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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사의 일기]“방호복 안 땀으로 흠뻑..코피 쏟는 간호사도”

중앙일보

입력

이희주 계명대 성서 동산병원 간호사. [사진 이희주]

이희주 계명대 성서 동산병원 간호사. [사진 이희주]

내일부터 코로나 확진 환자의 입원 병동에서 근무해줬으면 좋겠다는 간호부의 부탁 아닌 통보를 받았을 때 순간 머리가 하얘지면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희주(50) 계명대 성서 동산병원 간호사

“왜 내가 파견 가야 되지?”
사실 무섭고 두려웠다. 코로나 확진 환자와 초밀착 접촉이 불가피할 텐데, 혹시라도 내가 감염되면 함께 생활하고 있는 팔순 고령의 부모님에게 전파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섰다. 아예 집을 나와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고, 전날 밤잠도 오지 않았다.

근무 첫날 지역거점병원인 대구동산병원에 도착하니 병원의 모든 출입구가 봉쇄된 상황에서부터 압도됐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근무복으로 탈의한 후 병동 투입 시 주의사항에 대해 교육받을 때는 하나라도 놓칠까 초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날 방호복(레벨D 개인보호구) 착탈의 교육용 동영상을 돌려보면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실전에 투입되고 보니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전신 보호복과 마스크·고글·덧신·장갑을 착용했고, 방호복을 입는 데에만 20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전신 방호복에 덧신까지 신으니 배치받은 병동으로 이동하기 위해 걷는 것조차 불편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쉬기가 힘들었으나 그 정도의 불편함은 서론에 불과했음을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과로에 코피 흘린 간호사..지혈 뒤 투입되기도

밤 근무 간호사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은 뒤, 모든 입원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활력 징후(체온, 맥박, 호흡, 혈압, 산소포화도)를 측정하고 아침 식사 도시락을 일일이 제공하면서부터 고글 안에 습기가 차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이마에서부터 땀이 줄줄 흘러 고글 안으로 타고 내렸고, 방호복 안 근무복은 이미 땀으로 흠뻑 다 젖어서 당장에라도 모두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직 교대시간은 멀었고 정말이지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런데 갑자기 옆 병동 근무 간호사가 급하게 병동을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아직 교대시간이 아닌데, 무슨 일이지? 했더니, 헉! 코피가... 사실, 입원환자를 돌보기 위해 간호사가 24시간 동안 잠시라도 환자 곁을 비우지 못하고 3교대로 근무해야 하는데, 간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도 못한 채 곧바로 다시 업무에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피로도는 계속 누적되고 업무 강도마저 높아서 대부분의 간호사가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체인력은커녕 적정인력조차 부족한 형편이었기에 결국 그 간호사는 밖에서 지혈 후 다시 투입되어 코피 투혼으로 남은 근무를 마쳐야만 했고, 또 다른 간호사는 근무 도중에 탈진해 쓰러진 경우까지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고글 안 습기 가득..병동 탈출 기다려

전신 방호복을 입은 상태에서는 평상시 일상적인 간호활동 전부가 힘들었다. 고글 안에 습기가 차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정확한 투약을 위해 의사 처방을 확인하는 것도 힘들었고, 장갑을 착용하고 있기 때문에 해열제 주사를 놓기도 쉽지 않았고, 수액 주입을 고정하기 위해 반창고를 부착하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시계로 눈이 갔고, 시간이 왜 그렇게 안 가는지 10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 어서 빨리 다음 근무조에게 인수·인계하고 병동을 탈출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근무를 마치고 방호복 탈의 시 감염에 노출되는 위험이 매우 높기 때문에 올바른 탈의 순서와 방법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손 소독을 하며 탈의 컨테이너를 벗어나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방역용(N95) 마스크와 고글을 장시간 눌러쓰고 있느라 얼굴에 붉은 자국과 상처가 생겼고, 땀으로 젖은 반소매의 얇은 근무복 상태로 찬바람을 쐬며 탈의실까지 뛰어가면서 감기에 걸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일단 근무를 마쳤고 병동을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모든 상황이 용서되됐다. 가벼운 걸음에 날아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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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입원치료 현장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의료인력뿐만 아니라 진료를 지원하는 많은 사람이 격무와 감염위험에 시달리면서도 책임감과 사명으로 최전선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다. 특히 간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여 간호사들이 휴일도 없이 근무하거나 한 간호사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2개 근무조를 연이어서 근무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코로나 입원치료 투입을 나의 소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입원치료의 최전선 현장에 투입된 첫 경험은 정말 강렬했고, 긴 하루였다. 우리 모두가 각자 제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일은 격리되어 치료받고 있는 환자의 상태가 오늘보다 좀 더 나아지길, 다음 확진자가 더는 나오지 않고 하루빨리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정리=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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