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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의 북극비사] '얼음땅'에 수력발전·폭포…온난화가 바꿔놓는 그린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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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⑬수력발전과 폭포가 있는 그린란드 

기록적 혹서가 기승을 부린 지난해 8월 그린란드 서부의 빙붕을 찍은 사진이다. 더위로 빙붕이 녹아내리면서 큰 강을 이루고 끝에는 폭포까지 형성돼 있다. [AP=연합뉴스]

기록적 혹서가 기승을 부린 지난해 8월 그린란드 서부의 빙붕을 찍은 사진이다. 더위로 빙붕이 녹아내리면서 큰 강을 이루고 끝에는 폭포까지 형성돼 있다. [AP=연합뉴스]

‘월남 스키부대’라는 말은 허풍스런 설명이나 극히 비현실적인 비유를 할 때 쓰이는 우스갯소리다. 북위 9~23도에 걸쳐있는 아열대의 나라 베트남에는 눈이 내릴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계절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지방에서 수력발전이 이루어지고 거대한 폭포가 있다면 이 또한 쉽게 믿겨지지 않을 것이다.

지구 최북단 섬나라 그린란드엔 수력발전도 있고, 높이가 100미터가 넘는 물보라 거센 폭포도 있다. 4년전 5월의 경험은 말 그대로 ‘월남 스키부대’가 진짜 있다는 것을 본 것 같은 충격이었다. 수도 누크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남동쪽으로 한 시간 반, 북세(Bukse)라는 이름의 피오르드를 따라 내륙 깊숙이 들어갔다. 피오르드가 끝나는 지점에 때 묻지 않는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콘크리트 절벽이 나타났다. 수도 누크에 전력을 공급하는 국영 누키시오르피트의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전용 부두다. 부두에서 1㎞ 남짓 올라가니 거대한 바위산 입구에 2층 높이의 조그만 건물이 나타났다.

그린란드 누크 수력발전. 최정동 기자

그린란드 누크 수력발전. 최정동 기자
그린란드 누크 수력발전 최정동 기자

그린 에너지가 점차 지배해가는 그린란드

건물은 바위산 속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문이었다. 안쪽으로 높이 10m는 족히 돼 보이는 터널이 입을 벌리고 있다. 터널의 천장과 좌우 벽은 온통 검은색의 화산암반이다. 터널 안에 놓인 왕복 2차로 너비의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800m 내리막길을 비스듬히 내려가니 발전설비가 나타났다. 위로는 발전기, 아래쪽은 수력터빈 3대가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동굴 안을 가득 채운다. 발전기 3대의 총 발전능력은 원자력발전소 1기의 10분의 1 수준인 100메가와트(㎿). 하지만 연구진이 찾았을 당시엔 순간 최대 50㎿가량만 가동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도 인구 1만6000명인 수도 누크의 전기수요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위산 안에 지름 5m짜리 터널을 뚫어 수로를 내고, 발전소 위쪽 해발 600m에 위치한 산정호수 캉(Kang)의 물을 흘려보내 수압 차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방식이다. 누키시오르피트 발전소는 1993년 첫 가동을 시작했다. 당시 그린란드 최초의 수력발전소이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린란드 내 전력은 화력발전에만 전적으로 의지했다. 그린란드 내에는 이런 수력발전소가 총 5개 운영되고 있다. 누키시오르피트 홍보 담당자 피터 그루제는 “온난화로 그린란드 내륙의 얼음이 녹으면서 수자원이 점점 더 풍부해지고 있다”며 “앞으로 국내 산업의 발전 속도 등을 고려해 가면서 발전용량의 증설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온난화가 바꿔놓은 북극의 생태. 그린란드 수도 누크의 상징인 세르미치아크산. 최근 온난화 탓에 산 정상의 만년설이 녹은 물이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다. 최정동 기자

온난화가 바꿔놓은 북극의 생태. 그린란드 수도 누크의 상징인 세르미치아크산. 최근 온난화 탓에 산 정상의 만년설이 녹은 물이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다. 최정동 기자

만년설의 '눈물', 빙하폭포

그린란드의 만년설이 녹아 내려 호수를 이룬 덕에 수력발전이 가능했다면, 그 만년설이 녹는 현장은 관광자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누크 올드타운에서는 이 도시를 상징하는 산을 볼 수 있다. 해발 1210m 세르미치아크가 그 주인공이다. 뾰족한 삼각뿔 봉우리가 8000년이 됐다는 만년설을 머리에 얹고 있는 모습이 늠름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 설산의 뒷모습은 설경이 아닌 폭포였다. 꼭대기 사면은 여전히 두꺼운 만년설에 덮여 있었지만, 산허리에서 녹기 시작한 눈은 얼음물로 변해 100m가 넘는 절벽을 타고 모이면서 폭포로 탈바꿈했다. '눈'이 '물'로 변하는 현장이다.

