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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53년된 개인택시, 한때 면허받기 전쟁.."지금은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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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개인택시 발대식. [자료 서울사진아카이브]

1983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개인택시 발대식. [자료 서울사진아카이브]

 "서울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박00(54) 씨에게 '택시' 운송사업에 대한 개인면허를 주었다."

 1967년 6월 21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국내에서 최초로 개인택시 면허가 발급됐다는 사실을 전하는 내용인데요.

 기사는 또 "박 씨는 '경원 택시'라는 이름으로 자기가 사장이며 운전사로 33년 11개월 무사고로 운전해온 모범운전사"라며 "서울시가 모범운전사들이 장차 사회에서 지위 향상이 되도록 돕기 위해 법인체에만 주던 면허를 개인에 준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앞서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는 개인택시 제도가 먼저 도입됐다고 하는데요. 국내 도입 경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찾기 어렵지만 아마도 이를 차용한 것 아닌가 하는 추정이 관련 업계에서 나옵니다.

 1967년 국내 최초 개인택시 면허 발급 

 현재 타다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택시업계, 그중에서도 개인택시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나이로 치면 올해로 53세가 되는 셈인데요.

1969년 서울의 개인택시 모습. [자료 서울사진아카이브]

1969년 서울의 개인택시 모습. [자료 서울사진아카이브]

 그런데 사실 개인택시는 당시 정부의 방침과는 어긋나는 제도였습니다. 정부는 운수업자의 지입제를 지양하고, 기업화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었는데요. 택시 산업을 제대로 키워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반면 서울시는 10년 이상 무사고 운전한 모범운전사에 한해 개인택시 면허를 발부해 사기를 높이고 교통사고도 줄이겠다며 개인택시 제도 도입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같은 해 12월 두 명의 택시기사에게 개인택시 면허를 더 내준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입니다.

 70년대 초반 서울은 증가하는 인구에 비해 택시 수가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1970년 3월 16일자 중앙일보에 따르면 "서울에서 택시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고 하는데요.

 70년대 택시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

 당시 서울에서 출근 시간에 택시를 타려는 인구는 16만명에 달하지만, 택시는 채 1만대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지하철과 버스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이라 택시 의존도는 더 높았던 것 같은데요.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대규모 택시 증차를 추진합니다. 1970년 5월에 5년 이상 무사고 운전사에게 개인택시 면허를 주던 것을 1년 이상 무사고면 되도록 기준을 완화한 것도 택시 증차의 한 방안이었습니다.

1976년 시행된 서울의 개인택시 면허추첨 장면. [자료 서울사진아카이브]

1976년 시행된 서울의 개인택시 면허추첨 장면. [자료 서울사진아카이브]

 이후 택시산업의 기업화 정책이 다시 힘을 얻으면서 개인택시 면허발급이 한때 중단됐지만 76년부터 재개되는데요. 법인택시의 지입제 운영과 교통사고 증가 등 여러 부작용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개인택시 면허는 택시기사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하는데요. 서울시의 경우 개인택시 면허는 자격을 갖춘 신청자 중에서 시 경찰국의 배수 추천을 받아 공개추첨으로 배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개인택시 2000대 추첨에 1만명 몰려 

 1978년 서울 강남구 탄천변에서 열린 개인택시 2000대 추첨에는 서류심사를 거친 운전사와 가족 등 1만여명이 몰려 장관을 이뤘다는 기사 내용도 있습니다. 개인택시 기사들의 평균 수입이 법인택시 기사에 비해 70% 이상 높았던 것도 이러한 열기를 뒷받침하는 듯합니다.

 같은 해 하반기에는 남성 운전사에 대한 개인택시 면허발급이 중단되고, 여성 운전사에게만 개인택시 면허가 주어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성들로만 구성된 개인택시 발대식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1978년에는 여성운전자에만 개인택시 면허가 발급되기도 했다. [자료 서울사진아카이브]

1978년에는 여성운전자에만 개인택시 면허가 발급되기도 했다. [자료 서울사진아카이브]

 1981년 8월에는 아예 개인택시를 전체 택시의 70% 선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정책이 발표되기도 했는데요. 당시 전체 택시의 28.5%였던 개인택시 비중을 1985년까지 70%대까지 늘리겠다는 내용입니다.

