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에서] 복지전문가 박능후 장관, 신종 코로나 대응에 연이어 한계 드러내

중앙일보

입력

“중국에서 들어온 누군가와 접촉해 감염됐을 개연성이 가장 높은 거잖아요. 정부가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모기를 잡으려고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입니다.”(기자)

“문을 열어놓고 모기를 잡는 것 같지는 않고요. 지금 겨울이라서 아마 모기는 없는 것 같습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지난 21일 박능후 중앙사고수습본부장(복지부 장관)이 브리핑 직후 질의응답 하는 시간에 기자와 주고받은 대화다. 중국 감염원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왜 하지 않느냐는 질의에 박 장관이 농담조로 답변한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넷에는 ‘망언’이라며 정부의 무능함을 질타하는 댓글이 잇따랐다. 코로나 전쟁을 이끄는 사령탑이 엄중한 상황에 전 국민을 상대로 실시간 중계되는 브리핑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왼쪽부터)이 2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코로나19 대응 관련 긴급 보고를 하기에 앞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정세균 국무총리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왼쪽부터)이 2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코로나19 대응 관련 긴급 보고를 하기에 앞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이런 비판과 맞물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처럼 정부의 오판과 과신, 고집이 코로나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 23일 경보 단계를 ‘뒷북 격상’한 것을 두고 말이 많다. 23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부터 며칠이 매우 중요한 고비”라며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경보를 상향했다. 전날 “아직은 지역사회 전파가 초기 단계고 또 부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특정 집단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통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박능후 장관)는 입장에서 하루 만에 위기상황을 보는 인식이 180도 달라진 셈이다. 박능후 장관은 23일 브리핑에서 “어제, 오늘 사이에 어떤 확진 환자의 발생에 양상이 바뀐 것은 아니다. 수만 크게 바뀌었다. 경계단계로 유지할 수도 있었는데 더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7일 네 번째 환자가 발생하자 두 번째로 높은 경보 수준인 ‘경계’로 올린 이후 약 한 달간 이를 유지해왔다. ‘심각’ 단계로 격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며 과신했고 경보를 상향하지 않았다. 지역사회 확산이라는 새 국면에 접어들었는데도 이런 입장을 유지하자 “코로나 사태 진전 상황을 오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불렀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경제적 요인 때문에 주저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정치적 판단에 흔들리고 있단 얘기까지 나왔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 질의를 듣고 있다. 임현동 기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 질의를 듣고 있다. 임현동 기자

선제적 대응을 주문해온 질병관리본부와 달리 중수본 등 정부 부처가 외교 관계를 고려한 탓에 실책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앞서 “중앙사고수습본부에 감염병 위기대응단계를 ‘심각’으로 상향하는 것을 건의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항상 논의 드리고 있다”고 답했었다.

정부의 오판은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엿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방역 당국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흘째 신규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아직도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직 소강 국면이라고 말할 수 없다”(정은경 본부장)는 입장을 유지하던 때였다. 장관이 현 상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대통령이 성급하게 종식을 운운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최대집 회장은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직을 걸고 ‘직보’를 해야 하는데 중국 말을 증폭하는 나팔수 역할을 한다”고 꼬집었다.

의료계와 일부 정치권에서 사태 초기부터 줄곧 필요성을 거론해 온 ‘중국 입국 금지’ 조치와 관련해서도 “타당하지 않다”는 정부의 고집이 방역 실패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박능후 장관은 이 조치가 “옳은 것만은 아니다”면서 “중국에서 들어온 관광객이 감염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중국을 다녀온 내국인들이, 우리 국민이 감염원으로 작동한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최대집 회장은 “우리 국민이 전염시킨다는 헛소리”라고 지적했다.

박 장관은 지난달 29일 오전 우한 교민 전세기 수송을 앞두고 "유증상자도 데려올 방침"이라고 밝혔다가 없던 일이 된 적이 있다. 이날 오후 김강립 차관이 "중국과 협의과정에서 현지 법령을 존중해 무증상자만 이송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협의가 제대로 안 된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중국과 협의를 더 어렵게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달 2일 박 장관은 브리핑에서 중국 전역 여행 경보를 '여행자제'에서 '철수 권고'로 상향하고 관광목적의 중국 방문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그랬다가 정부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철수 권고 조정 방안과 방문 금지를 검토하는 쪽으로 완화했다.

전국의사총연합회는 21일 보도자료를 내 “이번 사태에서 우리의 내면의 부실함이 고스란히 큰 파장으로 드러났다. 그 중심에 무능력한 보건복지부 장관이 있다”며 “껍데기뿐인 장관보다는 그래도 의료지식이 충만한 보건복지부 장관이 있어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장관은 빈곤·기초보장 등의 복지 전문가다. 신종 코로나는 복지와 거리가 멀다. 보건 정책의 핵심이다. 이번 사태는 애초부터 복지 전문가 장관이 맡기에는 한계가 있었는지 모른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