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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4기 환자에게 "대구사람 병원 출입금지"···대구가 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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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5일 오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격리병상이 마련된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이송 환자에 대한 목록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오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격리병상이 마련된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이송 환자에 대한 목록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 남구에 사는 이모(35)씨는 최근 서울 한 대형병원으로부터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희귀난치병인 크론병을 앓고 있는 이씨는 석 달에 한 번씩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치료용 주사를 받아야 한다. 이 주사를 일주일에 한 차례씩 자가 주사해야 해서다.

대구·경북 거주 이유로 불이익 사례 늘어 #“대구사람과 같이 있으면 불안” 분위기도 #온라인에 퍼지는 대구·경북지역 차별여론 #“‘대구발 코로나’ 표현 지역민 힘들게 해”

이씨는 “26일 병원을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병원으로부터 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이유는 내가 대구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병원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고 있는 대구·경북 거주자와 방문자에 대한 내원을 금지하고 나섰다. 코로나19 예방 대책이라면서다.

당장 주사가 떨어진 이씨는 “병원에 전화를 수 차례 해도 안내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위임장을 주고 치료용 주사를 대리 수령하게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 또한 대구·경북 주민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대구 달서구에 사는 김모(33·여)씨도 폐암 4기 환자인 아버지가 같은 병원에 5년째 다니고 있다. 김씨는 “항암제 처방을 받으러 26일 병원을 가려고 했는데 방문을 거부 당했다. 대구 사람이라는 이유였다”고 말했다.

서울 한 대형병원 홈페이지 공지사항. 대구경북 지역 거주자 또는 방문자의 내원을 금지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홈페이지 캡쳐]

서울 한 대형병원 홈페이지 공지사항. 대구경북 지역 거주자 또는 방문자의 내원을 금지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홈페이지 캡쳐]

김씨는 “항암제는 매일 같은 시간에 복용해야 하고 검사 결과에 따라 처방되는 약의 변동이 있다. 진료를 받지 못해 환자의 건강과 생명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물으니 병원에서 돌아온 대답은 ‘책임질 수 없다’였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처럼 코로나19가 대구·경북 지역에서 확산세를 보이면서 다른 지역에서 이른바 ‘대구 포비아(Phobia·공포증)’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구·경북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작게는 “코로나19 감염된 사람 아니냐”는 핀잔부터, 크게는 건물 출입금지 같은 차별까지 다양하다.

지난 22일 주말을 맞아 강원도 한 스키장을 찾은 신모(32)씨는 “스키장 내 식당에서 지인과 밥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여기에도 대구 사람 있는 것 아니냐.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밥만 먹었다”고 말했다. 대구 달성군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 다니는 박모(30)씨는 “주문받은 물건을 다른 지역 공장에 배송하는데 담당자로부터 ‘물건 말고 다른 것도 넣어서 보내는 것 아니냐. 물건을 받자마자 소독해야겠다’는 뼈있는 농담을 들었는데 기분이 나빴다”고 전했다.

25일 오후 동대구역에 도착한 서울 출발 부산 도착 KTX 135 열차에서 내리거나 타는 사람이 뜸하다. 최근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진이 급증하며 대구시민들은 외출을 꺼리고 타지인들은 대구 방문을 자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오후 동대구역에 도착한 서울 출발 부산 도착 KTX 135 열차에서 내리거나 타는 사람이 뜸하다. 최근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진이 급증하며 대구시민들은 외출을 꺼리고 타지인들은 대구 방문을 자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언론에서 ‘대구발 코로나’ 등 표현을 쓰는 것도 지역 차별을 부추겼다. 채홍호 대구시 행정부시장은 22일 오전 대구시청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일부 언론에서 '대구 코로나' '대구발 코로나' 등을 무분별하게 사용, 대구시민들을 또 한번 힘들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20일 중앙사고수습본부와 행정안전부 대책지원본부가 배포한 코로나19 관련 보도자료의 제목을 ‘대구 코로나19 대응 범정부특별대책지원단 가동’이라고 붙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온라인에서도 대구 지역 차별 여론이 퍼지고 있다.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단 ever****는 “대구에 선량한 사람도 많겠지만 대구는 진짜 쓰레기 지역이다”고 썼다. dbse****는 “제발 경상도를 봉쇄해라. 서울시민까지 아작나면 한국 경제 초토화된다”고 했다. viol****는 “대구경북 너희들이 자초하고 정부 욕먹게 하려고 쇼하다가 집단감염시키고 사회불안을 조장했다”고 비난했다.

이와 관련해 권영진 대구시장은 23일 브리핑에서 “확진자 대부분은 대구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 신천지 대구교회를 방문한 이후 발병한 것이다. 우한 폐렴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듯이 ‘대구 코로나’ ‘대구 폐렴’도 없다”며 “나를 욕할지언정 대구시와 대구시민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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