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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코치 때 우승, 이젠 감독으로 꿈꾸는 김병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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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1996년부터 줄곧 오리온에만 몸담고 있는 ‘원클럽맨’ 김병철. 최근 코치에서 감독대행으로 승격해 지휘봉을 잡은 그가 오리온의 홈경기장 고양체육관에서 슛을 쏘고 있다. 김상선 기자

1996년부터 줄곧 오리온에만 몸담고 있는 ‘원클럽맨’ 김병철. 최근 코치에서 감독대행으로 승격해 지휘봉을 잡은 그가 오리온의 홈경기장 고양체육관에서 슛을 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 홈경기장인 고양체육관 1층에 우승 트로피 네 개가 있다. 오리온에서 이 트로피를 모두 들어 올린 이가 딱 한 명 있다. 선수로, 또 코치로 오리온과 함께한 김병철(47) 감독대행이다.

프로농구 꼴찌 오리온 감독대행 #1996년부터 한 팀서 뛴 ‘원팀 맨’ #고려대-오리온서 전성기 이끌어 #26일 울산 현대모비스와 데뷔전

그는 프로 원년인 1997년부터 13시즌 간 오리온에서 뛰었다. 2002년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통합 우승, 2003년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011년 은퇴한 뒤 그의 등 번호 10번은 영구결번됐다. 2013년 오리온 코치를 맡아 2016년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힘을 보탰다.

고양체육관 1층에 전시된 우승트로피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병철 감독대행. 그는 오리온에서 선수와 코치로 4차례 우승을 모두 함께했다. 김상선 기자

고양체육관 1층에 전시된 우승트로피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병철 감독대행. 그는 오리온에서 선수와 코치로 4차례 우승을 모두 함께했다. 김상선 기자

올 시즌 오리온은 최하위(12승29패)다. 19일 추일승 감독이 책임을 지고 자진해서 사퇴했다. 김병철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승격했다. 20일 고양체육관에서 만난 김 감독대행은 “추 감독님이 ‘무거운 짐을 안겨줘 미안하다. 언젠가는 네가 맡아야 할 자리였다. 너만의 색깔을 입히면 잘할 거고, 그래야 내가 편하게 경기 보러 올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감독님과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추 전 감독은 시즌 중 타임아웃 때 김 코치에게 작전 지시를 맡기기도 했다.

팬들은 인터넷 게시판에 ‘병철이 형이 오리온을 이끌 때가 됐지’라고 적었다. 김병철은 고려대를 졸업한 직후인 1996년 창단 멤버로 대구 동양 오리온스에 합류했다. 인연을 맺은 지 25년 만에 지휘봉을 잡았다.

‘오래 기다렸다’는 얘기에 “코치 경험이 없었다면 앞길이 더 힘들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사실 2003년 자유계약선수(FA)가 됐을 때 다른 팀에서 영입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창단 멤버의 의리로 남았다. 이젠 회사가 가족처럼 느껴지고, 편의점에 가도  오리온 제품에만 손이 간다”며 웃었다.

1997년 프로농구 대구 동양 김병철이 골밑슛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레이업슛을 할 때 체공시간이 길어 플라잉 피터팬이라 불렸다. [중앙포토]

1997년 프로농구 대구 동양 김병철이 골밑슛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레이업슛을 할 때 체공시간이 길어 플라잉 피터팬이라 불렸다. [중앙포토]

대구 동양 시절이던 2001~02시즌, 김병철은 김승현·전희철·마르커스 힉스·라이언 페리맨과 ‘막강’ 베스트 5를 구성했다. 1998~99시즌 대전 현대 베스트 5(이상민·조성원·추승균·조니 맥도웰·재키 존스)와 함께, 프로농구 역대 양대 최강팀으로 꼽힌다.

2002년 동양 오리온스 힉스(왼쪽)의 레이업슛을 SK 서장훈이 막고 있다. [중앙포토]

2002년 동양 오리온스 힉스(왼쪽)의 레이업슛을 SK 서장훈이 막고 있다. [중앙포토]

김 감독대행은 “내가 뛰어서가 아니다. 역대 최강이라 자부한다. 다른 팀이 우리 만나는 걸 겁냈다. 힉스는 맘만 먹으면 뭐든 다했고, 페리맨은 리바운드왕이었다. 공을 잡아 순식간에 속공을 밀고 올라갔다. (김)승현이가 패스를 주면 내가 뛰어가서 3점슛 2~3개를 연속해 꽂았다. 그러면 상대는 전의를 잃었다”고 회상했다.

김 감독대행은 선수 시절 3점슛을 1000개 이상 성공했다. 그 감각이 남아 있을까. 궁금하다고 했더니 그는 그 자리에서 5개 던져 모두 성공시켰다.

오리온 슈터 허일영(35)은 “3점슛은 물론, 무빙슛 연습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전했다. 김 감독대행은 “선수 때 3점슛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무빙슛, 미는 슛, 스냅을 이용한 슛 등으로 폼을 계속 바꿨다. (허)일영이는3점슛 타점이 높아졌고, (이)승현이는 대학 시절보다 3점슛 시도가 늘었다. 또 타이밍도 빨라졌다”고 말했다.

2011년 6월 26일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고려대와 연세대 OB 농구팀의 라이벌 매치. 연세대 OB팀 이상민(아래) 이 골밑으로 드리블하다 고려대 OB팀 전희철과 김병철의 수비에 막혀 넘어지며 외곽으로 패스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1년 6월 26일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고려대와 연세대 OB 농구팀의 라이벌 매치. 연세대 OB팀 이상민(아래) 이 골밑으로 드리블하다 고려대 OB팀 전희철과 김병철의 수비에 막혀 넘어지며 외곽으로 패스하고 있다. [중앙포토]

선수 시절 여드름 난 앳된 외모로 별명이 ‘플라잉 피터팬’이었다. 김 감독대행은 “고려대 시절, 한 손 레이업을 할 때 체공 시간이 길어 얻은 별명”이라고 설명했다. 대학 시절 함께 뛰었던 전희철(47) 서울 SK 코치, 현주엽(45) 창원 LG 감독과 지도자로 대결한다. 또 연세대 출신 이상민(48) 서울 삼성 감독, 문경은(49) 서울 SK 감독도 상대한다. ‘대학 시절 연세대가 더 강하지 않았나’ 묻자 그는 “내가 4학년 때 고려대가 전관왕이었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고양체육관에 걸려있는 오리온 선수들 사진을 배경으로 사진촬영한 김병철 감독대행. 그는 10여년 전 은퇴 후 인터뷰는 오랜만이라며 어색해했다. 김상선 기자

고양체육관에 걸려있는 오리온 선수들 사진을 배경으로 사진촬영한 김병철 감독대행. 그는 10여년 전 은퇴 후 인터뷰는 오랜만이라며 어색해했다. 김상선 기자

김 감독대행은 26일 울산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홈에서 데뷔전을 치른다. 올 시즌 남은 경기는 13경기. 시즌이 끝나고 나면 ‘대행’ 꼬리표를 뗄 전망이다. 그는 “멀리 보기보다 바로 앞에 놓인 경기를 잘 치르겠다. 선수들을 잘 추스르겠다. 남은 경기를 잘해야 그 분위기가 다음 시즌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창의적이고, 재미있고, 절실한 농구를 하겠다”는 그는 훈련 도중 선수들을 향해 “신나게 해”라고 외쳤다. ‘2001~02시즌을 기대해도 될까’라는 질문에 그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기대해달라”고 대답했다.

고양=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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