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경쟁자는 가장 훌륭한 친구

중앙일보

입력 2020.03.02 00:03

업데이트 2020.03.0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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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같은 매니지먼트사 소속이 된 현 세계 1위 고진영(왼쪽 사진)과 전 세계 1위 박성현. [중앙포토]

같은 매니지먼트사 소속이 된 현 세계 1위 고진영(왼쪽 사진)과 전 세계 1위 박성현. [중앙포토]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 고진영이 매니지먼트사를 옮겼다. 전 세계 1위이자 최고 인기 스타 박성현과 같은 회사(세마스포츠 마케팅) 소속이 됐다.

전·현 세계 1위 박성현과 고진영
같은 매니지먼트사 소속선수 돼
평생 경쟁했던 파머와 니클라우스
라이벌과 함께한 시간이 소중해

선수들은 경쟁심이 강하다. 누가 1등인지, 누가 대장인지 가리려는 습성이 있다. 축구나 농구 같은 단체 스포츠에서 한 팀에 빅스타가 두 명 있을 경우 분란이 생기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늑대 무리의 알파 메일(수컷)은 식사를 먼저 할 권리가 있다. 같은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됐다고 해서 한솥밥을 먹는 것은 아니지만, 두 스타가 한 회사 우산 안에 있으면 껄끄럽다.

박성현과 고진영은 같은 스폰서(넵스)의 후원을 받은 적이 있는데 성격과 경기 스타일이 달라서인지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골프에서 가장 치열했던 라이벌로는 아널드 파머(1929~2016)와 잭 니클라우스(80)를 꼽을 수 있다. 샷 경쟁은 물론이고, 광고 출연과 골프장 설계 경쟁, 자가용 비행기의 크기에서도 지지 않으려고 했다.

파머는 박성현과 이미지가 흡사하다. 매력적 외모에 카리스마가 넘쳤다. 경기 스타일은 공격적이었고 화려했다. 소아마비 아버지를 둔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최고 자리에 오른 스토리도 드라마틱했다.

파머의 최대 장점은 팬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었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팬 누구나 ‘파머가 나에게 눈을 맞춰줬다’고 느끼게 했다. 팬들은 파머를 열렬히 응원했다. 팬들은 ‘아니(Arnie: 아널드의 애칭)의 군대(Army)’로 불렸다. 방탄소년단(BTS) 팬클럽과 이름이 같다.

아널드 파머(左), 잭 니클라우스(右)

아널드 파머(左), 잭 니클라우스(右)

니클라우스는 냉정한 승부사였다. 무리하지 않았고, 흔들리지 않았고, 전략적으로 경기했다. ‘강철 멘털’ 고진영의 경기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대중에 대한 소구력이 폭발적이지는 않았지만, 역대 메이저 대회 최다 우승(18승)기록을 남겼다.

수입은 인기 좋은 파머가 더 많았다. 아널드 파머의 로고인 컬러 우산만 붙이면 치약부터 렌터카, 비행기표까지 무엇이든지 잘 팔렸다. 니클라우스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컸다.

그래서 파머는 11살 어린 니클라우스가 건방지다고 생각했고 사석에서 ‘돼지’라고 불렀다. 니클라우스의 로고인 황금 곰도 돼지처럼 생겼다고 놀렸다.

한 기자가 니클라우스의 황금 곰 로고가 달린 옷을 입고 인터뷰를 하러 오자 “돼지 옷을 입고 나를 만나려 했냐”고 화도 냈다. 니클라우스는 그 사실을 전해 듣고 곰 로고의 다리를 길게 늘였다. 살도 빼고 스타일도 세련되게 바꿨다. 경쟁심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둘은 같은 매니지먼트사인 IMG 소속이었다. 유치한 신경전도 펼치고, 누가 IMG의 일인자인지 파워게임도 벌였지만, “경쟁하되 존경한다”며 선을 넘지 않았다. 그러면서 함께 많은 이벤트를 벌였다. 소속사가 같은 곳이어서 가능했다.

개성이 판이한 라이벌 슈퍼스타가 한데 모여 경쟁할 경우 시너지 효과는 엄청나다. 혼자일 때 관심이 하나였다면, 둘이 동시에 나오니 관심은 열 배가 됐다. 파머와  나클라우스는 이전 스포츠 스타들에겐 없었던 스폰서가 생겼고, 광고 모델이 됐고, 초청료를 받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경쟁자와 갈등을 겪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간이 지나고 뒤돌아보면 오히려 ‘뛰어난 라이벌과 함께 한 시간은 매우 소중했다’고 여기게 된다. 자신의 퍼포먼스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경쟁자는 가장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다.

2016년 파머가 세상을 떠나자 니클라우스는 “파머와 동시대에 살았던 것은 행복이었다. 치열하게 경쟁한 파머가 없었다면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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