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이라도…더 젊은 엄마를 그리고 싶은 딸의 마음

중앙일보

입력 2020.03.02 13:00

[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47)

‘페이스 앱’이 인기를 끈 지는 꽤 오래되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동안을 노안으로 또 노안은 상큼한 젊은 시절의 모습이나 아기 적 얼굴로 쉽게 변환시켜주는 신기술 앱이다. 실례로 연예인 다니엘 헤니는 이걸 사용해 멋지게 나이 든 미래의 모습을 공개해 화제를 부르기도 했다. 부질없는 이야기지만 정말 세월을 거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앱으로 과거와 미래를 엿보다

페이스앱이 인기인 요즘, 모바일 그림으로라도 좀 더 젊어보이는 부모님을 그려 보았다. 갤럭시탭s3 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페이스앱이 인기인 요즘, 모바일 그림으로라도 좀 더 젊어보이는 부모님을 그려 보았다. 갤럭시탭s3 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언젠가 우리 집에선 웃음보가 터진 적이 있었다. 위에서 말한 앱을 깔고 각자의 모습을 변환해 보았는데 결과가 아주 재밌었다. 세월을 몇십 년, 아니 반백 년 전으로 휙 돌려주는 요상한 기술이 재밌고도 놀라웠다.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의 아이가 휴대폰 화면에서 날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신기하기도 하고 살짝 그리운 생각마저 들었다. 비록 AI에 의해 생성된 모습이지만 나의 과거를 엿보기엔 그런대로 충분했다.

그렇다면 노안 만들기는 어땠을까? 몇십 년 후의 날 상상하고 싶진 않지만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마침내 화면에 나타난 노인은 낯설지만 분명 닮은 구석도 있다. 우리는 이 정도면 곱게 나이 든 것 같지 않냐며 서로를 위로했다.

언젠가부터 친정엄마의 나이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86이던가? 아니지, 이제 87이지’하면서 계산하곤 한다. 세상에 이런 딸자식도 없겠다 싶다. 더 우스운 건 이젠 내 나이도 헷갈리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만큼 시간이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는 말인가 보다. 흔히 10대는 시속 10㎞, 50대는 시속 50㎞로 시간이 흘러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80㎞의 속도로 흘러가는 친정엄마의 시간은 어떨까?

자연히 기억력도 흐려질 것이고 모든 게 눈에 띄게 변화를 가져올 게 뻔하다. 당연히 서글픈 쪽으로. 그걸 보는 자식들의 마음도 답답하기만 하다.. 엄마의 젊고 빛나던 시절을 기억하는 자식들이 갖는 허무함이랄까? 그래서 나오는 온갖 지청구, 마치 부모 자식이 바뀐 것 마냥 잔소리해대곤 한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엄마가 이런 사람이 아니잖아 등. 세상의 모든 자식의 공통점은 자기 부모만큼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없이 기대고만 싶은 든든한 부모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일까?

그림으로라도 젊어질 수 있다면

우울했다. 그깟 AI가 뭐라고 한참 동안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이번엔 그림이다. 태블릿 위에 엄마를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젊고 건강한 나의 엄마를 그리려고 했다. 한 이십년쯤 젊게 그려볼까? 아니 십년쯤? 아니면 87세 순서를 바꿔서 78세? 그런데, 막상 그리다 보니 모든 게 부질없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도 덜도 말고 그냥 딱 일 년 전의 모습, 작년만큼만 계셔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연배의 주위 친구들은 거의 부모님이 병중이거나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선지 몰라도 항상 부모님에 대한 후회와 회한을 털어놓곤 한다. 그림으로라도 젊은 엄마를 그리고 싶었던 나도 어쩌면 알게 모르게 저질렀을 내 잘못을 보상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시인 정채봉은 그의 시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에서 세상에서 억울한 일 한가질 일러바치며 울고 싶다고 했다. 나도 내년 이맘때 딱 일 년 만큼만 더 젊은 엄마에게 자식 자랑, 남편 흉을 거리낌 없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정채봉(1946~2001)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