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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뚫고 도피성 여행간다···기생충보다 더한 빈부격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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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원에 이르는 명품 브랜드 마스크(왼쪽)와 코와 입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 대신 속옷을 뒤집어 쓴 사진. 신종 코로나가 들춰내는 빈부격차를 풍자했다. [트위터 캡처]

수십만 원에 이르는 명품 브랜드 마스크(왼쪽)와 코와 입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 대신 속옷을 뒤집어 쓴 사진. 신종 코로나가 들춰내는 빈부격차를 풍자했다. [트위터 캡처]

‘명품 마스크 VS 속옷 마스크’.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이 사진은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이 들춰내는 빈부격차의 민낯을 풍자한다.

소득격차 따라 세계 ‘코로나 격차’ 발생 #예방물품, 재택근무 여부, 격리 환경 등 #“중하위층 저축 바닥나 가난 겪게될 수도” #좁은 집 격리 어려워, 부유층은 도피여행

바이러스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빈부격차는 바이러스 예방책과 대처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감염 예방을 위해 구입하는 물품과 재택근무 가능 여부에 차이가 난다. 심지어 격리 환경과 전염병 창궐 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가른다. 또 “전염병이 장기화하면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득이 줄고, 전염병 예방을 위한 지출이 많아져서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가 확산한 지난 8일 중국 저장성의 항저우에 있는 마트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식료품을 대량 구매하고 있다. 사람들 옆으로 텅빈 판매대가 눈길을 끈다. [AP=연합뉴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가 확산한 지난 8일 중국 저장성의 항저우에 있는 마트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식료품을 대량 구매하고 있다. 사람들 옆으로 텅빈 판매대가 눈길을 끈다. [AP=연합뉴스]

독일 매체 도이체벨레(DW)는 25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가 중국의 빈부격차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는 신종 코로나 진원지인 중국의 ‘코로나 격차’를 집중 조명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전 세계에서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각국에서 환자가 속출하면서 중국 본토 밖 누적 확진자는 28일 4700명을 넘었다. 이 가운데 한국 내 확진자는 이날 오후 4시 기준 2337명이다. 중국 내 신종 코로나 누적 확진자는 이날 오후 기준 7만8961명이다.

“전염병 장기화하면 중산층·저소득층 가난 직면”

전문가들은 이날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전염병이 장기화하면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종 코로나 위기는 경제적 불평등이 공중 보건과 서비스 이용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증명한다”고 진단한다.

지난 26일 신종 코로나의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쇼핑 단지에서 한 남성이 마스크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6일 신종 코로나의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쇼핑 단지에서 한 남성이 마스크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켄트 덩 런던경제정치대학 경제사학과 교수는 “주머니가 두둑한 사람들은 감염병과는 무관하게 기존 생활 방식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하위층은 저축이 고갈돼 1년후 쯤 가난을 겪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덩 교수는 특히 빈부격차가 심한 중국의 상황을 걱정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의 부유층은 전체 인구 약 14억명 가운데 약 5000만명에 이른다. 그는 “부유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신종 바이러스의 발병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자 지난 8일 싱가포르의 마트에서도 사재기 현상이 나타났다. 마트 선반이 텅 비어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자 지난 8일 싱가포르의 마트에서도 사재기 현상이 나타났다. 마트 선반이 텅 비어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각에선 전염병 창궐로 봉쇄된 도시에서 이러한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본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가 대표적인 예다. 스티브 창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산하 중국연구소 교수는 “우한에 있는 부유층은 도시 봉쇄를 당하면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 편리한 환경을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우한의 부유층들은 식사·식료품·마스크·약품들을 가정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활발히 이용한다. 마스크를 쓴 배달원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물품들”을 집 앞까지 가져다준다.

근무 형태, 격리 환경, 도피성 여행 여러 면에서 격차  

빈부 격차는 ‘재택근무 격차’도 낳는다. 사무직·전문직 종사자들은 재택근무를 하거나 일정 기간 일을 잠시 중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배달원이나 식당 종업원 등은 평소처럼 외부에서 일해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이 높아진다.

