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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코로나 진앙지 중국, 한국에 "미안하다" 말한 적 있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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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지난달 말부터 매일 아침이면 베이징에서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에 의한 중국 확진 환자와 사망자 수가 전날보다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보도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한국에 전했다.

한 달 만에 뒤바뀐 한국과 중국의 코로나 풍경 #중국 언론이 한국 환자와 사망자 중계 보도 #이젠 중국이 한국인 입국 우려하기 시작해 #옌지 차오양촨 공항은 한국인 전용 통로 마련 #산둥성 일부 지역선 5~7일 강제 격리 방침도 #중국은 이제 한국 걱정하며 도움 주려 해 #그에 앞서 코로나 사태 유감 표명이 맞지 않나

신종 코로나는 잠복 기간이 길고 초기 증상이 없다는 점 등 매우 교활한 특성을 가져 초기 대응 부실을 부른다. 한국도 중국의 전철을 밟는 모양새다. [중국 인민망 캡처]

신종 코로나는 잠복 기간이 길고 초기 증상이 없다는 점 등 매우 교활한 특성을 가져 초기 대응 부실을 부른다. 한국도 중국의 전철을 밟는 모양새다. [중국 인민망 캡처]

한데 한 달 사이 상황이 역전된 모양새다. 이젠 중국 언론이 거꾸로 한국 내 신종 코로나 확진 환자와 사망자 수가 전날과 비교하면 얼마나 늘었으며 또 한국 상황이 현재 얼마나 심각한 지를 보도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 언론의 변신은 지난 21일부터다. 이날 “한국 200 돌파!” 속보가 떴다. 한국의 확진 환자가 200명을 넘어섰다는 거다. 22일엔 “346! 한국 증가 속도가 빠르다”. 24일엔 “한국 하루 231명 늘어 833명” 등 날로 심각해지는 한국 상황을 중계하듯이 보도하고 있다.

중국 언론은 이제 한국 언론의 보도를 인용해 한국 내 신종 코로나 상황을 속보 형식으로 중계한다. 사진은 한국인이 이스라엘 입국 금지를 당한 데 대해 한국 외교부가 항의했다는 연합뉴스 중문 보도를 중국 언론이 캡처해 보도하는 모습.[중국 환구망 캡처]

중국 언론은 이제 한국 언론의 보도를 인용해 한국 내 신종 코로나 상황을 속보 형식으로 중계한다. 사진은 한국인이 이스라엘 입국 금지를 당한 데 대해 한국 외교부가 항의했다는 연합뉴스 중문 보도를 중국 언론이 캡처해 보도하는 모습.[중국 환구망 캡처]

한국 기자가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을 찾았듯이 이젠 서울 주재 중국 기자가 대구를 찾는 진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지난 21일 신천지 교회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가 번지는 걸 보면 식은 땀이 난다면서 한국 걱정도 했다.

갑자기 중국을 한국이 걱정하는 신세가 됐다. 더 기막힌 일은 한국에선 아직도 중국인 입국 금지 문제로 옥신각신 날을 지새우는데 정작 당사자인 중국인은 이제 한국에 가라고 해도 가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한국 입국을 포기하는 중국 유학생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3일 이스라엘 공항에 도착한 한국 여객기에서 한국인 탑승객이 내리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상황이 벌어졌다. [중국 환구망 캡처]

지난 23일 이스라엘 공항에 도착한 한국 여객기에서 한국인 탑승객이 내리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상황이 벌어졌다. [중국 환구망 캡처]

그뿐이 아니다. 중국으로선 이젠 한국에서 오는 사람도 달갑지 않다. 지난 23일 저녁부터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시의 차오양촨(朝陽川) 국제공항이 한국인 승객을 마련한 전용 통로가 그 대표적인 예다.

신종 코로나 수출국 중국이 한국에서 역으로 바이러스가 유입될까 두려워 비상조치를 취한 것이다. 중국으로 들어온 한국인에 대한 조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베이징에선 최근 아파트 단지를 출입하려면 새로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중국 지린성 옌지의 차오양촨 공항은 한국인 탑승객을 위한 별도의 전용 통로를 만들어 다른 국적 승객과의 접촉 최소화 조치를 취했다. 이젠 중국이 한국인 입국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지린성 옌지의 차오양촨 공항은 한국인 탑승객을 위한 별도의 전용 통로를 만들어 다른 국적 승객과의 접촉 최소화 조치를 취했다. 이젠 중국이 한국인 입국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외지에서 베이징으로 들어온 사람은 2주 간 자가 격리를 시킨 후 예후를 관찰하고 있다. 한데 이제까지 한국에서 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입국해 베이징으로 온 한국인에 대해선 이런 격리 조치가 없었다.

