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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전염병 관련성 확인 필요한데 왜 성급하게 화장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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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숭덕 서울의대 법의학교실 교수

이숭덕 서울의대 법의학교실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국에 초비상이 걸렸다. 뉴스와 소문은 넘쳐나지만, 진짜 필요한 정보는 부족하다. 정확한 정보의 생산과 이를 확인해 활용할 수 있는 선구안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미래지향적인 행동 지침과 관련해 가장 강조되는 것은 투명한 정보 공개, 과학적 판단, 그리고 신뢰다. 동일한 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 표출은 그 이후의 문제다. 다양한 객관적인 근거는 좋은 선택의 시작점이다. 단순한 추측이나 걱정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우리의 상대는 변이가 빠른 바이러스다.

메르스 교훈, 국과수 부검실 설치 #사망자 부검 않은 건 매우 부적절

우리는 여러 사실을 모으고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우려되는 보도를 접했다. “지난 22일 경북 경주경찰서 등에 따르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A씨(40)는 동국대 경주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안치돼 있다가 이날 오후 병원 외부로 이송돼 화장 절차를 마친 것으로 파악됐다”는 보도였다. 보도에 따르면 “A씨는 사망 전날까지도 회사에서 야근했으며, 기침만 조금 했을 뿐 죽을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고 한다.

의학적으로는 바이러스 감염 때문에 사망한 사람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사망자가 한 사람 더 늘어났다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사망이라는 단어가 갖는 폭발력과 숫자의 마력 때문이다. 객관적이지 않다. 둑이 작은 구멍 하나로 시작해 무너지기 시작하듯 또 다른 두려움의 시작은 아니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2015년 메르스(MERS) 사태 이후 사회의 여러 곳에서는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대한법의학회·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국내에서 죽음과 검시(檢視)를 담당하는 전문가 집단에서도 그런 노력을 했다. 시설 분야에서 큰 변화는 다양한 감염 관련 사망에 대비해 외부로의 균 유출을 방지하면서 부검을 진행할 수 있는 ‘BSL3 부검실’을 국과수에 만드는 것이었다. 마침내 세계적으로도 손꼽는 시설을 갖췄다.

A씨 같은 사례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단순 감염자와 환자, 증상이 가벼운 환자와 진짜 위중해 반드시 격리 치료가 필수적인 환자의 구분은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된 지금 매우 중요해졌다. 하물며 검사 결과 양성인 상태에서 사망한 사람에서 사망 원인을 밝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확한 원인을 밝혀야 하는데 서둘러 화장이 진행됐다. 힘들여 만든 시설은 사용되지 않았다.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의구심과 우려만 남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 대해 현재 보건당국이 활용하고 있는 지침은 과거 메르스 사태 당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망률이 높았으며 환자들은 병원에서 사망해 부검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 단지 사망자 숫자의 문제는 아니다. 정확히 알아야만 공유하고 객관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 신뢰의 문제다. 조급함과 서두름은 불신의 시작일 수도 있다. 그리고 A씨에 대한 부검은 단지 사회가 필요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족도 정확한 사인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향후 과로사 등 여러 행정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속도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종종 ‘적절한 때’ 그리고 ‘여러 일의 순서’ 등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사전에 대비해 훌륭한 시설을 만들었고 준비하고 있음에도 이번엔 무용지물이었다. 조급한 화장 처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하지 못했다.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다른 처리 방안을 찾아봤어야 했다. 서둘러 처리하고 나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건이 그런 경우라 매우 유감이다. 다시는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숭덕 서울의대 법의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