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송호근 칼럼

방역독립선언서

중앙일보

입력 2020.03.02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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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확진자 5000명이 코앞이다. 대구 의료시스템은 붕괴 직전이다. 코로나사태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신형의 사회적 위기, 이런 때 우유부단한 정권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혹독한 심리적 고통이다. 한 달간 5200만 국민이 체감했던 불안과 불만의 총무게는 지구를 찌그러트릴 만한 중압감을 이미 넘어섰다. 외국 공항에서 쫓겨나는 굴욕은 참는다 치자. 코로나 발원지 중국이 한인들을 억류하는 것도 일단 참자. 몇 차례 전문가그룹의 경고가 있었다. 정부는 안심발령을 거듭했고, 정치권은 총선 싸움에 열을 올렸다. 신천지에 코로나가 잠복한 20여 일간 이웃나라 걱정에 잠을 설친 정권에 위기관리 개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위기 관리, 개념이 없는 정부
경제와 국민생명, 택일했어야
충격 요법, 사회적 방역 시급
보름간 사회적 셧다운을 제안

필자의 지난 칼럼에 보낸 수백 개 댓글 중 하나를 허락없이 공개함을 용서해 달라. 물론 욕설도 많았다. “국민들은 세월호 안 학생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중국 바이러스가 바닷물처럼 자꾸 차올라요. 어쩌지요? 꼼짝 안하면 되나요?” 이제는 늦었다. 세월호처럼 이미 선체가 기울었다. 한국은 우한사태 초입에 들어섰다. ‘중국과 한국은 운명공동체’까지는 좋았는데 급기야 ‘바이러스 공동체’가 됐다. 유례없는 동지애 덕에 한국은 판데믹의 주역으로 올라섰다. 정작 중국은 알아주지도 않는다. 국민들이 되묻는다. 시진핑이 한국인의 생명을 보호해주는지를. 중국인 입국 제한이 엄청난 경제 충격과 외교 문제를 초래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래서 국민 생명을 제물로 바쳤다.

위기란 삼초(三超)현상, 즉 초희귀성, 초파괴력, 초불확실성을 말한다. 코로나는 정확히 그렇다. 너무 희귀해서 어리둥절하고 감염속도가 너무 빨라 파괴력이 높다. 이런 경우 위기관리 매뉴얼을 꺼내들어야 한다. 경제와 생명, 양자택일 결단이 시급했다. 청와대는 뒤늦게 ‘심각단계’로 올렸지만 ‘심각’에 부합하는 정책은 없다. 확진자 2000명을 돌파한 28일, ‘입국금지를 하면 우리가 외국의 금지대상국이 될 수 있다’고 대통령이 말했다. 그날 70개국에서 금지 명령이 떨어졌고, 오늘 확진자 4000명에 근접했다. ‘우린 꼼짝 안하면 되나요?’

당장 7만 중국유학생이 입국 중이다. 혹여 무증상감염자가 200~300명 대형강의실에서 수강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불허. 학생식당과 도서관, 카페는 어떤가. 신천지교회 수십 개가 동시다발로 가동하는 꼴이다. 거꾸로 중국학생들이 학생교인에게서 옮을 수 있다. 벌써 강릉에서 일이 터졌다. 필자는 중국에 우호적이다. 이것과 한국인 생명은 별개 문제다. 일개 대학이 중국유학생 2000명을 관리할 능력은 없다. 서울에만 1만5000여명, 이들이 신천지 학생과 접촉해  집단발병이라도 나면 서울시장은 엎드려 빌까? 국가 과제를 대학에, 교육과 생활현장에 짐 지우는 정부는 이제껏 없었다. ‘운명공동체’는 우한코로나에 건강주권을 할양하는 비극을 낳았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건 방심(放心)이다. 바이러스가 환호할 환경을 우리가 십시일반 배양하고 있다. 카페에 사람이 모이고, 개인강습소, 학원이 성업 중이다. KTX와 SRT가 달리고 대중교통이 쉴 새 없이 바이러스를 퍼 나른다. 코로나균은 사회성 A+급이다. 세계 최고 초(超)연결사회인 한국을 집어삼키도록 방치한 현실에서 의료진과 방역관의 눈물겨운 사투는 증발한다. 충격요법, ‘사회적 방역’이 절박한 이유다. 초연결관계망의 한시적 중단, 15일간 ‘사회적 셧다운’을 요청한다. 단기 셧다운의 비용은 장기전보다 싸다. 물류는 제외다.

만약 더 주저한다면, 5000만 국민의 결의를 모아 ‘방역독립선언서’를 발할 수밖에 없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방역’독립국임과 조선인의 ‘방역’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이하는 공약(公約) 5장. 1장. 중국인의 출입을 ‘한시적으로’ 금한다. 진정 중국으로 코로나 역수출을 막는 길이다. 2장. 국가에 코로나방역 ‘국가대책위’를 시급히 신설한다. 총리가 위원장인 대책위는 질본 본부장의 권고를 심층 논의하여 일일 대응책을 발표한다. 감염학회, 의료 및 과학전문가를 국가대책위에 초빙한다. 3장. 의료체계 붕괴를 막아야 한다. 공공의료 능력이 한계에 달한 지금 대형병원을 비상 지정해 운영한다. 일반환자 진료에 차질이 없도록 코로나 전문병원을 예비 지정한다. 4장. 전국에 15일간 ‘사회적 셧다운’을 발한다. 15일간 휴가는 공휴일, 국경일 휴일로 대체한다. 이 기간에 임시, 일용직 노동자에겐 복지비용을, 공장노동자, 영세업자, 대중교통 기사 역시 최소 생존경비를 지급한다. 5장. 국가대책위는 오후 8시 국민행동수칙을 매일 발표한다. 1가(家) 1인(人) 외출은 허용한다. 공무, 금융, 세금, 대출이자 등 기한은 15일 연장한다.

대구 경북부터 구출하자. 마스크는 품귀, 확진자가 집에서 떨고 있다. 대구 경북은 민족운동의 본산지였다. 국채보상운동을 일으켰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 독립군 3500명을 키워낸 독립지사의 본향이다. 1910년대엔 풍기, 안동, 상주가 참여한 조선국권회복단, 대한광복회가 무장투쟁을 감행했다. 그들은 옥사했다. 이제 빚 갚을 때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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