중국 후난성 창사 진시아에 있는 한 회사의 물류창고에서 직원이 상품 검사를 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중국 후난성 창사 진시아에 있는 한 회사의 물류창고에서 직원이 상품 검사를 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크리스티나 마그스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중국연구소 교수는 “많은 근로자들이 비공식적으로 고용돼 실업 보험 등 사회보장 혜택을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에선 저소득 노동자들이 사회 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격리 환경도 격차가 생길 수 있다. 이를테면 비좁은 집에 거주하는 가족의 경우 의심 증상자와 건강한 가족이 떨어져 지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페이 옌 베이징 칭화대 부교수는 “가난한 가정에서 감염자가 발생하면 어떤 비극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탈리아 산 피오라노의 한 가정집 앞에 지난 25일 미리 사둔 식료품들이 잔뜩 놓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탈리아 산 피오라노의 한 가정집 앞에 지난 25일 미리 사둔 식료품들이 잔뜩 놓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실제로 중국 우한에선 한 가정의 가장이 신종 코로나 의심 증상이 있는데도 검사와 치료를 받지 못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발생했다. 우한의 자동차 플라스틱 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했던 양위안윈(楊元運·51)은 가족이 자신으로부터 감염될까봐 지난 22일(현지시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중국 우한의 주민 양위안원이 유서를 남기고 집을 나서는 뒷모습이 CCTV에 찍혔다. [중앙포토]

중국 우한의 주민 양위안원이 유서를 남기고 집을 나서는 뒷모습이 CCTV에 찍혔다. [중앙포토]

정보·인맥에 앞서는 부유층은 특권을 누리기도 한다. 도이체벨레는 중국 ‘관시(關係)’에 주목했다. 관시란 사업 등에 유리한 인간관계를 통칭하는 중국의 독특한 문화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신종 코로나가 창궐한 여러 도시의 시민들에게 여행 제한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일부 부유층들은 이 ‘관시’를 이용해 여행을 다닐 수 있다. 마그스 교수는 “돈 만큼 ‘관시’가 중요한 중국에서 부유층이 신종 코로나를 피해 해외로 도피한 사례들은 중국 내 부패가 얼마나 만연한지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신종 코로나 환자인 한 중국 여성이 지난 22일 우한을 탈출해 몰래 베이징에 간 사실이 27일 뒤늦게 알려지면서 중국이 발칵 뒤집혔다. 이런 탈출을 놓고 중국 내에선 “누군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란 의혹이 나오고 있다.

이란 “부유층 해외 도피” 한국 “마스크·재택근무 격차”     

이같은 ‘코로나 격차’ 현상은 신종 코로나가 확산하는 다른 국가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중동 국가들 가운데 신종 코로나 사망자와 확진자가 가장 많은 이란이 대표적이다. 이란의 한 교민은 2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의 일부 부유층들은 신종 코로나를 피해 해외로 도망치듯 여행을 떠나고 있다”면서 “저소득층에겐 꿈 같은 얘기”라고 전했다.

지난 26일 이란 테헤란의 한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이란 여성들이 걷고 있다. 이란의 신종 코로나 사망자는 28일 기준 34명으로 중동 국가 가운데 가장 많다. [EPA=연합뉴스]

지난 26일 이란 테헤란의 한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이란 여성들이 걷고 있다. 이란의 신종 코로나 사망자는 28일 기준 34명으로 중동 국가 가운데 가장 많다. [EPA=연합뉴스]

이란은 심각한 빈부격차에 성난 시민들이 지난해부터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란 정부 발표에 따르면 28일 기준 신종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34명이고, 확진자는 388명이다. 일각에선 “실제 이보다 더 많은 사망자와 확진자 숫자를 정부가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가 확산한 한국에선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5일 재택근무로 텅빈 서울 종로구의 한 대기업 사무실. [뉴스1]

신종 코로나가 확산한 한국에선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5일 재택근무로 텅빈 서울 종로구의 한 대기업 사무실. [뉴스1]

확진자가 폭증한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마스크 구입비가 부담되는 저소득층에선 마스크를 빨아서 다시 사용하는 이들이 나오고 있다. 재택근무 역시 직원이 적은 중소기업 등에선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손님이 현저히 줄면서 자영업자나 택시 등 운수업 종사자들의 수입이 급감하고, 일부 일용직 근로자나 아르바이트생들이 일자리를 잃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기연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대우교수는 “저소득층이 이용하는 시설이나 물품 지원 시스템을 정비하는 등 평소 보편적인 사회 복지 시스템을 잘 갖춰 놓아야 한다. 그래야 전염병 창궐과 같은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포괄적인 지원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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