 앞서 같은 해 3월에는 개인택시 사업자가 사망했을 경우 사업면허를 취소하지 않고 상속자가 면허자격이 있을 경우 이를 물려받거나 다른 유자격자에게 팔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도입됐는데요. 개인택시가 평생직장이자 자녀에게 상속까지 해줄 수 있는 확고한 '재산권'으로 자리 잡은 게 이때부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때문인지 당시에도 개인택시에는 최고 1000만원이 넘는 프리미엄이 붙어서 매매된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당시 1천만원은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약 3900만원가량 됩니다. 현재 개인택시 양수 양도 규정은 면허를 발급받은 연도와 지자체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공급과잉 탓 90년대 말 발급 중단   

 이런 과정을 거친 개인택시 면허는 서울의 경우 90년대 후반부터 사실상 발급이 중단됐는데요. 적정 택시 대수를 넘어 공급과잉 상태라는 판단에서라고 합니다. 그래서 개인택시 면허가 취소되거나 할 때만 그 수준에서 면허가 신규 발급되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개인택시의 몸값이 더 올라간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서울에서 개인택시 면허는 최고 1억원 가까이에 팔리기도 했는데요. 이 면허 값은 개인택시 기사들의 노후 보장책이기도 합니다.

서울의 택시는 대중교통의 확충과 자가용 증가 등으로 인해 승객이 줄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의 택시는 대중교통의 확충과 자가용 증가 등으로 인해 승객이 줄고 있다. [중앙포토]

 하지만 개인택시의 좋던 시절도 이제는 끝났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우선 택시의 공급 과잉 때문인데요.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전국의 택시 대수(2019년 4월 기준)는 모두 25만여대입니다.

 종류별로는 개인택시가 16만 5000여대(65%)이며, 법인택시가 8만 7000대가량입니다. 정부는 이 가운데 5만대 이상이 공급 과잉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전국 택시 25만대 중 5만대 공급과잉

 서울만 따져보면 택시 대수는 모두 7만 1000여 대로 개인택시가 4만 9000대, 법인이 2만 2000대가량인데요. 서울시는 적정량보다 1만 1000대가량이초과된 걸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택시가 공급과잉 되는 동안 서울에는 지하철과 광역전철,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이 대폭 확충된 데다 승차거부와 불친절 등 택시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탓에 택시 시장은 더욱 위축됐습니다.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소속 택시기사들이 '타다 퇴출'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소속 택시기사들이 '타다 퇴출'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 결정타는 2018년 승차공유를 내세운 '타다'의 등장이었습니다. 택시 면허 없이 렌터카(승합차)를 이용해서 승객을 실어나르는 사업형태로 택시업계의 크나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는데요.

 하지만 크고 넓은 실내 공간과 친절한 기사 등 차별화된 서비스는 기존 택시에 불만이 많았던 시민들의 많은 선택을 받았습니다. 현재 1400대가량이 운행 중이지만 향후 확장성과 유사 업체의 등장 가능성 등을 보면 그 파괴력은 더 커 보입니다

 서비스 향상과 세대교체가 위기 돌파구  

 이러한 여파로 인해 개인택시의 면허 값은 최고 수준일 때에 비해 3000만~4000만원가량이 떨어졌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개인택시로서는 승객 감소에 노후 대책의 보루였던 면허 값까지 폭락하는 등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돌파구는 결국 승객의 선택을 다시 받는 겁니다. 기존에 불만을 샀던 서비스 수준을 높이고, 승객들이 편리함을 느낄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젊은 기사들이 개인택시에 유입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한데요. 국토교통부도 이를 위해 개인택시 양수기준을 완화할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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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개인택시 기사 16만여명 가운데 20~40대는 채 1만명이 되지 않습니다. 60대가 8만명으로 가장 많고, 70대가 2만 3000여명, 80대도 600여명가량 되는데요. 기사의 세대교체와 서비스 향상이 이뤄진다면 잃어버렸던 승객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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