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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끝나도 재택근무하라" 기업들의 코로나 반전,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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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1. 카카오는 지난달 말 예정돼 있던 채용면접 20여 건을 화상 인터뷰로 진행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지난달 26일부터 전 직원이 재택근무를 시작한 가운데 내린 결정이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앞으로도 채용 면접을 취소하지 않고 화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카카오는 원격근무 종료일을 아예 정하지 않기로 했다. 여민수·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는 "이번 기회에 카카오의 업무 툴 '아지트'와 카카오톡을 활용해 업무 공개·공유·소통 문화를 안착시키면 '스마트 오피스'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잠잠해져도 이전처럼 직원들이 사무실에 모여서 일하는 체제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란 얘기다.

#2. 서울의 한 대기업 차장급 A씨는 지난달 25일 출근했다가 1시간만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재택근무 방침이 갑작스럽게 결정됐기 때문. 집에 돌아간 A씨는 회사 지침에 따라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업무용 회사 그룹웨어에 접속하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는 "재택근무를 처음 하다보니, 노트북에 VPN 설치하고 접속하는 데만 4시간 이상 걸렸다"며 "이날은 전화 몇 통화하고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카카오의 업무 협업툴 '아지트' 사용 화면. 카카오는 2월 마지막주부터 무기한 전원 재택 근무에 들어갔다. 조수용·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업무 툴 아지트와 카카오톡을 이용해 이번 기회에 업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카카오]

카카오의 업무 협업툴 '아지트' 사용 화면. 카카오는 2월 마지막주부터 무기한 전원 재택 근무에 들어갔다. 조수용·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업무 툴 아지트와 카카오톡을 이용해 이번 기회에 업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카카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의 고민이 커졌다. 조직문화가 자유롭고 정보기술(IT) 솔루션도 갖춘 기업들은 원격근무를 적극적으로 운영하지만, 상당수 기업들은 원격근무 경험이 없다보니 우왕좌왕하거나 이제서야 관련 IT 솔루션을 도입하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20대 대기업 관계자는 "재택 근무 시행 방침이 내려왔지만 회의는 가급적 대면으로 진행하자고 해서 출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서울 시내 한 중견기업 직원 B씨는 "그래도 인프라를 갖출 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은 원격근무를 제대로 하는 것 같은데 우리 회사는 이런 쪽에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솔직히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만나야 일이 된다'고 보는 한국식 문화도 원격근무 운영에는 걸림돌이다. 외국계 기업에서 광고를 담당하는 직원은 "늘 만나서 일하던 외부 파트너들과 업무는 솔직히 원격근무로 해결하기 힘들다"며 "1·2분기 실적은 타격을 받을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전사 재택근무를 도입한 SK텔레콤은 3월 8일까지 재택근무를 연장하기로 했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이번을 계기로 우리의 업무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 것일까.

원격근무를 앞장서 도입한 기업들은 효율적인 IT 솔루션과 조직문화를 변화 요건으로 꼽는다. 이들 기업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대부분의 업무를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로 처리하고, 직원 간 커뮤니케이션도 슬랙·잔디 등 업무용 모바일 메신저를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SK텔레콤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업무 메신저 '팀즈'와 자사의 그룹 통화 서비스 'T전화 그룹통화'를 재택근무에서 활용하고 있다. 외국계 기업들은 구글의 클라우드 기반 업무 솔루션 'G스위트'를 쓰기도 한다. G스위트는 e메일, 화상 회의, 클라우드, 문서 작성, 프레젠테이션 등을 제공한다.

