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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26화. 마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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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유행 막은 건 마녀사냥이 아니에요

카도노 에이코의 동화『마녀 배달부』에선 마녀인 키키의 어머니가 마을 사람을 위해 마법약을 만든다. 그처럼 역사 속 희생된 마녀들 중엔 사람들을 돕고자 연구하던 사람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진은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 스틸.

카도노 에이코의 동화『마녀 배달부』에선 마녀인 키키의 어머니가 마을 사람을 위해 마법약을 만든다. 그처럼 역사 속 희생된 마녀들 중엔 사람들을 돕고자 연구하던 사람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진은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 스틸.

깊은 숲과 나지막한 산 사이, 작은 마을에는 신기한 일이 있습니다. 키 큰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방울이 바람이 없는데도 큰 소리로 울리는 것이죠. 소리의 정체는 전통 있는 마녀 집안의 외동딸, 꼬마 마녀 키키입니다. 세 살이 된 키키는 마녀 집단의 규율에 따라 홀로서기를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함께 지낸 고양이 지지와 함께 새로운 마을을 찾아 나선 것이죠. 물려받은 어머니의 빗자루를 타고, 가족과 마을 사람의 전송을 받으며 하늘로 날아올라 강과 바다를 지나 큰 마을에 도착한 키키. 기쁜 마음에 사람들에게 인사하지만 아무도 환영해주지 않죠. 과연 키키의 홀로서기는 어떻게 될까요?

카도노 에이코의 동화『마녀 배달부』는 하늘을 날 수 있는 꼬마 마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접한 마녀가 사람들과 친해지고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는 내용이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의 세계에는 마녀가 있습니다. 자동차가 다니고, 비행선이 날아다니는 시대이지만, 하늘을 날고 마법 약을 만들고 점을 치는 마녀가 곳곳에서 생활하고 있죠. 큰 마을에 도착한 키키도 ‘하늘을 나는 택배’ 일을 시작하지만, 잘되지 않습니다. ‘마녀 택배’라는 이름을 본 사람들이 맡긴 물건에 마법을 거는 건 아닐까 걱정했기 때문이죠. 그래도 일은 조금씩 풀려나가고, 키키는 마을에 친숙한 존재가 됩니다. 하지만 역사 속의 마녀는 그렇지 않았죠. 적어도 중세 유럽에서는.

마녀(Witch)는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남자 마녀도 있었지만, 대개는 여성이었죠. 마녀의 전통은 원시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구석기 시대의 벽화에 주술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의 모습이 있는데, 여기서부터 마법으로 무언가 하는 전통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죠. 무언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마법에 의존했습니다. 기우제처럼 농사에 좋은 날씨를 바라는 일도 있었지만, 대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을 치료하고자 했죠. 수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신화에는 지혜의 신 엔키의 자손으로 ‘귀신 쫓는 신’이 있는데, 여기서 귀신이란 ‘병을 주는 귀신’ 병귀나 역신이에요. 신라 시대 처용가에서도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 옆에 누워있는 사람이 있어 춤추고 노래 불렀다(즉, 굿을 했다)’라는 구절을 통해 처용이 역신을 쫓는 마법사나 주술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합니다. 마법 자체가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랜 세월 마법을 쓰는 사람은 출산이나 질병 치료 같은 일에 도움을 주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유럽이 중세에 들어서며 상황은 돌변합니다. 영양부터 위생 상태, 의료 기술도 좋지 않았던 중세 유럽에서는 페스트 등 수많은 질병이 창궐했죠. 마을에 질병이 돌 때마다 많은 이가 ‘마녀’라는 이름으로 처형됐는데요. 바로 마녀사냥이라 불리는 끔찍한 사건입니다. 당시 처형된 마녀 중엔 남자도 있었지만, 여성이 많았다고 해요. 주로 교회가 주도한 마녀사냥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지만, 혼란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병이 유행할수록 사람들은 신에 기도하며 ‘악마와 손을 잡고 있다’고 믿은 마녀를 색출하여 처형했지만, 병은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졌고 유럽 인구의 1/3 이상이 페스트로 사망합니다. 질병의 대유행이 사라진 것은 과학이 발달하면서 질병의 원인이 밝혀지고 위생 상태가 호전된 이후의 일입니다. 백신과 치료법이 개발되고, ‘손 씻기’를 생활화하면서 질병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들은 급격하게 줄어들죠. 원인을 밝혀내고 배우고자 한 이들 덕분에 우리는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일설에 따르면, 마법사(마녀)는 세상의 신비를 찾고자 노력한 일종의 과학자였다고 합니다. 세상의 이치를 알아내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찾아 나간 사람들이었다는 거죠. 비록 방향은 잘못되었지만, 현대 화학의 가능성을 끌어낸 연금술사도 일종의 마법사였고, 흔히 예언자로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도 사실은 페스트 치료에 도움을 준 의사였다고 하죠.『마녀 배달부』에서 키키의 어머니가 마을 사람을 위한 마법약을 만들듯이, 어쩌면 역사 속 희생된 마녀들 중엔 사람들을 돕고자 연구하던 사람들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신의 기적’만을 바라며 마녀를 사냥했던 이들은 정말로 안타까운 이들이 아닐까요?

‘인간은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이내 나쁜 일이라고 단정 지어 버려’라고 키키는 말합니다. 과거엔 마법과 마녀가 그랬다면, 요즘엔 과학과 과학자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백신’은 믿을 수 없다며 거부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죠. 특히 미국에선 그 때문인지 독감이 대유행하여 수만 명이 사망했다고 하죠. 코로나바이러스-19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현대 사회의 마녀’인 과학자와 의사의 말에 따라 적절한 수면과 영양가 있는 식사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손 씻기를 생활화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인류 문명은 바로 그런 ‘마녀’들에 의해 발전해왔으니까요.

글=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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