폭포 아래는 마치 나이애가라 폭포처럼 물보라 장관을 연출한다.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때문인지 물보라는 마치 얼음장 같이 차가웠고 털모자와 장갑으로 무장을 했지만 금세 오한이 들 정도였다. 폭포 아래쪽엔 만년설 폭포의 장관을 경험하려는 관광객들을 태운 배가 여러 척이었다. 현장 가이드를 맡아준 리야양은 “날이 따뜻해지면서 지난 10년 사이에 세르미치아크산 만년설이 크게 줄어든 반면, 폭포 크기는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하고 자신의 일도 바빠진다고 했다.

기록적 더위가 맹위를 떨쳤던 지난해 6월 그린란드 북서부에서 얼음이 녹아 마치 호수를 연상케하는 빙붕위를 썰매개가 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기록적 더위가 맹위를 떨쳤던 지난해 6월 그린란드 북서부에서 얼음이 녹아 마치 호수를 연상케하는 빙붕위를 썰매개가 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린란드 온난화의 두 얼굴

북극의 ‘얼음나라’가 녹아내리는 현상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미국해양대기청(NOAA)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북극의 평균기온이 1981∼2010년 평균보다 섭씨 1.9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북극 기온을 측정하기 시작한 1900년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치라고 한다. 가장 더웠던 시기는 2015∼2016년 기간이었다. 기상학자들은 북극이 지구촌 다른 지역보다 온난화가 2배 이상 빨리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8월 AP통신이 덴마크 기상연구소의 연구결과를 인용해 그린란드 전체에서 8월1일 하루에만 1000억t의 얼음이 녹았으며 7월 한 달 총 1970억t의 얼음이 녹아서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하루 1000억t이라니 감이 잘 안 온다. 당시 덴마크 기상연구소가 좀 쉽게 비유를 들어 설명해줬다.“10억t의 얼음이 녹으면 40만개의 올림픽 수영장을 채울 수 있는 물이 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섬’, ‘지구 최북단 섬나라’등으로 불리는 그린란드는 표면의 82%가 얼음으로 덮여 있다. 그린란드의 얼음이 녹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그린란드에 있는 빙하가 모두 녹게 된다면 전 세계 해수면 높이가 7m 상승하게 된다고 한다. 해수면 상승은 또 다른 기상이변을 낳을 수도 있다. 빙하 속 바이러스나 세균이 인류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2014년 뉴질랜드 등 다국적 연구팀은 캐나다 북쪽의 영구동토층에서 700년 된 순록 배설물을 발견했는데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바이러스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연구팀은 바이러스가 현대 식물을 감염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 2016년에는 시베리아의 동토층이 녹으면서 탄저균이 노출돼 12세 소년이 사망하고 수천마리의 순록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린란드 동남부 쿨루숙 마을의 지난해 8월 풍경.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매입할 수 있다는 뉴스가 보도된 뒤, 이곳에서는 "그린란드는 판매상품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곳곳에 걸렸다. [AFP=연합뉴스]

그린란드 동남부 쿨루숙 마을의 지난해 8월 풍경.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매입할 수 있다는 뉴스가 보도된 뒤, 이곳에서는 "그린란드는 판매상품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곳곳에 걸렸다. [AFP=연합뉴스]

그린란드의 꿈

사실 그린란드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가 위기이면서 기회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온난화가 처음 있는 재앙이라는데도 이견을 가지고 있다. 기원 950~1250년을 중세 온난기라 부른다. 이 시기에 그린란드로 이주한 유럽인들은 얼음이 없는 바다에서 바다표범들을 사냥하고, 소나 양을 방목하고 작물도 재배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15세기에 닥친 소빙하기로 종말을 맞았다는 게 이곳 사람들의 얘기다. 지금도 그린란드 남부에는 양을 키우는 목장이 있지만, 소를 키우고 작물을 재배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그린란드인들은 경험상 지구의 온도는 자연스레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린란드가 가진 엄청난 천연자원도 이곳 사람들이 온난화를 기회로 생각하는 이유 중 큰 부분이다. 얼음이 녹아 땅이 드러난 그린란드 남부는 이미 세계 광물업체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린란드 남서부의 쿠아네르수이트 일대에는 정보기술(IT) 산업의 핵심원료가 되는 희토류가 1000만t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개발이 이루어지면 연간 4만t을 채굴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전 세계 수요량의 20~25%에 달하는 양이다. 다이아몬드와 금ㆍ납ㆍ아연ㆍ우라늄 등도 풍부하다. 만약 공항과 항만 같은 교역 인프라를 국제수준으로 높여 지구촌과 연결할 수 있다면 그린란드가 가진 잠재력은 단기간 내에 폭발할 것이다. 이처럼 그린란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구촌 사람들에게도 위기와 기회의 상반된 생각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그린란드가 독립국가로 가고자 하는 꿈, 미국이 그린란드를 매입하겠다는 생각에는 모두 이런 의도가 깔려있다. 어느 쪽이든 우리도 북극 동토의 땅의 변화와 가치에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⑭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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