재택근무를 하면 업무 효율이 떨어질까? '핑크퐁'으로 유명한 스마트스터디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전사 재택 근무를 시행했을때 업무 효율성을 측정해봤다. 구글 지메일, 드라이브(클라우드), Google+(화상회의) 등 각종 서비스 사용량 추이를 봤을때 업무량은 기존 사무실 근무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스마트스터디]

재택근무를 하면 업무 효율이 떨어질까? '핑크퐁'으로 유명한 스마트스터디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전사 재택 근무를 시행했을때 업무 효율성을 측정해봤다. 구글 지메일, 드라이브(클라우드), Google+(화상회의) 등 각종 서비스 사용량 추이를 봤을때 업무량은 기존 사무실 근무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스마트스터디]

국산 솔루션도 주목받고 있다. 소프트웨어 기업 더존비즈온의 비즈니스 플랫폼 '위하고'는 중소기업도 원격근무 중에 클라우드 기반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솔루션이다. 문서 결재·일정관리·메신저·화상회의 등 원격근무에 필요한 솔루션을 한 번에 제공한다. 중소기업 행복한울은 지난달 25일부터 더존의 원격근무 솔루션을 활용해 원격근무를 하고 있다. 이 회사가 입주한 서울 을지로 T타워가 지난달 26일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폐쇄됐지만 재택근무 중인 직원들이 클라우드에 저장된 업무 자료를 활용해 전자 결재를 하고, 화상회의로 기존 업무를 진행했다.

이렇게 원격근무 솔루션을 필요로 하는 중소·중견기업이 크게 늘면서 시장 경쟁도 치열해졌다. 화상 회의 서비스 '리모트미팅'과 NHN이 만든 '토스트 워크플레이스' 등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재택 근무를 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무상 지원하고 있다. 네이버 자회사 웍스모바일과 소프트웨어기업 알서포트 등도 원격근무 솔루션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고객 확보에 나섰다.

국내 소프트웨어기업 더존비즈온이 만든 비즈니스 플랫폼 '위하고' 사용 모습. '위하고'를 도입하면 화상회의, 클라우드 등 기업이 재택·원격 근무를 할 때 반드시 필요한 기술들을 한 번에 이용할 수 있다. [더존비즈온]

국내 소프트웨어기업 더존비즈온이 만든 비즈니스 플랫폼 '위하고' 사용 모습. '위하고'를 도입하면 화상회의, 클라우드 등 기업이 재택·원격 근무를 할 때 반드시 필요한 기술들을 한 번에 이용할 수 있다. [더존비즈온]

하지만 전문가들은 IT 솔루션과 함께 비대면 상황에서도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직문화가 원격근무의 지속성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핑크퐁'과 '아기상어'로 유명한 콘텐츠 기업 스마트스터디는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이어 두 번째 전사 재택근무를 시행 중이다. 이 회사의 직원 255명 중 80% 이상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15년 재택근무 경험을 토대로 재택근무의 장단점과 업무 성과 추이를 담은 '재택근무 가이드'를 만들어 외부에 공개하기도 했다. 최정호 CLO(Chief Life Officer·최고 인사 담당자)는 "평소에도 구성원들의 자율적인 업무 방식을 존중해왔기 때문에 재택 근무에도 큰 불편함이 없다"며 "재택근무제가 잘 자리잡은 회사일수록 굳이 '전사 재택근무 돌입' 식으로 재택 근무를 강제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기업문화로 유명한 우아한형제들(앱 '배달의민족' 운영사)은 지난달 말부터 자율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성호경 우아한형제들 홍보팀장은 "'재택근무를 하겠다'는 보고는 안해도 되지만, 사무실로 출근하려면 소속 그룹 책임자에게 사전 보고를 해야 한다"며 "직원들을 믿기도 하지만, 성과는 명확히 평가하는 문화가 정착됐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스마트워크 컨설팅업체 베타랩의 최두옥 디렉터는 "비대면 방식의 일하기는 기업이 정책을 바꿔 한 번에 달라지는 게 아니다"라며 "업무 관련 스케줄을 짜는 방식, 회의 안건 정하는 방법 등 세밀한 업무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격근무는 기술의 일부인만큼 기업 차원에서 다양한 협업 툴을 도입해야 하고, 중간관리자들은 업무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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