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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만 남겨라” 세계 휩쓴 철의 경영…21세기 되자 “낡은 교과서” 비판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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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잭 웰치 1935~2020

잭 웰치 1935년 출생 | 1960년 어버나 - 샴페인 일리노이대 석ㆍ박사 졸업 | 1960년 GE 입사 | 1981~2001년 GE 최고경영자(CEO) 재임

잭 웰치 1935년 출생 | 1960년 어버나 - 샴페인 일리노이대 석ㆍ박사 졸업 | 1960년 GE 입사 | 1981~2001년 GE 최고경영자(CEO) 재임

“세계 1위가 될 수 없는 사업부는 전부 매각하라.”

GE 20년 CEO 잭 웰치 별세 #재임 동안 매출 4배, 시총 30배로 #11만명 해고 ‘중성자탄 잭’ 별명 #“정주영과 의견 갈려 팔씨름해봐” #이병철엔 “비전 등 4개 덕목 갖춰” #트럼프 “잭 같은 리더 없었다” 트윗 #뉴욕증시 화면에 사진 띄워 추모

우등생이 아니면 모조리 내치라고 외쳤던 ‘철(鐵)의 경영인’ 잭 웰치(85) 전 제너럴 일렉트릭(GE) 8대 회장(1981~2001년 재임)이 2일(현지시간) 신부전증으로 별세했다.

21세기가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시대였다면, 20세기는 단연 웰치 전 회장이 세계 경영의 룰을 정하던 때였다. 목표를 세우고 직원들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불도저식 경영’은 90년대 전 세계 기업인과 경영학도에게 바이블처럼 여겨졌다. 170㎝로 큰 키는 아니었지만, 웰치가 경영계에 남긴 족적은 거대하다.

GE 입사 21년 만인 81년 웰치는 45세 나이로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다. 취임과 동시에 엄청난 강도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열정과 능력을 갖춘 ‘상위 20%’, 잠재력이 있는 ‘70%’, 실적이 나쁜 ‘하위 10%’의 기준으로 직원을 분류하는 이른바 ‘활력 곡선(vitality curve)’ 개념을 창안했다. 상위 20%에겐 보너스를 안겼고, 하위 10%는 해고했다. 그는 GE 170여 개 사업부 가운데 110여 개를 없앴고, 취임 5년 만에 내보낸 직원은 11만명에 달했다.

사람을 하도 많이 자르다 보니 ‘뉴트론 잭(Neutron Jack·중성자탄 잭)’이라는 악명도 얻었다. 중성자탄이 터지면 건물은 남기고 인명만 피해를 주는 것과 같이, 웰치가 한 번 다녀간 공장은 대규모 인력 감축을 한다는 의미에서다.

1996년 10월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만난 잭 웰치 전 GE 회장(오른쪽). [사진 LG]

1996년 10월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만난 잭 웰치 전 GE 회장(오른쪽). [사진 LG]

그가 GE 회장으로 일하는 20년 동안 GE 그룹 매출은 4배 이상 증가했고, 시가총액은 30배 가까이 늘었다. 취임 당시 주당 1달러대에 그쳤던 GE 주가는 그의 재임 막바지인 2000년 9월 55달러로 치솟았다. 지금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2일 GE 주가는 11달러로 웰치 재임 시절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GE의 성과는 웰치식 경영의 전 세계적 유행을 불러왔다. 웰치는 엄격한 품질 관리 시스템인 ‘식스 시그마(Six Sigma)’, 직장 내 업무 절차를 간소화하고 관료주의적 문화를 없애는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주창했다. 전 세계 수많은 기업인은 웰치가 만든 경영이론을 배우고, 도입했다. 웰치가 한국 경영계에 미친 영향도 상당하다. 그는 한국을 수차례 방문해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만나 사업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한 강연에서 “한국의 리더십을 말한다면 정주영 회장이 떠오른다”며 “정 회장과 의견이 엇갈리자 팔씨름으로 힘을 겨뤄보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병철 창업주에 대해서는 “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네 가지는 책임감과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 능력, 올바른 비전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창업주는 그 네 가지를 고루 갖춘 경영자”라고 평가했다.

이재용 GE 인재사관학교서 연수받아

잭 웰치와 GE 주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잭 웰치와 GE 주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이건희 회장의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변화가 필요하기 전에 먼저 변하라(Change before you have to)’는 웰치의 혁신방법론과 일맥상통한다. 2002년 당시 만 34세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GE의 인재사관학교인 크로톤빌 연수원에서 한 달간 혁신 방법론을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웰치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한쪽에서는 ‘경영의 귀재’라고 부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구(舊) 경영의 화신’이라고 평가절하한다. 1999년 그를 최고 경영자로 꼽았던 포천은 지난 2006년에 ‘미안합니다, 잭 (Sorry, Jack)!’이란 제목의 표지 기사를 10쪽에 걸쳐 실었다. 한때 미국 경영의 교과서였던 웰치의 경영전략은 이제는 ‘낡은 성공이론’이라며 경영 현장에서 퇴장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무자비한 구조조정으로 확보한 경쟁력과 실적이 지속 가능하냐는 의문이었다.

회계부정 의혹 퇴진 뒤 GE금융 내리막 

2001년 웰치는 GE에서 물러난다. 불명예 퇴진이었다. 웰치에게 ‘경영의 귀재’란 수식을 안겼던 신사업인 금융 부문에서 수익 부풀리기가 있었다는 회계 부정 의혹이 함께 일었다. 금융 부문은 GE 순익의 40~50%를 담당하는 효자 사업이었다. 웰치의 퇴진 이후 GE는 내리막길을 걷는다. 후임 제프리 이멜트는 취임 3년여 만에 부실이 커진 금융 부문 정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GE의 전통 주류 사업이었던 제조업 부문도 빠르게 후퇴했다. 웰치식 구조조정이 GE 제조업의 핵심 경쟁력을 해쳤고, 혁신의 타이밍도 놓치게 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재계 거인의 타계 소식에 미국에서는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잭 같은 리더는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생전 공화당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웰치에 대해 “나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다”며 “그는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는 이날 ‘세기의 경영인’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입회장 스크린마다 웰치의 사진을 내걸었다. 장례식은 오는 5일 오전 뉴욕 5번가의 명소인 성 패트릭 성당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잭 웰치 어록

“변화가 필요하기 전에 먼저 변하라”

“현실을 직시하라. 당신이 원하는 것 말고”

“1등이나 2등이 아니면 버린다”

“경쟁 우위에 서 있지 않다면 경쟁하지 말라”

“타고난 재능보다 열정이 중요하다. 열정은 최고의 경쟁력이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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