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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가 주목한 차세대 거장 20인, 유일한 한국감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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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저명 영화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 3월호 커버는 분홍 바탕에 봉준호 감독이 왼손으로 안경을 잡은 클로즈업샷이 장식했다. 객원 편집 by 봉준호 란 문구와 함께 그의 사인도 실렸다. [사진 웹캡처, 사이트 앤드 사운드]

영국 저명 영화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 3월호 커버는 분홍 바탕에 봉준호 감독이 왼손으로 안경을 잡은 클로즈업샷이 장식했다. 객원 편집 by 봉준호 란 문구와 함께 그의 사인도 실렸다. [사진 웹캡처, 사이트 앤드 사운드]

“나는 이 20명의 감독을 통해 영화의 미래를 논의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영화에 대해 토론하려 한다. 하지만 결국 이것은 불가피하게 영화의 미래에 관한 논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왕가위의 두 번째 영화 ‘아비정전’(1990)을 봤을 때 이미 ‘화양연화’(2000)를 꿈꿨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혹은 코엔 형제 감독의 ‘블러드 심플’(1984)을 봤을 때 그들이 20여년 후에 내놓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를 이미 체험했을지도 모른다.”

봉준호 감독이 객원 편집자로 참여한 영국 영화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 3월호에 차세대 감독 20인을 선정하며 한 말이다.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격인 영국영화연구소(BFI)가 발간하는 이 잡지가 객원 편집자를 초청한 건 90년 역사상 봉 감독이 최초다. 이 잡지 편집장 마이크 윌리엄스는 편집장의 글에서 그를 두고 “현대 영화에서 가장 창조적인 공상가”라 찬탄했다.

영국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와 선정 #차세대 거장 20인 중 유일 한국감독은

봉 감독은 이번 3월호에 직접 아이디어를 낸 여러 기획 중 주목해야 할 감독 20인을 꼽은 ‘20/20 비전’에 가장 힘을 실었다.

선정은 봉 감독이 10명의 리스트를 보내고 나머지는 ‘사이트 앤드 사운드’ 편집진이 고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기사에 실린 총 20명 중 그가 뽑은 감독 10인이 누군지 따로 표시돼있진 않지만 봉 감독이 직접 쓴 기사 서문과 추천사를 통해 그가 지지한 감독을 짐작할 수 있다.

유일한 한국감독…"아역배우 관한 3대 마스터"

특히 이 명단엔 봉 감독이 직접 추천사를 쓴 한국감독 한 명이 이름을 올렸다. 한국에서도 그를 이을 ‘포스트 봉준호’를 찾아 나선 터다. 봉 감독 자신은 주목하고 있는 차세대 감독으로 윤가은 감독을 언급했다.

윤 감독은 4년 전 ‘우리들’에서 초등학교 왕따 문제를 아이들 시선에서 섬세하게 다뤄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30여개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지난해 개봉한 두 번째 장편 ‘우리집’에선 가족을 지키려는 소녀들의 성장담을 그렸다.

영국 영화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에서 봉준호 감독은 차세대 거장 20인에 한국의 윤가은 감독을 뽑으며 "아역배우로부터 훌륭한 연기를 이끌어낸다"고 찬탄했다. [사진 웹캡처, 사이트 앤드 사운드]

영국 영화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에서 봉준호 감독은 차세대 거장 20인에 한국의 윤가은 감독을 뽑으며 "아역배우로부터 훌륭한 연기를 이끌어낸다"고 찬탄했다. [사진 웹캡처, 사이트 앤드 사운드]

당시 ‘우리집’을 본 봉 감독은 “햇살 가득 명랑한데 가슴 아픈 영화”라며 윤 감독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더불어 아역배우를 스크린 위에 살아 숨 쉬게 하는 ‘3대 마스터’”라 칭하기도 했다. ‘기생충’에 기택(송강호) 아내 충숙 역의 배우 장혜진도 봉 감독이 ‘우리들’ 속 엄마 연기에 반해 캐스팅한 것이었다.

