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비상] 커지는 불안감 이렇게 대처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2000명을 넘어서면서 일상에서 ‘코로나 공포’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아침에 눈 뜨면 확진자 수부터 확인한다’ ‘30분 간격으로 뉴스를 본다’ ‘전쟁 난 것처럼 무섭다’ 같은 글을 온라인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지역사회 감염이 나타나자 언제 어디서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더욱 확산하고 있다. 확진자나 격리자, 그 주변의 가족과 지인뿐 아니라 매체를 통해 상황을 지켜보는 이들까지도 심리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얘기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 #불확실한 온라인 뉴스 보지 말고 #공신력 있는 유용한 정보만 습득 #확진자 호기심으로 접근 땐 상처 #평소처럼 대해주는 게 제일 좋아 #평소 ‘심리적 응급처치’ 교육 필요 #‘권역별 트라우마센터’ 만들어야
지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으면서 국가 재난 시 전문적인 심리 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고, 2018년 4월 국가트라우마센터가 문을 열었다. 이 센터의 수장인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은 메르스 당시 심리위기지원단을 이끈 데 이어, 이번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의 단장을 맡았다. 심 단장은 지난달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에 격리된 우한 교민들을 위해 심리 상담을 진행했으며, 세월호 때도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심리치료 등 의료지원에 직접 나선 바 있다. 그는 “재난 시 나타나는 심리적 불안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면서도 “온라인에 떠도는 정보들을 지나치게 따라가 불안에 압도되면 패닉을 겪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누군가를 비난해봤자 득 될게 없어
- 코로나19에 대한 시민 불안이 크다.
- “지금 상황에서 어느 정도 불안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다만 불안에 압도를 당하면 이성적인 판단이나 행동을 할 수 없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 ‘무방비로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패닉으로 몰아간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정보’를 선택할 수 있다. 이럴 땐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보는 것도 좋지 않다. 나만의 규칙에 따라 공신력 있는 정보에 접근하는 게 좋다. 마음이 불안할 때는 불안한 정보에만 더 눈이 가게 된다. 뉴스를 백 번 클릭한다고 해서 내게 유용한 정보가 백 번 얻어지는 건 아니다. 어느 정도 불확실함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불안함에 자꾸 뭔가를 설명하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루머가 생긴다. 불안감은 스프링처럼 자꾸 튀어나온다. 마음에 위안이 될 수 있는 긍정적인 활동을 해야 상쇄가 된다. 대면이 안 되면 온라인으로라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가족들과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일상생활의 건강한 이야기들도 하고 서로 응원해주면 안심된다는 느낌이 든다.”
- 일부 확진자에 대한 비난과 신상털기도 불안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한다.
- “맞다. 확진자·격리자 상담을 해보면 ‘내가 감염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전염시키는 게 더 무섭다’고 얘기한다. 이들 대부분 평범하게 생활하던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이들의 동선이 공개되고, 어느 정도 사생활도 밝혀지는 데 대해 고마워할 일이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야 누구나 감염 가능성이 있을 때 빨리 신고하게 되고, 다수가 안전해진다. 가장 이타적인 게 가장 이기적인 행동이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데 에너지를 쓰고 분노해봤자 나한테 득이 될 게 없다. 안정된 마음을 갖는 게 내 몸을 위해서도,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도 건강한 행동이다. 사회 환경이 안정되고 안전해져야 나도 필요할 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인가.
- “의사소통이다. 현재 상황에 대해 분명하게 얘기해야 한다.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다. 한계를 인정하고, 보완됐을 때 다시 공지하면 된다. 질병관리본부가 지금 주기적으로 브리핑하고 파악이 안 된 부분은 안 됐다고 얘기하는 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심리적 응급처치’(재난 경험자들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도움과 함께 관심과 지지, 공감 등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는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게 기본이다. 식료품이 될 수도 있고 의료적 접근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지체계, 즉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트라우마센터와 관련 학회에서는 대국민 심리지원을 위한 지침을 준비하고 있다.”
-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을 의료진의 번아웃(burn out·소진)도 걱정이다.
- “재난 상황에 참여하는 유관기관 업무종사자들을 3차 피해자라고 부른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시민의 응원이 필요하다. 사회적 지지가 뒷받침되면 이들의 사명감이 폭발적·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정부의 실제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보호구가 없어서 일을 못 한다’ ‘도시락이 부실하다’ 이런 얘기가 나오면 안 된다. 또 반짝 관심을 보이다 위기가 사라지면 지원도 끊길 때가 많다. 위기 상황이 끝났을 때 인정과 보상이 뒤따르고 성공 경험으로 남아야 한다.”
- 상황이 진정되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주변에 확진자·격리자였던 사람이 있다면.
- “지나친 호기심으로 접근하면 또 한 번 상처를 줄 수 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챙겨주되, 평소와 똑같이 평범하게 대하는 게 제일 좋다. 장을 대신 봐준다든지, 직장에서 휴가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등 필요한 부분에 대한 지원을 해주면 된다. 예민해져 있는 사람에게는 위로한다고 하는 이런저런 말들이 오히려 안 좋게 들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관계가 훼손되고 이는 다시 회복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 임시 생활시설에 격리됐던 우한 교민들도 상담했는데.
- “그분들도 열이면 열 같은 얘기를 했다. 주변에서 평상시처럼 대해주는 게 제일 고마웠다고. 내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 아닌데도 처음에는 창피하게 느낄 수 있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불안해한다. 메르스 격리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볼 수 있듯, 재난을 경험한 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대부분 비슷한 패턴의 심리를 보인다. 당사자들은 불안이 높고 신체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며 가족들은 분노가 많다.”
정부, 의료진들 실제적 지원해줘야
-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통합심리지원단이 해체되면 이후에는 어떻게 지원이 이뤄지나.
- “장기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권역별 트라우마센터가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 안정적으로 심리지원 콘텐츠를 만들고 효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세월호와 메르스를 거치면서 국가트라우마센터가 만들어졌고, 포항 지진을 겪으면서 영남권 트라우마센터(국립부곡병원)가 생겼다. 강원 산불이 있었을 때 강원권에도 트라우마센터가 설립될 것을 기대했지만, 예산이 삭감되면서 무산됐다. 통계적으로 보면 우리는 매년 큰 재난을 겪고 있다. 권역별 트라우마센터가 이번에는 제발 만들어졌으면 한다.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로 나뉜 운영체계를 일원화하는 것도 숙제다.”
- 국민 소양 교육으로 ‘심리적 응급처치’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 “심폐소생술 같은 ‘상식’이 돼야 한다. 전쟁이 안 나도 민방위 훈련을 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재난을 한번 겪은 지역일수록 교육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높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물리적 안전뿐 아니라 심리적 안정의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
최은혜 기자 choi.eunhye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