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뒤늦게 라임펀드 판 산업은행, 판매·관리 모두 아마추어

중앙일보

입력 2020.02.23 12:00

업데이트 2020.02.24 09:54

서울 여의도동에 위치한 산업은행 전경 [뉴시스]

서울 여의도동에 위치한 산업은행 전경 [뉴시스]

대규모 투자손실이 예고된 라임자산운용 펀드를 판매한 곳 중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도 있다. 이 은행의 라임 펀드 검증·판매 과정에서 내부통제 기능이 상당히 부실했음이 드러났다. 사후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고객 혼란도 가중됐다. 국책은행의 아마추어식 대응이다.

산업은행 본점 찾은 고객 세 명  

지난 17일 오전 9시 30분, 산업은행 고객 세 사람이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을 찾았다. 이들은 지난해 7월 산업은행 각 지점에서 '라임레포플러스9M(이하 레포플러스)'펀드에 가입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라임 펀드를 28개 계좌, 37억원어치(2019년말 기준) 팔았다. 판매 규모가 작다보니 고객 목소리도 작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산업은행 본점을 찾은 건 담당 부문장을 만나 상황을 아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7월에야…판매 시점부터 어설펐다 

제보에 따르면 이들 고객이 레포플러스에 가입한 시점은 지난해 7월 3일부터 8일 사이다. 이들은 이에 의문점을 제기한다. 산업은행이 대체 왜 7월이 다 돼서야 라임펀드를 가져왔냐는 것이다.

산업은행이 고객들에게 판매한 라임펀드 '라임레포플러스9M'의 상품 설명서. [제보자 제공]

산업은행이 고객들에게 판매한 라임펀드 '라임레포플러스9M'의 상품 설명서. [제보자 제공]

레포플러스는 환매가 중단된 '라임플루토-FI D-1호(이하 플루토)'를 60% 편입했다. 플루토 펀드는 우리은행이 지난해 3월쯤 부실 가능성을 인지하고 그해 4월 초 판매 중단하기로 한 펀드다. 시중은행에서 석달이나 앞서 판매 중단한 펀드를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지난해 7월에 판매한 데 대해 고객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유 모를 '투자위험 4등급' 

레포플러스의 투자위험등급도 문제로 지적된다. 산업은행이 작성한 투자상품 안내문에 따르면 레포플러스의 투자위험등급은 4등급이다. 고객들은 산업은행이 지점 책상 위에 붙여둔 펀드 위험등급표 상 4등급 펀드는 고위험자산을 50% 미만 또는 중위험 자산을 60% 이상 편입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확인 결과 이 등급표는 금융감독원에서 정한 공모펀드 기준 등급표와 같았다.

레포플러스는 고위험자산인 플루토를 60%, 저위험자산인 라임레포우량채권펀드(이하 우량채권)를 40% 편입하고 있다. 지점에 비치된 등급표 기준에 맞지 않는다. 산업은행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기업은행 역시 4등급으로 동명(라임레포플러스9M)의 펀드를 팔긴 했다. 하지만 기업은행이 판매한 펀드는 플루토를 40%, 우량채권을 60% 담고 있어 등급표상 4등급 기준을 충족한다.

산업은행 지점 내 직원 책상 등에 붙어있는 펀드 투자위험등급 표. [제보자 제공]

산업은행 지점 내 직원 책상 등에 붙어있는 펀드 투자위험등급 표. [제보자 제공]

산업은행은 이에 대해 "해당 등급표는 공모펀드 기준이라서 사모펀드인 레포플러스와는 상관 없다"며 "사모펀드는 운용사가 자체적으로 펀드 위험등급을 정하고, 판매사는 상품선정위원회를 거쳐 문제가 없는지만 확인한 뒤 출시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라임은 플루토 펀드가 위험자산을 편입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사기임이 드러났다"며 "우리 역시 금융사기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한 고객은 "산업은행 판매 창구엔 해당 등급표 외 펀드 등급을 알려주는 또 다른 안내서가 없었다"며 "일이 터진 뒤 '그 표가 아니라면 대체 어떤 기준에 따라 레포플러스를 4등급으로 매겨 안내한 거냐'고 수차례 물어도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감원 지시 전엔 못 돌려줘" 

고객들이 레포플러스에 가입한 지 며칠 뒤인 지난해 7월 말, 라임운용 관련 의혹 보도가 처음 터졌다. 당시 산업은행 직원들은 "걱정 말라, 라임운용은 우리나라 제일의 운용사고 우리은행에서도 5000억원 정도나 가입했다"며 고객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라임운용이 환매 중단을 선언한 이후인 지난해 11월 초 산업은행은 "환매가 조금 늦어지는 것뿐이다. 정 안되면 산업은행에서 고객 원금을 선지급하고 나중에 라임 측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플랜B도 고려할 것"이라고 고객들에게 설명했다. 그러나 금감원의 라임 중간검사 발표가 나온 최근엔 "금감원 지시나 소송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돈을 돌려줄 수 없다"며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점 찾았는데…"저라면 잊은 듯 살겠다"

서울 여의도동에 위치한 산업은행 본점 앞을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서울 여의도동에 위치한 산업은행 본점 앞을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고객들이 지난 17일 산업은행 본점을 찾은 것도 그래서다. 이들은 펀드 판매 최고 책임자인 중소중견금융부문장과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산업은행은 사실상 이를 무시했다. 실무 담당자는 해당 부문장과의 면담 일정을 잡아달라는 요구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담당자가 자리를 뜬 뒤 고객들은 본점 소비자보호부 소속 직원에게 연락해 만났다. 하지만 직원의 대응도 실망스러웠다. 고객 A씨는 "직원이 '자기가 당사자라면 38%(우량채권 분)를 받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잊은 듯이 살다가 나머지(플루토 분)는 청산 작업 후 배당이 이뤄질 때 공돈 생겼다는 식으로 생각하겠다'고 하더라"며 "산업은행이 내 재산을 공돈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 아니겠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은 "해당 직원이 업무상 담당자가 아닌데도 평소 친분이 있던 고객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연락을 받고 이들을 대응하던 중 고객 건강을 우려하는 차원에서 그런 얘기를 한 것"이라며 "고객을 기만하려는 의도가 아닌데, 다르게 해석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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