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메타인지’가 모더니티 낳았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75호 18면

바우하우스 이야기 〈30〉

뒤늦게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를 읽었다. 인류의 역사를 ‘인지혁명’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는 방식이 아주 흥미로웠다. 그에 따르면 17세기 경 인류는 결정적인 인지적 전환을 겪게 된다. 인류가 역사상 처음으로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지에 대한 인식’에서 과학 발달 #시선 고정된 2차원적 원근법 해체 #실제 살고 있는 3차원 공간에 관심 #바우하우스, 표현주의적 예술 지양 #생활에 도움 ‘예술·기술 결합’ 추구

그 이전에는 인간의 무지는 당연한 것이었고, 설명은 항상 신이나 고대의 현자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지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고, 스스로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관찰과 실험이라는 과학적 사고가 나타났고, ‘합리성’으로 무장한 근대 서양문명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무지에 대한 인식’을 근대사회를 가능케 한 결정적 요인으로 해석하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은 문화심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통찰이다!

‘무지에 대한 인식’, 즉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순이다. ‘내가 모른다’와 ‘내가 안다’라는 서로 모순되는 두 언술이 한 문장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내가 모른다’라는 진술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문장만큼이나 모순적이다(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 상황을 ‘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개념으로 해결한다.

‘나’와 ‘나를 생각하는 나’의 역할

독일 베를린 주립미술관에 재현된 리시츠키의 ‘프로운 방’. [사진 윤광준]

독일 베를린 주립미술관에 재현된 리시츠키의 ‘프로운 방’. [사진 윤광준]

‘메타인지’는 ‘생각에 대한 생각’이다.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한다’는 문장이 ‘참’과 ‘거짓’을 나눌 수 없는 모순이 되는 이유는 문장의 주체인 ‘나’를 단 하나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내가 둘이 되면 이 모순은 풀린다. ‘생각하는 나(1)’과 ‘나(1)를 생각하는 또 다른 나(2)’로 나눈다는 거다. 비밀번호로 설명해보자. 비밀번호를 생일이나 전화번호의 일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그렇다. 기억하기 쉬우라고 그런다. 이 때, 비밀번호를 기억해내야 하는 나(1)와 기억력이 나쁜 나(1)에게 비밀번호를 생일로 정해두면 기억을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나(2)가 있다. 바로 이 똑똑한 나(2)가 하는 일이 ‘메타인지’다.

메타인지는 학습능력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컬럼비아 대학교의 리사 손 교수는 학습능력이 뛰어난 아동은 자신이 ‘모르는 것’, ‘틀리는 것’에 관심을 집중한다고 했다.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메타인지가 활성화된다는 이야기다.

메타인지는 인지적 과정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신체적·심리적·정서적 변화를 인식하고 대처하는 능력과도 관련된다. 한 때 연애를 잘 하려면 놀이공원에서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보라는 심리학적 조언이 유행했다. 무서워서 가슴이 뛰거나 땀이 나는 것을 마치 상대방에 대해 호감을 가진 결과로 잘못 연결지었기 때문이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신경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이와 관련해 ‘신체표지가설’을 주장한다. 정서적 변화가 일어날 때 생기는 신체적 반응, 즉 ‘신체표지’는 뇌에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뇌는 저장된 신체지표에 따라 자신의 정서적 상태를 해석한다는 거다.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신체지표’에 대한 개념적 장치가 다양할수록 효율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심리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은 주장한다. 신체지표와 관련된 자신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이 많을수록 감정조절에 유리하다는 거다.

예를 들어 기분 좋은 상황에서 ‘행복한’이라는 단어만 사용하는 사람보다, ‘만족스러운, 설레는, 느긋한, 기쁜, 희망찬, 감동적인, 자랑스러운’ 등등의 개념을 사용하여 자신의 감정을 미세하게 구분하는 사람일수록 감정조절에 유리하다. 감정조절에 유리하려면 ‘감정의 사회적 구성성에 대한 메타인지’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러시아 구축주의자 엘 리시츠키.

러시아 구축주의자 엘 리시츠키.

색깔도 사회적 구성물이다. 일례로 ‘일곱색깔 무지개’는 철저히 서구적 시선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400나노미터부터 750나노미터까지의 파장을 가지는 연속적인 광선의 스펙트럼을 뉴튼이 7개의 색으로 과감하게 잘라낸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색깔 자체는 물체의 속성이 아니다. 빨간 사과의 ‘빨강’은 물체에 들어있는 색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일정한 파장의 빛이 사과의 표면에 반사되어 눈의 망막으로 들어오면 망막의 원추체가 반사된 빛을 전기신호로 바꿔 뇌로 전달한다. 우리의 뇌는 이전에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 신호를 ‘빨강’으로 인식한다. ‘빨강’이라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이 없다면 빨간 사과는 없다.

