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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KB증권은 왜? 라임 TRS 줄이면서 고객엔 라임펀드 팔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라임사태로 KB증권이 술렁거리고 있다. 2019년 초 라임자산운용 펀드에 제공한 총수익스와프(TRS) 규모를 8분의 1로 확 줄였던 이 증권사가 같은 시기 고객들에겐 라임펀드를 570억원 어치나 판매했기 때문이다. 모순된 결정을 내린 경영진의 책임론이 제기된다.

라임 TRS 8000억, 한순간 1000억으로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KB증권 본사 대회의실에 이 회사 프라이빗뱅커(PB) 약 50명과 노조 관계자, 박정림 사장 등 경영진이 모였다. 전액(설정액 571억원) KB증권 창구를 통해 팔린 '라임AI스타 1.5Y(이하 AI스타)'에 대한 설명회 자리였다. 이 펀드는 100% 손실 구간에 접어들었다. 모펀드인 '플루토 FI D-1호(플루토)' 손실률은 49%이지만, KB증권이 제공했던 TRS 대출금을 갚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서울 여의도의 KB증권 사옥 전경. KB증권

서울 여의도의 KB증권 사옥 전경. KB증권

이날 설명회에서 논의된 쟁점 중 하나는 KB증권의 라임펀드 TRS 규모였다. 2018년 말까지만 해도 라임펀드에 8000억원 넘는 TRS 대출을 제공했던 회사가 왜 2019년 들어 그 금액을 1000억원으로 갑자기 줄였냐는 것이다.

실제 김종석 미래통합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KB증권은 라임펀드에 제공한 TRS로 2018년 연간 170억원, 2019년 1분기 79억5000만원의 수수료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그 직후인 2019년 2분기엔 수익이 15억원으로 확 줄었다. 혹시 라임펀드의 심각한 리스크를 인지하고 TRS 축소에 나섰던 게 아니냐는 게 일부 참석자의 지적이었다. 이에 경영진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라임운용 TRS를 거둬들였다고 설명했다.

'한도 줄이고 증거금율 높여라' 리스크관리

KB증권과 금융당국을 통해 취재한 바에 따르면 KB증권은 2018년만 해도 전체 TRS 신용공여 한도 1조5000억원의 80%인 1조2000억원을 라임운용에 지급했다. 당시 TRS 대출에 적용했던 증거금율(담보비율)이 30%(레버리지율 70%)라는 걸 감안하면 라임 측에 제공된 대출금만 8400억원에 달한다.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CIO)이 지난해 10월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서울국제금융센터(IFC 서울)에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CIO)이 지난해 10월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서울국제금융센터(IFC 서울)에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2018년말 지나친 라임 편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KB증권 내부에서 제기됐다. 라임운용이 특정 특수목적법인(SPC)에 과도한 투자를 일삼는다는 정보도 시장에 돌았다. 그러자 리스크관리부문은 TRS를 운용하는 델타원솔루션본부에 거래처 1곳의 TRS 대출을 전체의 50% 이내로 제한하도록 지시했다. 30%이던 TRS 증거금율도 70% 수준으로 상향 조정토록 했다. 그 결과 라임 TRS 대출규모는 1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TRS 줄이면서 'AI스타'는 왜 팔았나 

PB들의 불만은 여기서 터져나온다. 2018년말부터 2019년 3월까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라임운용 TRS를 줄인 회사가 왜 같은 기간 고객들에게 라임펀드인 AI스타를 팔았느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AI스타에 제공된 TRS의 증거금율은 50%였다. 모든 TRS에 70%의 증거금율을 적용하라던 본사 지침과 맞지 않았다.

이는 AI스타 탄생 이유와 관련 있다. 2018년 10월쯤 윤모 전 사장은 당시 신한금융투자에서 불티나게 팔린 라임무역금융펀드를 거론하며 "우리도 '메가히트' 상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게 라임의 플루토를 기반으로 한 AI스타다.

AI스타에 적용한 TRS 증거금율 50%도 이런 차원에서 결정됐다. AI스타 수익률을 극대화하려면 TRS를 통한 레버리지(차입) 효과를 극대화해야 했다. 경영진은 다른 TRS에 대한 증거금율은 70%로 올리기로 했으면서도, 메가히트 상품으로 키울 AI스타에는 그보다 낮은 50% 증거금율을 적용키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AI스타는 2019년 1월부터 3월까지 총 571억원 어치가 팔렸다.

'스트레스테스트' 왜 했나 

PB들은 KB증권이 지난해 2월 플루토 펀드에 대해 진행한 스트레스테스트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한다. 라임운용의 문제를 인지하고 스트레스테스트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스트레스테스트로 플루토펀드에서 최대 30%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던 것도 이런 의혹을 부채질한다. 부실 가능성을 알아서 TRS 규모를 줄였고, AI스타는 알면서도 판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KB증권이 지난해 라임사태 이후 직원(프라이빗뱅커)들에게 제공한 설명자료에 TRS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제보자 제공

KB증권이 지난해 라임사태 이후 직원(프라이빗뱅커)들에게 제공한 설명자료에 TRS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제보자 제공

이에 대해 KB증권은 스트레스테스트로는 부실 징후를 알 수 없다고 해명한다. 스트레스테스트는 금융위기와 같은 극한의 상황을 가정해, 자산 회수율을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낮춰 진행한 시험에 불과하단 것이다. 사모사채를 발행한 기업을 모두 B등급(투기등급) 이하로 가정했고, 코스피 기업의 무담보 채무 회수율을 40%로 매우 낮게 가정했다. 그렇게 해서 플루토의 최대 손실률이 30%라면 상당한 건전한 펀드로 평가됐다는 설명이다.

스트레스테스트를 시행한 것도 라임펀드의 부실을 인지해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스트레스테스트는 AI스타에 적용하는 TRS 증거금율과 여타 펀드에 적용하는 TRS 증거금율을 이원화 하는 과정에서 그 적정 수준을 판단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경영진 무리한 판단 탓 고객은 100% 원금 손실 

결국 전사적인 리스크관리 방향과는 달리 '메가히트' 상품으로 키울 AI스타에 TRS 증거금율을 무리해 낮춰잡는 특별대우를 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 결과 KB증권은 라임펀드에 대한 TRS 대출은 대폭 거두면서도 정작 자기 고객들에겐 라임펀드를 권한 꼴이 됐다. KB증권에서 AI스타에 가입한 고객들은 KB증권 TRS 때문에 100% 원금 손실을 봐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KB증권 관계자는 "라임펀드 TRS를 거둬들인 델타원솔루션본부와 AI스타펀드를 만든 상품기획부, 이를 고객에 판매한 PB들 모두 회사가 정해준 대로 자기 일을 한 것"이라며 "경영진은 내용을 다 알면서도 모순된 결정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도 "이는 특정 부서나 직원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라임펀드와 관련한 전사적 리스크관리 체계의 허점을 짚는 사례로 살펴볼 문제"라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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