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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코로나19, 세 가지가 닮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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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사회에디터

조강수 사회에디터

2일 아침, TV를 보다가 잠시 착각에 빠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전국 확진자 현황을 알리는 특보가 전파를 타고 있었다. 우측 상단에 총 확진자 4212명(오후 6시 현재 4335명), 완치자 31명이 고정 표시된 채 전국 시·도의 각기 다른 확진자 숫자가 숨넘어가듯 휙휙 바뀌며 지나갔다. 세어 보니 서울·부산·경기·부산은 확진자가 70~90명대였다. 인천·제주·광주·전북·전남은 한 자릿수, 세종은 1명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대구(3081명)와 경북(624명)은 압도적으로 많았다.

“곧 종식” 발언에 골든타임 놓쳐 #세월호 닮은 코로나19 헛발질 #진짜 신천지는 언제 오려나

그 숫자들이 총선 개표 결과, 당선 의원 수 보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유권자들이 표로 방역 실패에 책임 있는 사람들에게 국민적 심판을 내려주길 내심에서 바란듯하다.

대한민국이 ‘우울한 신천지(新天地)’가 됐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염병 풍미’의 새 나라다. 변종 코로나19에 국가 권력이 신속하게 대처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분석대로 코로나19는 “지금까지 인류가 알고 있던 어떤 바이러스보다도 영민한 바이러스이고 무증상 전파와 감염자를 통한 전파가 가능한 매우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방심했고 오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경제계 주요 인사들과 만나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언급, 전체 공무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 20일엔 청와대에서 영화 ‘기생충’ 수상을 축하하는 ‘대파 짜파구리’ 오찬 파티를 강행했다. 첫 사망자가 나온 날이고 다음날 확진자가 100명을 넘어섰다. 마스크 대란도 현실화됐다. 무신경, 공감 능력 부재의 극점이 아니고 뭔가. 며칠 후 여권의 대구 봉쇄 망언은 대구 시민들의 심장을 후벼팠다.

서소문포럼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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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련의 흐름은 마치 세월호 참사 때 정부 구조요원들의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배 안에서 나가지 않고 질서를 지키다가 허무하게 숨진 어린 영혼들의 운명을 떠오르게 한다. 다른 게 있다면 총 사망자 26명의 대다수가 기저질병이 있는 대구·경북 지역의 70~80대 노인들이라는 점이다. ‘현대판 고려장’같이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유족들은 억울한 죽음이라고 하소연할 만하다.

세월호와 비슷한 점은 또 있다. 정부는 전문가들의 진언을 흘려듣다가 골든타임을 놓쳤다. 대한의사협회가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7번이나 요청한 중국인 입국 금지 카드는 무시했다. 중국이 거꾸로 한국인들의 입국을 거부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애초에 했더라면 모를까, 이제 와서 입국 금지하는 건 오히려 우리 국민들의 피해가 더 크다”고 애먼 소리를 내놨다. 시진핑 주석 방한에 목매단 정부, 사대주의 정부 소릴 듣는다.

초기 방역에서 가장 중요한 게 감염원 차단이라는 건 상식이다. 바이러스의 월경을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입국을 금지하는 것은 자국 이기주의가 아니다. 헌법상 대통령의 책무다. 필요한 조치를 미적대는 사이, 바이러스는 대구·경북의 신천지 교인들을 중심으로 창궐했다. 현 정부 인사들이 야당 시절, 그토록 비난했던 ‘세월호 구조 골든타임 도과’의 잘못을 답습한 것이 아니라면 무언가.

권력의 운명과 관련한 전개 과정도 닮은 구석이 있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능을 부각·증폭시켰다. 이후 최순실 사태가 터졌고 박 전 대통령은 침몰했다.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오고 열흘 뒤 ‘윤석열 검찰’은 송철호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로 문재인 대통령 측근 인사들을 재판에 넘겼다. 총선 이후 관련자 수사도 재개된다. 예단하긴 이르지만 문 대통령의 개입 여부도 조사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런데도 ‘모든 게 신천지 탓’이라며 신천지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건 아니다. 국가적 재난에 무방비한 대가는 혹독하다. “국민의 일상이 붕괴됐고 생활공동체가 파괴됐으며 지역경제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는 ‘메르스 사태’ 때의 문 대통령(2015년 6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주장과 일치한다.

원래 신천지는 좋은 뜻이다.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가 내세운 ‘후천개벽’과도 맥이 통한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 차용하면서 극혐 용어가 됐다. 그동안 원전 해체, 조국 수호에서부터 코로나19 방역 헛발질까지, 우울한 신천지 경험은 실컷 했다. 대통령이 취임 때 약속한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의 신바람 나는 신천지, 진짜 신천지는 언제 볼 수 있을까.

조강수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