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전영기의 시시각각

“대통령 탄핵 막으려면 어쩔 수 없어”

중앙일보

입력 2020.03.02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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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40만 명을 넘었다. 정권 응원의 주요 통로였던 청와대 게시판이 ‘대통령 탄핵 요구’라는 시한폭탄으로 돌변했다. 집권세력은 겁도 날 것이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청원인 중에 두 번 연거푸 대통령을 탄핵하는 게 고민스럽다는 사람들을 꽤 봤으니까. 아직까지는 문 대통령을 진짜 쫓아내기보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해줘야겠다는 쪽이 많다. 따라서 대통령은 감염병에 안이하게 대처한 것을 국민 앞에 사과하고, 청와대와 내각에서 상황을 오판케 한 자들을 문책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중국이 아니라 주권자이자 납세자인 국민 중심의 정치를 펴겠다고 약속하길 바란다. 그러면 사람들의 화가 조금 풀릴지 모른다.

민주당 실세 5인방 ‘양심 뒤집기’
비례민주당은 문 대통령 보위용
방역 실패 사과·문책하는 게 정도

하루가 다르게 민심이 이반하는 판에 민주당의 실세 5인방이라는 이들은 비례 전담 위성정당을 만들 구상에만 골몰했다. 이 사실은 중앙일보 보도로 만천하에 드러났다(2월 28일자 1, 3면). 대화록엔 “(문 대통령의) 탄핵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얘기가 등장한다. 세상 인심을 우습게 아는 말들이 난무했다.

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 계획은 자기를 속이고 국민을 개나 양으로 여기는 저급한 대책이다. 대통령 탄핵을 막기는커녕 또 다른 탄핵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윤호중(57) 사무총장 겸 총선기획단장은 “이해찬 대표가 아니면 우리 다섯 사람이 해야 된다. 누가 있겠느냐”고 했다. 나머지 4인은 이인영(56) 원내대표, 홍영표(63) 전 원내대표, 전해철(58) 당 대표특보단장, 김종민(56) 전 정치개혁특위 간사다. 5인방은 어떤 형태로든 민주당을 위한 비례용 위성정당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윤호중은 “모두의 뜻이 모인 것으로 합의하고 한번 잘 해 보자”고 마무리지었다.

민주당의 5인방은 인간 양심의 기초인 정직성을 배반했다. 열흘 전쯤 이인영은 국회 연설에서 “(비례정당은) 종이정당이고, 위장정당이고 가짜정당이며 참 나쁜 정치”라고 말했다. 윤호중은 새해 첫날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전략은 정공법이다. 비례민주당을 만들면 국민의 매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공개 발언들을 하루아침에 뒤집어 비례정당을 내세울 경우 역풍이 부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에 대해 김종민은 “명분이야 만들면 된다. 겁먹을 필요 없다”고 호언했다. 유권자의 기억은 언제든지 재구성하면 그만이라는 오만함이 배어 있다. 조지 오웰의 동물동장에서 돼지 계급이 개와 양들을 동원해 쓴 수법이 하류 계급들의 기억을 조작하는 일이었다.

5인방의 대화 중엔 지난해 12월 범여권 4개 정당이 쫓기듯 합의해 날치기 처리한 3대 악법에 관한 얘기도 있다. 지금 민주당의 발목을 잡는 선거법에 대해 “그때는 공수처가 걸려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대목이다. 대통령의 턱밑까지 다가온 윤석열 검찰총장의 청와대 수사를 공수처법 통과로 힘을 빼기 위해 선거법 협상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는 자백 아닌가. 그렇다면 참으로 가증스러운 입법 거래 범죄다.

586 운동권엔 법과 상식, 국민을 우습게 아는 문화가 퍼져 있다. 자기들끼리는 계급의 양심, 의식의 계몽이라고 둘러대곤 한다. 하지만 그냥 준법정신이 없는 것뿐이다. 낯빛도 안 바꾸고 거짓말하기 일쑤다. 엊그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를 만난 문 대통령은 코로나 감염 세계 2위국이 된 방역 실패에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대통령도 비례민주당을 등장시켜 선거에서 이기면 문제가 다 덮인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기야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또 다른 586 운동권 윤건영(51) 전 국정기획상황실장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례 위성정당은 꼼수다. 정치에서 작은 기술에 집착하다  큰 문제를 놓쳐 망한 대통령은 여럿이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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