바우하우스 예비과정에서 이텐이 시도한 색의 표준화는 바로 이 색깔의 사회적 구성성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었다. 표준화된 색들 사이의 ‘색채대비’를 통해 색채의 문화적, 사회적 구성성은 더욱 분명해졌다. 이를 통해 바우하우스 학생들의 메타인지는 극대화되었다. 자연의 색깔 또한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창조적으로 만들어내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절대적 ‘시선’을 상대화하는 것도 메타인지가 작동해야 가능하다. ‘시선’ 또한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두스부르흐가 바이마르에서 바우하우스 학생들에게 전달해준 ‘축측투영(엑소노메트릭·axonometric projection)’은 바로 이 ‘시선’의 사회적 구성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당시까지 ‘원근법’, 더 정확하게 ‘중심투영(central projection)’은 3차원의 대상을 2차원으로 환원하는 방법으로, 가장 객관적이며 정확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상징형식으로서의 원근법』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돌직구를 날린다. “원근법이란 그 안에서 ‘정신적 의미내용이 구체적인 감성적 기호(記號)와 결부되고, 이 기호에 내면적으로 동화되는’ 그러한 ‘상징형식들’ 가운데 하나라고 불려도 좋은 것이다.”

‘고정된 하나의 눈’과 ‘2차원 평면 캔버스로의 환원’을 전제로 하는 원근법이란 지극히 상대적인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두 개의 눈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3차원의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원근법은 결코 객관적일 수 없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왜곡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대상을 큐브와 같은 기본 단위로 해체하고, 다양한 관점을 하나의 화폭에 끌어들이는 피카소의 큐비즘은 바로 이 전통적 원근법을 해체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피카소는 원근법의 해체를 시도했을 뿐, 새로운 구성주의적 세계가 어떻게 가능한지 끝까지 보여주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몬드리안은 구성주의적 가능성을 찾아냈지만, 2차원의 회화를 포기하지 못했다.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었던 두스부르흐는 그 가능성을 러시아 구축주의자 엘 리시츠키(El Lissitzky)의 작품에서 찾아냈다.

1915년 ‘미래주의 회화전’에 전시된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은 두 벽면과 천장이 만나는 모서리에 설치되었다. 3차원 공간의 x, y, z의 축들이 만나는 지점에 2차원적 회화를 설치함으로써 전시공간까지 끌어들이는 3차원적 구성의 가능성을 시도한 것이다.

1922년 엘 리시츠키는 베를린에서 열린 제 1회 러시아미술전시회에서 말레비치의 시도를 한 차원 더 높게 승화시킨 아주 낯선 작품을 선보였다. ‘프로운(Proun)’이다.

전시회 카탈로그의 표지를 장식한 리시츠키의 ‘프로운’은 그가 만든 조어였지만,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하게 밝힌 적이 없다. 후에 리시츠키는 프로운은 ‘회화에서 건축으로 옮겨 타는 정거장’을 뜻한다고 이야기했다. 말레비치의 절대주의가 3차원의 건축적 공간구성에서 어떻게 가능할까를 실험했다는 것이다.

리시츠키, 2차원과 3차원 결합 시도

아이소메트릭 도법으로 그려진 정육면체가 포함된 리시츠키의 ‘프로운 99’.

아이소메트릭 도법으로 그려진 정육면체가 포함된 리시츠키의 ‘프로운 99’.

바로 이 ‘프로운’에서 앞서 설명한 정육면체의 ‘아이소메트릭(균등각투영·Isometric)’이 등장한다. 원근법적 재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아이소메트릭으로 구현된 정육면체는 뭔가 어색하다. 시점이 하나뿐인 원근법과는 달리, 각 면을 바라보는 여러 시점을 동시에 구현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각 면을 구성하는 선의 길이가 실제와 똑같은 크기로 그려져,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정육면체가 그려졌다. 단 하나의 시선, 즉 고정된 원근법적 시선이 해체된 후 나타난 다차원적 시선은, 새롭게 등장한 산업사회의 기술적 정확성을 반영해야 했다.

리시츠키의 ‘프로운’에서 몬드리안 이후의 3차원적 공간구성의 가능성을 찾은 두스부르흐는 1922년 발간된 ‘데 스틸’지(紙)에 두 번에 걸쳐 그에 관한 글을 실었다. 당시 바이마르에 머물며 사설강좌를 개최했던 그는 바우하우스 학생들에게도 낭만주의적 예술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며 리시츠키의 구축주의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소개했다.

새롭게 구성되어야 할 구성주의적 시선은 낡은 수공업 세계와의 단절이다. 바우하우스가 추구해야 할 예술은 고립된 개인의 창조성에 전적으로 좌우되며 현실과 동떨어진 표현주의적 예술이 아니라, 사람들의 실제 생활, 즉 3차원 공간과 관련을 갖는 예술이어야 한다. 사람들의 실생활에 구체적 도움이 되는 예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술과 기술의 통일’이라는 바우하우스의 새로운 목표가 시작된다. ‘무지에 대한 인식’의 메타인지가 근대 ‘과학과 기술의 결합’을 가져왔던 것처럼, ‘구성적 시선에 대한 인식’이라는 메타인지가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가져왔던 것이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