이번 ‘사이트 앤드 사운드’ 기사에서 그는 윤 감독에 대해 “새로운 세대의 한국여성 감독 중 가장 흥미진진한 사람 중 한 명”이라며 “아역 배우들로부터 훌륭한 연기를 이끌어낸다”는 찬사를 다시금 보냈다.

"눈부시게 독특한 영화"라 찬사한 감독은

봉준호 감독이 차세대 거장으로 주목한 이란 감독 알리 아바시의 영화 '경계선'. [사진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봉준호 감독이 차세대 거장으로 주목한 이란 감독 알리 아바시의 영화 '경계선'. [사진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봉 감독이 이외에 따로 추천사를 밝힌 감독은 이란의 알리 아바시. 영화 ‘경계선’(2018)으로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 대상을 받았다. 봉 감독은 “‘경계선’은 눈부시게 독특한 영화”라 지지했다.

기사 서문에서 봉 감독이 윤 감독과 함께 따로 언급하며 애정을 드러낸 영화들은 또 있다. “‘미드소마’(감독 아리 에스터)의 강박적 비주얼, ‘아사코’(감독 하마구치 류스케)가 고요히 응시하는 칠흑 같은 바다, 저 바다 너머 흑백의 빛을 내뿜는 ‘라이트하우스’(감독 로버트 에거스)의 아름다움, 윤가은 영화 속 아이들의 끝없는 수다, ‘행복한 라짜로’(감독 알리체 로르와커)의 경탄할만한 영화적 기적, 이 영화들은 그들의 감독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까. 하나는 확실하다. 그들은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다.”

"2040년 마스터 자리 설 20명 추려봤다" 

이번 객원 편집자 경험에 대해 봉 감독은 최근 영화잡지 ‘씨네21’ 인터뷰에서 “편집실에 가서 일한 것은 아니고 평소에 영화에 관한 목록 뽑기를 좋아하니까 몇 가지 기획안을 냈다. 숫자 장난으로 올해가 2020년이니까 향후 20년 동안 주목해야 할 작가를 모아보자고 했다”고 했다. 또 “지금 장편 한두 편 만든 감독 중에 2040년에 마스터의 자리에 우뚝 설 사람은 누구일까, 20명을 추려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와 ‘사이트 앤 사운드’ 편집진이 우리 시대의 왕가위, 코엔 형제 감독, 그리고 봉 감독 자신만큼 주목해야 할 미래의 거장으로 선정한 총 20인 영화감독 명단도 전한다. 기사 전체 내용은 이달 발행된 ‘사이트 앤 사운드’ 3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하 괄호 속은 나이, 국적, 최신작 순서.

알리 아바시(39, 이란, ‘경계선’), 아리 에스터(33, 미국, ‘미드소마’), 비간(30, 중국, ‘지구 최후의 밤’), 자이로 부스타만테(43, 과테말라, 더 위핑 우먼), 마티 디옵(37, 프랑스, ‘아틀랜틱스’), 로버트 에거스(36, 미국, ‘라이트하우스’), 로즈 글래스(30, 영국, ‘세인트 모드’), 하마구치 류스케(41, 일본, ‘아사코’), 알마 하렐(44, 이스라엘계 미국, ‘허니 보이’), 커스틴 존슨(54, 미국, ‘딕 존슨 이즈 데드’), 제니퍼 켄트(50, 호주, ‘나이팅게일’), 올리버 라세(37, 프랑스계 스페인, ‘파이어 윌 컴’), 프란시스 리(51, 영국, ‘신의 나라’), 피에트로 마르첼로(43, 이탈리아, ‘마틴 에덴’),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45, 미국, ‘언더 더 실버레이크’), 조던 필(40, 미국, ‘어스’), 제니퍼 리더(49, 미국, ‘나이브스 앤 스킨’), 앨리스 로르와커(38, 이탈리아, ‘행복한 라짜로’), 윤가은(37, 한국, ‘우리집’), 클로이 자오(37, 미국‧중국, ‘로데오 카우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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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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