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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미 상반기 훈련 연기하자" 코로나에 미국이 제안

중앙일보

입력

한·미가 오는 3월 초 예정된 연합연습을 연기하는 방안을 놓고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군대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좁은 벙커에 연합사 인원 500여명 집결 #美, 집단 감염 우려해 먼저 연기 제안 #韓·美 공감하지만 전작권 전환 검증이 고민 #북한의 비핵화 협상 유도에는 긍정적 영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 중인 20일 대구 남구 캠프워커에서 미군이 마스크를 쓰고 근무하고 있다.[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 중인 20일 대구 남구 캠프워커에서 미군이 마스크를 쓰고 근무하고 있다.[뉴스1]

복수의 군 관계자는 24일 “신종 코로나 종식 국면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데 한·미 군 당국이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신종 코로나 확산 상황을 지켜본 뒤 연합연습 일정을 조율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초 상반기 연합연습은 ‘2020년 전반기 연합연습’이라는 명칭으로 오는 3월 9일부터 2주간 진행될 계획이었다. 이는 지난해와 같이 병력이 실제 기동하지 않는 대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이른바 지휘소연습(CPX) 형식의 ‘워 게임’ 개념이다. 이전에는 3월에 CPX 형식의 키리졸브와 야전 실기동훈련(FTX)인 독수리훈련(Foal Eagle)이 함께 진행됐다.

주목할만한 점은 미측이 상반기 연합연습 연기 방안을 적극적으로 제기했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연합연습 과정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미측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 공간에 한·미 군 관계자가 대거 모여야 하는 CPX의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미 연합연습이 열리면 한·미 연합사 지휘부 등 군 관계자들은 경기 성남에 위치한 벙커 CP 탱고에서 훈련을 이끌게 된다. 최대 약 3만3000㎡(1만 평)에 달하는 이곳에 집결하는 연합사 인원은 증원 병력을 포함해 약 500명 정도다. 만에 하나 집단 감염이 현실화될 경우 한·미 군사동맹에 지휘부 공백 사태가 생길 수 있다.

유사시 한미연합사의 지휘소 역할을 하는 CP 탱고 [출처 Military.com]

유사시 한미연합사의 지휘소 역할을 하는 CP 탱고 [출처 Military.com]

군 내부의 신종 코로나 확산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연기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게 하는 요인이다. 미측은 이날 한국군 내부 감염 사례가 최초 발생한 점 등을 근거로 이번 사태의 최대 고비를 향후 1~2주로 보고 있다. 이는 연합연습이 예정된 3월 초와 딱 겹치는 기간이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 방역망이 뚫리기 시작한 주한미군 입장에선 한국인과의 접촉으로 인한 대규모 감염 가능성을 더욱 경계할 수밖에 없다. 대구에 거주하는 주한미군 측 가족 A씨(여·61)는 이날 신종 코로나 양성 확진 판정을 받았다. 주한미군 부대에서 처음 발생한 확진자다.

실제 미측은 한국의 신종 코로나 사태가 위험수위에 달했다고 보고 높은 수준의 위기 신호를 내보내고 있다. 주한미군 측은 한·미 연합사령부 등에 회의는 가급적 화상으로 진행하고, 부득이하게 대면 회의가 열릴 경우 모든 참석자는 마스크를 착용할 것을 권고했다. 보고할 때는 전자 결재를 우선시하고, 대면 보고 시에는 마스크를 쓰고 2m 이상 떨어져 대화하라는 지침도 내렸다.

한국군 당국은 미측의 이런 우려에 공감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나름의 고민이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검증 때문이다. 한·미는 올해 하반기 CPX와 연계해 전작권 전환의 두 번째 검증 단계인 완전운용능력(FOC) 평가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래야만 2021년에 마지막 3단계인 완전임무수행능력(FMC) 검증을 마치고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강조해온 현 정부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완료하는 게 가능하다. 상반기 CPX에 차질이 빚어지면 하반기 CPX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전작권 전환 계획도 늦춰질 수 있다.

박재민 국방부 차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계획된 한·미훈련에 대해 “아직 정해진 바는 없다”며 “코로나19 상황과 연계해 더욱 신중하게 검토해 한·미 간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 일각에선 신종 코로나 여파로 연합연습이 연기된다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끄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상반기 한·미 연합연습의 향방은 24일(현지시간) 미 워싱턴에서 열리는 양국 국방장관 회담에서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정경두 장관과 마크 에스퍼 장관은 양자 회담 후 기존 비질런트 에이스로 불리던 연합공중훈련 전격 연기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실제 군 당국은 당시 사례를 참고하고 있다고 한다.

군 당국자는 “2018년과 2019년 연합공중훈련의 경우 양국 단독 훈련의 형식을 취했지만,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지휘통제체계(C4I)를 활용해 연합연습을 한 것과 같은 성과를 냈다”며 “이번 상반기 CPX에도 이런 방식이 적용 가능한지 살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근평·이태윤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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