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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처럼 감염자 마녀사냥" 코로나 광기 꾸짖은 伊 교장

중앙일보

입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한산해진 이탈리아 밀라노의 기차역에서 24일(현지시간) 마스크를 쓴 한 여성이 개찰구로 들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한산해진 이탈리아 밀라노의 기차역에서 24일(현지시간) 마스크를 쓴 한 여성이 개찰구로 들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사람들은 불안할 때, 이야기만 들어도 마치 본 것처럼 여깁니다. 이런 집단 망상에 휘둘리지 말고 충분한 예방을 하면서 차분히 평소 생활을 해나가길 바랍니다."

유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심각한 이탈리아에서 한 고교 교장이 휴교 중인 학생들에게 보낸 이런 내용의 메시지가 이탈리아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1630년 페스트 상황 묘사한 근대소설 인용 #"전문가 경시, 생필품 사재기 그때도 그랬다" #"사람 간 '독' 품게하고, 야만으로 되돌려" #"합리적인 사고 없인 바이러스 극복 못해"

2일 일본 아사히신문과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밀라노 볼타고의 도메니코 스킬라체 교장은 페스트(흑사병)가 대유행하던 1630년 밀라노의 상황을 묘사한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근대소설 『약혼자들』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해 현재의 ‘마녀사냥’식 혼란상을 일갈했다.

"외국인을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정부 당국 간에 격렬히 충돌하고, 최초 감염자를 히스테릭할 정도로 찾아내고, 전문가를 경시하며, 감염됐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사냥하고,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엉터리 치료법을 시도하고,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의료 위기가 오는 등 거의 모든 것이 소설에 그려져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만초니의 소설이 아니라 오늘자 신문에서 튀어나온 내용이라 해도 무방해 보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신종 코로나 사태가 초래한 가장 큰 사회적인 위협은 인간관계를 ‘오염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질병이 전 세계에서 급속히 확산하는 것은 우리 시대가 남긴 결과입니다. 수백 년 전에는 그 속도가 조금 느렸을지 모릅니다. 예나 지금이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태가 초래하는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는 인간관계에서 ‘독을 품는 것’, 그리고 시민의 생활을 야만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스킬라체 교장은 글 말미에 학생들에게 이성을 강조하면서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우리는 선조들이 그랬듯이 똑같은 방식으로 타인을 위협이나 잠재적인 침략자처럼 여깁니다. … 우리는 17세기에 비해 훨씬 진일보하고 정확한 의학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조직과 인간성이란 귀중한 재산을 지켜내야만 합니다. 합리적인 사고를 합시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페스트가 정말 우리를 이겨버릴지도 모릅니다. 학교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볼타고의 도메니코 스킬라체 교장이 휴교 중인 학생들에게 쓴 메시지가 이탈리아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볼타고의 도메니코 스킬라체 교장이 휴교 중인 학생들에게 쓴 메시지가 이탈리아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또 그는 학생들에게 "이런 때일수록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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