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하경 칼럼

코로나 최고 숙주는 문재인 정부의 중국 눈치보기다

중앙일보

입력 2020.02.2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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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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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은 “중국의 시카고”로 불리는 사통팔달의 첨단 공업도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온상으로 전락했다. 시진핑 1인통치 시스템의 ‘봉쇄’ 결정으로 사투중인 거대 도시의 민심은 흉흉하다. 한 세기 전인 1911년 ‘멸만흥한(滅滿興漢)’의 기치를 들었던 ‘우창봉기’가 바로 우한의 거사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시진핑 정권은 밤잠을 설칠 것이다.

의료·방역 전문가 의견 무시하고
정부가 중국발 오염원 차단 막아
정권 이익이 국민 생명보다 우선
이 나라 주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2200년 전 진시황 이래의 군주제를 끝장내고 쑨원을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으로 한 공화정을 발진시킨 신해혁명의 에너지는 우창의 반역에서 생성됐다. 반역의 함성으로 청조(淸朝)의 전의를 꺾었던 불온한 혁명의 도시 우한의 여론을 전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1912년 3월 공포된 임시 약법(헌법) 2조는 “중화민국의 주권은 국민 전체에 속한다”고 선언했다. 봉건의 낡은 주술에 포박된 신민(臣民)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근대적 주권자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사회주의 중국의 정부가 역병 발생을 숨기고 방치하다가 2000명 이상을 숨지게 했다면 주권재민의 원칙을 파괴한 것이다. 재미 중국인 교수는 “14억 인민보다 당을 우선시하는 공산당 독재가 유지되는 한 위기대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중국인들은 모택동이 농민혁명으로 건설하고 시진핑이 통치하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존재이유를 따져 묻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한국의 집권세력도 문제가 심각하다. 확진자 수 세계 2위가 된 것은 정권이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했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여섯 차례에 걸쳐 중국으로부터의 전면적인 입국금지 조치를 건의했다.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시했다면 이들의 비정치적인 판단을 존중했어야 했다. 그러나 중국의 눈치를 본 정부는 묵살했다. 질병관리본부의 권한도 위축됐다. 결과적으로 다수 국민의 의사와 이익은 무시됐다. 주권재민의 공화제 원칙은 부정됐고, 권력은 국민이 아닌 청와대로부터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시진핑에게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했다. 상대를 배려한 위로다. 그러나 중국의 눈치를 보고 우리 국민을 희생시키는 것은 한국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 중국은 한국 내 환자가 186명에 불과했던 메르스 사태 때 사실상 여행제한 조치를 취했고 관광객들이 한국 여행을 취소했다.

중국의 누적 확진자는 22일까지 7만7041명이며 사망자는 2445명이다. 미국 등 41개국이 중국 전역에 대해 입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중국과 혈맹인 북한과 러시아까지도 국경봉쇄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바레인 등은 한국이 위험수위에 올랐다고 보고 입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이런데도 운명공동체라면서 중국에 대해 전면적 입국금지를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안전 선진국이라는 일본도 무너졌다. 아베 총리는 공격적으로 대응하자는 후생노동성의 의견을 묵살하고 도쿄 올림픽을 지키려다 화를 불렀다.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내부를 살펴본 감염증 전문가는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 당시의 아프리카 보다 훨씬 심각하다. (중략) 혼돈 상태였다”고 했다. 영국에선 “올림픽을 런던에서 개최하자”는 조롱이 나온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언론자유의 최우등생이다. 중국과 일본의 방역망이 무너져 이번 기회에 뛰어난 의료 수준으로 ‘아시아의 파리’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상반기 방한을 추진중인 시진핑을 통해 남북관계 돌파구를 열려다 일을 그르치고 있다. 한국 의료진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중앙임상위원회는 “국민 40%가 감염돼 2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중국 여행자 입국을 전면 금지하지 않으면 악몽이 한반도를 덮칠 수 있다.

중국은 확진자 통계도 조작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런 나라와는 이익공동체는 가능해도 운명공동체는 될 수 없다. 스탈린은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다. 그러나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일 뿐이다”고 했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존재의 개별성, 고유성은 무시된다. 인권은 사치다. 봉쇄된 도시에서 방치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오늘의 중국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민주주의와 국제 규범, 인권을 지키는 문명 국가들과의 관계가 더 소중하다.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하등의 적의(敵意)가 없는 중립적인 존재다. 병도 옮기지만 세균을 죽여 증식을 억제하기도 한다. 지구상에는 약 160만 종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아는 건 단 1%뿐이다. 따라서 방역은 정치나 종교가 아닌 과학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중국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전문성과 경험이 풍부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방역 대통령’으로 생각하고 전권을 줘야 한다.

4년 전 메르스 백서는 “메르스 숙주는 낙타가 아닌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라고 개탄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백서를 쓴다면 “최고의 숙주는 박쥐가 아니라 문재인 정권의 중국 눈치보기”라고 해야 할 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고, 주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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