컵라면이 주도하던 중국 시장도 달라졌다. 한국의 김치라면·신라면 같은 봉지라면이 안착하게 됐다. 인스턴트 라면의 창시자 안도 모모후쿠는 라면과 김치의 결합을 보고 “한국인은 음식을 건강하게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극찬했다. 사스와 메르스·신종플루와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우리 사회를 공포로 몰고 갈 때마다 사람들은 라면을 비상식으로 준비하고 먹는다. 일본이나 중국은 우리보다 면을 많이 먹지만 인스턴트 라면보다 식당에서 즉석면을 즐긴다. 세계라면협회 통계를 보면 인스턴트 라면의 개인 소비에서 한국은 부동의 1위다. 예로 2018년 2위 베트남의 소비량(53.9개)을 20개 이상 따돌린 74.6개다.

라면은 두 얼굴을 지녔다. 먹기에 간편하지만 대규모 설비가 필요한 고난도 장치산업이다. 한국 라면은 치열한 경쟁 덕에 K팝만큼 탄탄하다. 요즘 상황처럼 꼬불꼬불한 면발이지만 밑바닥의 순간순간마다 라면은 삶의 연속성과 희망을 준다. “라면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박정배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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