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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차이나 게이트' 음모론 키웠다, 포털보다 못한 靑청원 투명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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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지난 1일 음모론 '차이나 게이트' 검색량이 삼일절 태극기 검색을 넘어섰다. 사진 구글트렌드 홈페이지

지난 1일 음모론 '차이나 게이트' 검색량이 삼일절 태극기 검색을 넘어섰다. 사진 구글트렌드 홈페이지

또 하나의 신종 바이러스가 네트워크에 퍼지고 있다. ‘차이나 게이트’ 음모론이다. ‘중국이 중국교포를 통해 국내 포털 뉴스 댓글과 청와대 국민청원을 현 정부에 유리하게 조작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차이나 게이트'는 지난 1일 네이버와 구글의 급상승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청와대 청원 조작 주장까지 등장 #방치하면 치유 힘든 신뢰 상처 #‘문 대통령 응원합니다’ 청원 글 #실제 중국 접속 비율 0.02%뿐 #중복동의·접속지변경 못하게 #청와대, 국민청원 재정비해야

음모론이 대개 그렇듯, 내용은 충격적이고 검증은 어렵다. 그렇다고 공동체의 신뢰를 흔드는 음모론의 확산을 방치할 순 없다. 선제적 대응으로 방역해야 한다. 포털·청와대 사이트의 해외 접속을 차단하거나 이명박 정부의 ‘미네르바 수사’처럼 유포자를 색출하자는 게 아니다. 데이터 공개를 통한 ‘투명성’을 높이잔 얘기다. ‘검증불가’ 속에 피어난 음모론은 ‘검증가능’ 영역에서 힘을 잃는다.

네이버·다음 등의 뉴스 댓글에 관련 정보를 공개하면 된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에 대해 접속 국가 비율, 우회 접속 비율 등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지금은 작성자의 연령ㆍ성별 비율만 공개된다(네이버). 네이버가 '뉴스 댓글 통계' 코너에서 댓글이 작성된 국가 비율을 공개하지만, 그날 발행된 모든 뉴스 댓글에 대한 수치다. 기사별로 해외 접속 비율을 보여줘야 의미 있는 정보다.

'소셜 로그인'을 허용해 1인이 여러 번 동의할 수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 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소셜 로그인'을 허용해 1인이 여러 번 동의할 수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 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도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지금은 민간 포털 사이트보다도 허술하다. 한 예로, 네이버·다음이 드루킹 사태 이후 없앤 ‘소셜 로그인’이 국민 청원에는 여전히 남아있다. 네이버·카카오톡·페이스북·트위터로 로그인해서 특정 국민 청원에 동의할 수 있다. 한 사람이 4개의 소셜 로그인으로 동의하면 별도로 집계된다. ‘1인 1표’가 아닌 ‘1인 다(多)표’다. 게다가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1명이 계정 여럿을 만들 수 있다. ‘100만 청원’이 나와도 1만 명이 100번씩 동의한 건지, 100만 명이 1번씩 동의한 건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는 민심, 너희는 조작’이라는 불신을 낳는 구조다.

청와대는 이번 논란이 일자 2일 ‘문재인 대통령님 응원합니다’ 청원의 지역별 접속 비율을 공개했다. 96.8%가 국내 접속이고 중국 접속 비율은 0.02%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공개를 상시화하면 보다 투명해진다.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 동의’를 넘긴 각 청원에 대한 이용자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다. 가상사설망(VPN)을 통한 우회 접속을 막는 것도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접속 국가 분류는 IP주소로 하는데, VPN을 이용하면 IP를 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야는 지난해 12월 ‘여론 형성 조작을 방지할 책임이 인터넷 사업자에게 있다’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개정안에 합의하기까지 했다(국회 계류중). 민간 사이트의 책임이 그럴진대 하물며 청와대일까. 두 곳에서 여론 조작이 발생했을 때의 파장은 비할 수 없다.

한국 사회는 확증 편향, 저신뢰, 진영 논리의 기저질환이 있다. 최근 큰 병고도 겪었다. ‘드루킹 사건’은 인터넷 여론 불신의 트라우마를, ‘조국 사태’는 극심한 진영 대립의 상흔을 남겼다. 국내 체류 중국 교포를 둘러싼 혐오ㆍ갈등이 음모론과 만나 심각한 합병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음모론에 적용할 ‘데이터 공개’ 방역의 핵심은 세 가지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의 강력하고 발 빠른 선제적 조치”를 하고, “당장 증상이 없어도 전수조사”하며,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이다. 참고로 3가지 모두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대통령 말씀이다.

심서현 산업기획팀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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