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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와 세금주도 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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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방현 기자 중앙일보 내셔널부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문재인 정부의 ‘숙원’인 주류 세력 교체는 권력 상층부에서 가장 밑바닥 조직에까지 진행되고 있다. 전국 읍·면·동 단위 주민자치회는 밑바닥 조직으로 볼 수 있다. 주민자치회는 기존 주민자치위원회를 해체하고 만든다. 명분은 풀뿌리·직접 민주주의 확대와 주민자치 활성화다. 회원을 20명에서 50명까지 늘리고, 멤버도 대거 교체하는 게 특징이다. 정부는 주민자치회를 올해 600개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주민자치회가 자치(自治) 활성화란 취지에 맞게 작동하는지 의문이다. 대전·서울 등 몇몇 지자체를 보면 더욱 그렇다. 우선 세금 낭비 요소가 있다. 대전시는 올해 21개 동(洞) 주민자치회 운영을 위해 15억8000만원을 쓴다. 인건비·운영비·사업비 등이다. 여기에는 자치지원관 연봉(약 4000만원)도 포함됐다. 이 중 대덕구는 자체 예산을 별도로 마련해 자치지원관 인건비를 준다.

자치지원관은 민과 관을 연결하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고 한다. 행정과 주민 사이에 중간지원조직이 있어야 한다는데,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주민들은 “자치지원관은 예산 낭비 인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부 주민자치회장은 자치지원관과 갈등으로 사퇴하기도 했다.

상당수 자치지원관은 이른바 ‘시민단체 출신’이다. 주민자치회원 교육도 시민단체가 맡고 있다. 이러니 “주민자치회가 시민단체 일자리 창출의 도구가 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지지 세력을 조직화하기 위해 만든 주민자치위(주민평의회)와 유사하다고도 한다. 서울시도 이런 자치지원관을 2022년까지 모든 동(424개)에 채용할 계획이다.

자치활동도 후퇴한 느낌이다. 종전 주민자치위원회는 회원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봉사활동을 하거나 동네 축제를 열었다. 반면 주민자치회는 예산을 받아 마을 둘레길 만들기 등 동네 사업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이런 활동도 필요하긴 하지만, 세금 쓸 궁리에 치중하는 느낌이다. 또 주민자치회 기능은 대의(代議)기구인 지방의회와도 충돌한다.

집권 세력은 그동안 시민의 힘으로, 민주시민 교육, 촛불혁명 등 좋은 말은 독차지해 사용해왔다. 일종의 ‘표현의 도덕적 독점’이다. 이런 표현 속의 내용은 부실하거나, 거짓인 것도 많았다. ‘생활 속 민주주의 실현’을 앞세운 주민자치회도 겉과 속이 다르게 가고 있다.

김방현 대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