그러던 게 24일부터 바뀌었다. 한국인은 집에서 2주 동안 머물며 이상 여부를 살펴야 한다. 문제가 없을 경우 비로소 단지 출입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베이징의 경우는 산둥(山東)성에 비하면 양반이다.

한국에서 다수의 신종 코로나 환자가 나오면서 이젠 중국인이 한국 가기를 꺼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중국 중신망 캡처]

한국에서 다수의 신종 코로나 환자가 나오면서 이젠 중국인이 한국 가기를 꺼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중국 중신망 캡처]

산둥성 웨이하이(威海)와 원덩(文登) 등에선 24일부터 한국인 입국자에 대해 강제 격리 조치를 취한다고 한다. 웨이하이나 원덩을 통해 중국에 도착한 한국인은 중국 당국이 지정한 호텔에서 5~7일 정도 격리된다. 체류 비용은 한국인과 중국 당국이 반반씩 부담한다.

이 기간 한국인은 신종 코로나 감염 여부 체크를 위한 혈액 검사를 받아야 한다. 한국에선 중국인 입국 금지가 코로나 사태 한 달이 넘도록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중국에선 한국 내 급박한 상황 변화에 맞춰 빠르게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각국이 중국인 방문객을 꺼리자 중국은 전세기를 동원해 우한 출신 자국인을 데려왔다. 이젠 한국이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인민망 캡처]

신종 코로나 사태로 각국이 중국인 방문객을 꺼리자 중국은 전세기를 동원해 우한 출신 자국인을 데려왔다. 이젠 한국이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인민망 캡처]

문제는 옌지 차오양촨 공항의 한국인 전용 통로나 산둥성의 강제 격리 조치 등이 중국 내 우리 대사관이나 영사관 등을 통해선 확인이 잘 안 된다는 점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중국의 사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 보복을 떠올리면 답이 나온다. 한국은 중국에 사드 보복을 철회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중국의 대답은 보복한 적이 없어 철회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중국에선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 ‘보복’이 아닌 ‘대응’을 하긴 하는데 한국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한한령(限韓令, 한류 금지)이나 금한령(禁韓令, 한국으로의 단체 여행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한국과 중국의 신종 코로나 상황이 한 달 만에 바뀐 모양새다. 이젠 중국이 한국 상황을 걱정하며 한국인 입국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3일 베이징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한국과 중국의 신종 코로나 상황이 한 달 만에 바뀐 모양새다. 이젠 중국이 한국 상황을 걱정하며 한국인 입국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3일 베이징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그러나 현실에선 엄연히 이런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중국 중앙 정부가 문건이 아닌 구두 형식으로 알아듣게끔 각 부서에 지침을 하달한 결과다. 이번 한국인 입국에 대한 조치도 중앙 정부 차원은 아니라고 중국은 설명할 것이다.

실제로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신종 코로나 환자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고되는 한국과 일본 등과 같은 국가들에 대해 여행주의보 발령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신종 코로나 방역 강화는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 베이징으로 온 한국인은 이제 아파트 단지에 2주 자가 격리를 해 문제가 없을 경우 단지 출입증을 받을 수 있기도 하다. [중국 환구망 캡처]

베이징의 신종 코로나 방역 강화는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 베이징으로 온 한국인은 이제 아파트 단지에 2주 자가 격리를 해 문제가 없을 경우 단지 출입증을 받을 수 있기도 하다. [중국 환구망 캡처]

중국 입국 한국인을 상대로 한 방역 강화 조치는 결국 지방 정부 또는 그 아래 부서의 이름으로 진행되며 파악이 잘 안 된다는 식이다. 베이징의 자가 격리 14일은 아파트 단지 거주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경우로 알려지고 있다.옌지, 웨이하이, 원덩 등은 모두 지방 정부 차원이다. 그래야 중국의 국가 위상이 깎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신종 코로나 사태가 중국에 대한 일대 도전으로 중국이 꼭 극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중국의 경험을 세계와 나누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있지만, 이번 사태 발생에 대한 유감의 뜻을 표명한 적은 없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신종 코로나 사태가 중국에 대한 일대 도전으로 중국이 꼭 극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중국의 경험을 세계와 나누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있지만, 이번 사태 발생에 대한 유감의 뜻을 표명한 적은 없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은 신종 코로나가 점차 확산하는 한국이나 일본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걸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중국 언론은 한국과 일본에 대해 중국의 방역 수단과 경험을 참고하기를 바란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중국이 어려울 때 함께 한다고 한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중국이 도움을 줬다는 걸 국내외적으로 선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중국은 참으로 독특한 나라다. 그런 도움을 운운하기에 앞서 먼저 이처럼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든 상황에 대해 “미안하다” 등의 유감 표명을 해야 하지 않나.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매일 중국 언론을 훑고 있지만, 아직 어디서도 그런 말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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