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최대 위기 맞은 문재인 정권

중앙일보

입력 2020.03.03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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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현곤 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고현곤 논설실장

고현곤 논설실장

이명박 정부는 1회 KO패를 당했다. 2008년 4월 광우병 사태가 결정타였다. 2007년 말 대통령 당선 직후 70%를 넘던 지지율도 21%로 급전직하했다. 불과 4개월 만에 국민의 마음이 떠났다. 최고경영자(CEO) 출신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 개혁과제는 추동력을 잃었다. 놀랍게도 정권 초에 사실상 레임덕이 시작된 것이다.

이명박 광우병·박근혜 세월호 연상
국민들 보호한다는 믿음 못 줘
현재 코로나 대처, 정치적 계산 앞서
사과대신 남탓, 불신 커지면 레임덕

왜 그렇게 됐을까. 그  짧은 기간에 국민은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정부는 특권층 냄새를 풍기며, 특정계층에 편향된 인사를 했다. 국민 동의 없이 대운하를 고집했다.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며 밀어붙였다. 지나친 자기 확신이었다. 승자독식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지켜보는 국민 마음속에 울화(鬱火)가 차곡차곡 쌓였다.

그러던 중 광우병 괴담이 나왔다. 악의적 가짜뉴스였지만, 정부는 마음 떠난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다. 정부가 미국에 잘 보이기 위해 국민의 생명을 팔아 치웠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했다. 차곡차곡 쌓인 울화가 어느새 큼직한 의구심으로 자라나 있었다. ‘대통령은 국민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길까’라는. 이 대통령은 광우병 사태 두 달 지나서야 “청와대 뒷산에 올라 자책했다”며 사죄했다. 때를 놓친 뒤였다.

박근혜 정부의 비극이 시작된 건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다. 진도 팽목항에 내려간 박 대통령이 희생자 가족들과 만난 장면이 TV에 생중계됐다. 가족들은 체육관 바닥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대통령은 단상 위에서 질문을 받았다. 단상 주변에는 덩치 큰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 그 거리 만큼이나 대통령과 국민의 마음은 떨어져 있었다.

박 대통령이 체육관 바닥에서 머리 풀어헤치고, 희생자 가족들 끌어안고 며칠이고 같이 울면서 진심으로 아픔을 같이했으면 어땠을까.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 천막이 그렇게 오래 있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이 두고두고 논란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이 슬픔을 같이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시 의구심이 커졌다. ‘대통령은 국민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길까.’ 박 대통령은 불안한 민심을 읽지 못했다. 무신경하게 대처하다 밑천을 드러냈다. 레임덕은 집권 2년 차인 세월호 때 시작됐다.

그 뒤 대통령을 둘러싸고 불통, 유체이탈 화법, 문고리, 비선 실세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세월호 때 싹튼 불신이 끝내 탄핵으로 이어졌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문제에 자기 일처럼 몸을 던지지 않았다. 국민 신뢰를 잃고, 정권 실패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달라졌나. 아닌 것 같다. 지난해 조국 사태 때 억지와 궤변으로 자기편 감싸기에 급급했다. 국민에게 상처를 줬다. 여권은 공수처 설치와 선거제 개편을 밀어붙였다. 오만과 독선은 전체주의를 떠올리게 했다. 국민은 다시 몸서리쳤다. 전 대통령들의 일방통행이 오버랩됐다. 정부 간판만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었을 뿐, 국민을 대하는 사고의 틀은 똑같았다. ‘우린 왜 대통령 복(福)이 이다지도 없는가’라는 탄식이 나왔다. 다시 국민 마음속에 울화가 차곡차곡 쌓였다.

공교롭게도 이때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광우병·세월호처럼 코로나는 국민 생명과 안전이 걸린 민감한 사안이다. 조국 사태보다 10배, 100배 폭발력이 강하다. 재난은 재난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세월호가 사고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오판이었나. 정권의 최대 위기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는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訪韓)에 매달렸다. 속사정이야 어찌 됐건 우물쭈물 눈치 보다가 중국 입국을 막지 못했다. 골든타임을 놓쳤고, 코로나를 대참사로 키웠다. 대통령의 소망대로 중국과 ‘한 몸’이 됐다. 그 대가로 국민 생명이 위협받고, 전 세계가 혐오하는 국가가 됐다.

정부의 대처는 국민 보호보다 정권 이익과 정치적 계산을 우선으로 하는 듯하다. 이 와중에도 코로나 사태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프레임 짜기에 여념이 없다. “중국서 온 한국인 때문”이라고 자국민 발등을 찍기에 이르렀다. ‘문 대통령이 중국 대통령이냐’는 말이 나돌고, 대통령 탄핵 청원이 140만명을 넘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눈물 글썽이며 사과라도 했는데, 문 대통령은 그런 게 없다. 사과와 위로가 빠진 3·1절 기념사는 감동이 없었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이 고통받아 송구하고, 마음이 아프다’는 진심 어린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운가. 사과할 일 없다고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사과했다가 책임이라도 질까 봐 두려운건지 모르겠다.

광우병·세월호 때처럼 대통령에 대한 의구심이 솟구치고 있다. 아니, ‘대통령은 국민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는 분노로 바뀌고 있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불신이 자리 잡는 순간, 저승사자처럼 레임덕이 찾아온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레임덕 뒤, 예전의 지지와 국정 추동력을 회복한 정권은 없었다.

고현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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