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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은 대구·경북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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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구·경북에서 처음 환자가 발생한 18일부터 지금까지 국민이 기억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은 두 가지다. 첫 사망자가 나온 20일 ‘짜파구리’ 오찬을 하며 파안대소하는 장면과 그 다음 날 감염 확산의 원인을 ‘신천지’ 탓으로 돌리는 모습이다. 미리 잡힌 ‘짜파구리’ 일정을 취소할 필요까진 없었겠지만 비공개로 조용히 치렀으면 어땠을까. 이 사진을 본 희생자의 유가족과 불안에 떠는 대구·경북 시민들의 심경은 참담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 비판했던 메르스보다 확진자 많아 #국민 보호 위해 몸 던지는 지도자 보고싶어

대통령이 직접 신천지를 거론한 점도 부적절했다. 세월호 사태 때 정부에 쏠리는 비난의 화살을 구원파로 돌린 것과 뭐가 다른가. 근본 책임은 중국인을 입국 금지하지 않은 정부에 있다. 신천지의 폐쇄적인 문화도 짚어봐야 하지만, 본말전도여선 안 된다.

대통령의 ‘남 탓’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해결을 어렵게 한다. 사태 초기 언론과 의사협회의 엄중한 경고를 과도한 불안으로 일축했다. 그러면서 “가짜 뉴스는 국민의 안전을 저해하는 중대한 범죄”(1월 30일)라고 했다. 지난 17일에도 “일부 언론을 통해 지나치게 공포나 불안이 부풀려진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은 “바이러스 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있다”(이인영) 같은 여권의 자화자찬으로 이어졌다.

대통령 스스로 “머지않아 종식될 것”(13일)과 같은 오판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일 또한 필요하다. 2015년 6월 당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메르스의 수퍼 전파자는 정부다. 정부의 불통과 무능·무책임이 국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고 했다. 메르스 확진자(186명) 수를 훨씬 뛰어넘은 지금 대통령은 과거 비판을 자신에게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22일 마감된 ‘중국인 입국금지’ 국민청원도 눈여겨 봐야 한다. 서명에 76만 명이나 참여한 이유는 일찌감치 국경을 폐쇄한 북한·러시아와 달리 후베이성 외엔 입국금지조차 하지 않은 정부의 대응이 납득되지 않아서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하고 국민을 설득하기는커녕 대구·경북에서 확진자가 쏟아진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초기 ‘우한 폐렴’이란 표현을 쓰지 말라던 정부가 공식 자료에서 ‘대구 코로나19’라고 명시한 것도 이 같은 대통령의 공감 능력 결여와 무관하지 않다.

시 주석은 현장에 가지 않는다는 자국민의 원성에 등 떠밀려 우한도 아닌 베이징의 한 병원을 겨우 찾았다. 그의 리더십에 실망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구·경북에는 주말 내내 문 대통령도, 정세균 총리도 보이지 않았다. 지도자가 현장을 가는 것이 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절망과 공포에 빠진 국민에겐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위기일수록 국민은 결연하고 몸을 던지는 지도자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