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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손영준의 퍼스펙티브

진영 논리 득세하는 건 법치와 소통 사라진 탓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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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두 토막 난 대한민국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2019.10.9/뉴스1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2019.10.9/뉴스1

나라가 반 토막 난 것 같다. 진영 논리가 극에 달한다. ‘끼리끼리 정치’가 횡행한다. 법치와 소통은 위축되었다. 코로나19 파동 와중에도 대립과 갈등이다.

문 대통령 지지 여론 L자형에서 U자형 변화 #좌우 진영 논리 뚜렷 ‘1국가 2진영’ 체제 고착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 #법원·검찰·언론의 권력 견제 정상으로 돌려야

뉴스에는 따뜻한 온기가 사라졌다.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미담 기사를 본 지 오래됐다. 물론 언론은 평범하고 진부한 의제를 거부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갈등적이며 감각적인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두기에 십상이다. 언론의 특성을 참작해도 우리의 진영 논리는 극렬하고 파괴적이다. 병으로 치면 중증임이 분명하다.

조선 중기 이후에도 사색당파가 요란했다. 당리당략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사생결단식 정쟁이었다. 조선은 결국 망했다. 이후 생겨난 한반도 ‘1민족 2국가’도 강력한 편 가름 체제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쪽 대한민국이 ‘1국가 2진영’으로 분열되었다. ‘1민족 2국가’ 체제가 외세 주도였다면, ‘1국가 2진영’ 구조는 내부 권력 투쟁이 뒤틀린 결과이다. 남·남 갈등은 이제 우리 사회 대부분의 의제를 압도한다. 진리를 독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협의와 논의, 공론장은 의미가 떨어진다. 우리 사회는 공감과 공존을 바탕으로 한 정치공동체를 창출하는 데 실패했다. 민주주의를 시행한 기간이 짧았기 때문이라는 ‘비동시성의 동시성’ 이론으로 변명하기에는 우리 내부의 골이 너무 깊다.

진영 간 갈등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에서 두드러진다.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집권 초 압도적이었다가 시간이 갈수록 빠지고 있다. 역대 대통령과 비슷하다.

극심한 양극화로 반대 진영 적대시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교대역 삼거리에서 열린 검찰개혁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공수처를 설치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11.9/뉴스1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교대역 삼거리에서 열린 검찰개혁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공수처를 설치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11.9/뉴스1

그런데 문 대통령에 대한 선호도는 특이한 점이 있다. 이전의 대통령은 대개 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중도가 두텁고 극단이 많지 않았다. 정규분포 구조였다. 가운데가 불룩하고 정(+) 또는 부(-) 극단의 숫자가 적었다. 문 대통령의 경우에는 평균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이 아니라 극단을 중심으로 양극화되는 모습이다.

우선 적극 지지층이 단단하다. 시간이 가도 크게 줄지 않는다. 결집하고 있다. 동시에 극단적 반대층이 크게 세를 형성하고 있다. 중도층의 비율은 큰 변화가 없다. 극호감 세력과 극혐오 세력이 U자형 호각지세이다. 문 대통령에 대한 U자형 여론은 우리의 당파적 · 이념적 양극화 현상이 치열하다는 것을 반영한다.

주목할 점은 여론의 양극화가 반대편에 대한 적대감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진영 논리를 강화한다고 지지 정당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 정당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과 적대감이 커진다.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파동 당시 광화문과 서초동, 여의도에 운집한 군중은 반대진영에 대한 반감을 극렬하게 표출했다. 이런 정서적 양극화가 강화되면 합리성을 매개로 한 공론 형성은 실패한다.

저주와 욕보이기라는 감정적 반응이 대세이다. 합리·관용·타협은 뒷전이다. 가까운 가족과 친구 사이에 진영 이슈가 금기어가 된 지 오래됐다. 진영 논리에 기반을 둔 국정 운영은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정치권력은 자신들의 편견을 끊임없이 시민들에게 내재화시킨다.

문 대통령은 3년 전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라며 진영 논리의 종식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것뿐. 정반대의 길로 달려갔다. 적폐 청산을 내세워 반대파에 대한 숙청이 이뤄졌다. 반대 진영 국민의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정의라고 믿지 않았는지 우려스럽다.

우리 정치 체제는 다원성을 인정하고 상호 조화하는 길을 찾지 못했다. 스스로 진리를 자임할 뿐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진영 논리가 퇴행적이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법원과 검찰, 언론에 대한 신뢰가 바로 서야 한다. 이들 공적 제도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권력을 견제해야 할 법원과 검찰, 언론이 권력에 포획된 오늘의 정치 현실은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Balance of  Power)’ 원리에 맞지 않는다.

정치권력과 한통속 된 공영방송

지지율

지지율

물론 법원과 검찰, 언론도 내부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폐해는 정치권력 종속 결과보다는 적다고 생각한다. 문 정부는 지금 인사권을 통해 법원과 검찰, 공영 언론 지배를 강화하고 있다.

대통령의 측근이 연루된 사건을 맡은 판·검사에 대한 잦은 인사이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김경수 경남지사의 드루킹 개입 의혹, 청와대 비서진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조국·정경심 부부의 각종 의혹 등 집권 여당 사람이 개입된 사건은 늘 뒷전이다.

정치권력은 또 공영 방송 사장 선임을 통해 공영방송 운영을 통제한다. 그렇기에 공영방송이라는 곳에서 일하는 진행자가 조국 백서 추진위원회 집필진으로 버젓이 참여한다. 정치권력과 아예 한통속이 되었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러나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호미로 막지 못하면 가래로도 막을 수 없다. 미리 처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힘을 써도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가기관과 언론의 비정상적인 운영을 하루빨리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법치와 소통이 없는 곳에 진영 논리가 득세한다.

부동산 정책과 한·일 갈등이 보수층 반발 불러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5월 취임 이후 지지도 흐름을 보면 한국 사회의 진영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알앤써치는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0명 이상을 무작위 전화 표집해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호감도를 4점 척도로 조사했다. 매 분기에 한 번 이상 실시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4점 척도를 기준으로 할 때 ‘매우 잘한다’는 45% 안팎을 기록했다. ‘잘하는 편이다’도 20%를 넘었다. ‘못하는 편이다’와 ‘매우 못한다’는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집권 2년차인 2018년 가을을 고비로 변화가 생겼다. 2018년 여름까지는 전년 기조가 이어지다가 그해 가을부터 여론의 부침이 크게 나타났다. ‘매우 잘한다’가 조금씩 하락하고, 동시에 ‘매우 못한다’ 층이 결집하였다. 2018년 중반기에는 종합부동산세율과 부동산 공시가격 상향 조정으로 중상층의 세금 반발이 컸다. 또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로 한·일 갈등이 고조됐다. 문 정부의 경제·외교 정책에 대한 보수층 반발이 시작된 때이다.

2019년에는 극렬 지지와 극렬 혐오가 맞서는 ‘U’자 형태로 지지도가 변했다. 2020년 2월 말까지 그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2020년 2월 말 조사에서는 ‘매우 잘한다’와 ‘매우 못한다’ 양극단이 각각 30% 수준을 나타냈다. 중도층에 해당하는 ‘잘하는 편’이거나 ‘못하는 편’이라는 응답은 15% 내외이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전 대통령들의 지지율 추이와 분명히 차이가 난다. 이전 대통령들은 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중도가 두텁고 극단이 적은 종 모양의 정규분포 구조였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문재인 정권 들어 극렬 지지층과 극렬 반대층이 맞서는 구조가 됐다는 뜻이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