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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미안하다” 말 않고 조롱하는 중국, 한마디 따지지도 못하는 한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지난달 말부터 매일 베이징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중국 상황의 심각성을 한국에 전했는데, 한 달 만에 상황이 역전됐다. 이젠 중국 언론이 한국 내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전날과 비교해 가며 한국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도하는 데 열을 올린다.

중국 언론, 한국 확진 보도 열 올려 #“한국인들 역병 피해 중국에 피신” #한국 걱정하며 “방역 경험 전수” #도움 운운 앞서 유감 표명이 먼저다

이 같은 중국 언론의 변신은 지난 21일부터다. 이날 “한국 200 돌파!” 속보가 떴다.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가 200명을 넘어섰다는 거다. “346! 한국 증가 속도가 빠르다”(23일), “한국 하루 231명 늘어 833명”(24일) 등의 표현을 써서 중계라도 하듯 보도한다.

베이징 주재 한국 기자가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을 찾아 취재했듯이 이젠 서울 주재 중국 기자가 대구를 찾는 진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환구시보(環球時報)와 글로벌타임스는 25일 공동사설에서 “한국 정부는 여전히 코로나19가 국부적일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코로나19가 확산 중인 국가에서는 반드시 더욱 단호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 기막힌 일은 한국에선 아직도 중국인 입국 금지 문제로 옥신각신 날을 지새우는데 정작 당사자인 중국인은 이제 한국에 가라고 해도 가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한국 입국을 포기하는 중국 유학생이 늘고 있다. 오히려 한국에서 중국으로 가려는 중국 근로자가 늘며 비행기표 가격이 치솟았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5일 전했다.

그뿐이 아니다. 중국으로선 이제 한국에서 오는 사람도 달갑지 않다. 지난 23일 저녁부터 지린(吉林)성 옌지시의 차오양촨(朝陽川) 국제공항이 한국인 승객을 대상으로 마련한 전용 통로가 대표적인 예다. ‘코로나19 수출국’인 중국이 한국에서 역으로 바이러스가 유입될 까봐 두려워 비상조치를 취한 것이다.

베이징에선 최근 한국인이 아파트 단지를 출입하려면 새로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24일부터 한국에서 돌아온 한국인들은 집에서 2주 동안 머물며 이상이 없다는 게 확인된 뒤에야 단지 출입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산둥(山東)성에 비하면 이것도 양반이다. 산둥성 칭다오(靑島)시는 24일부터 한국에서 오는 사람에 대한 입국 검역 절차를 대폭 강화했다. 모든 입국자에 대해 14일 격리 관찰을 시행한다. 이에 대해 중국산업경제정보망(网)은 “칭다오시가 역병을 피해 중국에 와 숨으려는 한국인을 상대로 조치를 취했다”는 제하의 기사를 실었다. 한국 정부는 중국 측의 이런 조처에 사실상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어 저자세 논란이 일고 있다. 외교부는 이스라엘이나 모리셔스·요르단 등이 사전 협의 없이 입국 통제를 했을 때는 유감 표명과 함께 강력하게 항의했다.

문제는 이런 현장의 변화가 이전의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이 사드 보복 철회를 요구하면 중국은 “보복한 적이 없어 철회할 것도 없다”고 한다. 중국 중앙정부가 문건이 아닌 구두 형식으로 알아듣게끔 각 부서에 지침을 하달해 공식화하지 않은 결과다.

이번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도 중앙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고 중국은 설명할 것이다. 실제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여행주의보 발령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술 더 떠 이제 중국이 한국에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 중국 언론은 한국이 중국의 방역 수단과 경험을 참고하라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중국이 어려울 때 함께한다고 한 한국에 도움을 줬다는 걸 국내외적으로 선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중국은 참으로 독특한 나라다. 도움을 운운하기에 앞서 먼저 이처럼 전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데 대해 “미안하다” 등의 유감 표명을 해야 하지 않나.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일 중국 언론을 훑고 있지만, 아직 어디서도 그런 말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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