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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만에 드러난 심리전의 진실…'도쿄 로즈'에 넘어간 미군병사

중앙일보

입력

[Focus 인사이드]

지금은 영향력이 많이 쇠퇴했지만, 라디오는 여전히 중요한 매체다. 유무선 전화나 SNS처럼 쌍방향은 아니지만 비교적 간단한 방송 장비와 수신기만 있으면 필요한 정보를 쉽게 전달할 수 있다. 그래서 재해가 발생해 통신 시설이 파괴되었을 경우 대단히 긴요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전쟁이나 이에 준하는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적 교란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선무공작(宣撫工作) 수단이기도 하다.

전후 신병이 확보된 후 기자 회견을 하는 이바 도쿠리. 반역죄로 기소되어 10년형을 선고받아 6년을 복역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 보관소]

전후 신병이 확보된 후 기자 회견을 하는 이바 도쿠리. 반역죄로 기소되어 10년형을 선고받아 6년을 복역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 보관소]

간과하는 경향이 많지만, 생각보다 라디오에 의한 선전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제2차 대전 중 영국에서 대륙으로 향한 선전 방송은 나치 치하에서 신음하던 이들에게 커다란 용기를 심어주었다. 우리의 '한민족방송'이나 '미국의 소리(VOA)'는 북한 주민들이 외부의 소식을 듣는 창이 되고 있다. 실제로 방송의 영향을 받은 탈북자들이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선전 방송은 교전이 치열할 때 더욱 활발해진다. 이런 경우의 콘텐트는 대개 적의 사기를 저하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상대에 대한 무조건적 비난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주로 개별 병사들의 감정을 흔드는 기법을 사용한다. 특히 멀리서 원정 온 병사들이 그런 공작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고사에 나오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오래전부터 있는 전술이다.

워싱턴 DC에 위치한 미국의 소리 방송국 본사. 1942년부터 한국어 방송을 했을 만큼 역사가 오래되었다. [사진=Wikipedia]

워싱턴 DC에 위치한 미국의 소리 방송국 본사. 1942년부터 한국어 방송을 했을 만큼 역사가 오래되었다. [사진=Wikipedia]

현대전에서 유명한 선무공작 사례 중 하나가 태평양 전쟁 당시 수많은 미군 장병에게 영향을 준 '도쿄 로즈(Tokyo Rose)'다. 일본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여성들을 동원해 미군을 대상으로 라디오 방송을 했다. 대부분 허무맹랑한 선전이어서 냉소를 보냈지만, 향수를 부추기는 음악과 더불어 흘러나오는 나긋나긋한 여자들의 목소리에 젊은 병사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

효과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아니나 미군이 선무방송에 동원된 일본 여자들을 통틀어 도쿄 로즈라고 칭했을 만큼 명성을 얻었다. 도쿄 로즈는 14명 정도로 파악되는데, 전후 이들이 전범으로 처벌받을 것을 우려한 방송 관계자들이 비밀로 하면서 정확한 신원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미국이 굳이 찾아내서 단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만큼 유명도와 비교하면 방송 내용이 미미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도쿄 로즈로 활동 시절의 이바 도쿠리와 당시 방송에 사용된 마이크. [사진=Wikipedia]

도쿄 로즈로 활동 시절의 이바 도쿠리와 당시 방송에 사용된 마이크. [사진=Wikipedia]

그런데 현재까지 유일하게 신원이 확인된 인물이 한 명 있다. 앤이라는 예명으로 활약한 이바 도쿠리가 주인공인데, 여타 도쿄 로즈들과 달리 그녀는 종전 후 체포되어 반역죄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으로 수감되었다. 그 이유는 그녀가 미국 시민권자였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인 그녀는 1941년 7월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다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인생이 기구하게 바뀌었다.

2006년 1월, 뒤늦게 확인된 공적으로 시민상을 수상받은 직후의 모습. 그로부터 6개월 후 90세로 생을 마감했다. [사진=www.timetoast.com]

2006년 1월, 뒤늦게 확인된 공적으로 시민상을 수상받은 직후의 모습. 그로부터 6개월 후 90세로 생을 마감했다. [사진=www.timetoast.com]

어쩔 수 없이 일본에 잔류하게 되었고 갈수록 생활고가 극심해지자 방송국에 취업했다. 처음에는 사무직이었으나 영어 실력을 눈여겨본 상부의 지시로 선무방송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녀는 미국의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를 담당해서 특히 병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종전 직전 포르투갈계 혼혈인 펠리페 아퀴노와 결혼했으나 징역형을 살면서 강제 이혼당하고 6년 복역 후 석방되어 고향 시카고로 돌아갔다.

그렇게 죽은 듯이 살던 중 재판 당시 증인들이 거짓 진술을 했음이 확인되면서 1977년 사면을 받아 시민권을 회복했고 90세로 사망하기 직전인 2006년 1월, 미군 참전용사회로부터 시민상을 수여 받았다. 전쟁 중 일본의 협박이 있었음에도 끝까지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았고 몰래 미군 포로들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혼란했던 시대를 살았던 경계인의 고단했던 일생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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