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창업하기 딱 좋은 나이"…기술 '유니콘' 꿈꾸는 4050

중앙일보

입력 2020.02.22 07:00

"50대요? 스타트업하기 딱 좋은 나이죠."

최천욱(55) 대표는 지난해 핀테크 스타트업 엠마우스를 설립했다. 대기업 퇴직후 식당을 크게 운영하면서 창업 아이디어를 찾았다. 가불(월급중간 정산)을 원하는 아르바이트생과 사장 사이에 모바일 앱이 있으면 가불이 더 수월하겠다는 생각이다. 최 대표는 "스타트업 운영은 리스크를 돌파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의 반복이라 경험과 지식, 지혜가 두루 있어야 한다"며 "그런 능력을 갖춘 지금 내 나이가 창업하기 좋은 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엠마우스가 개발한 앱은 6개 외식 프랜차이즈의 가맹점 등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최천욱 엠마우스 대표. [사진 엠마우스]

최천욱 엠마우스 대표. [사진 엠마우스]

최 대표처럼 경험과 연륜을 살려 기술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40~50대 창업자들이 늘고 있다. 창업진흥원이 발간한 '창업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기술 분야 창업자 가운데 40~50대 비율이 2013년 67.6%에서 2018년 71%로 5년 새 3.4%p 증가했다. 올해부터는 정부도 일부 창업 지원 사업에서 지원대상의 연령 제한을 폐지했다. 이전까지는 만39세로 제한됐다.

미 기술벤처 상위 0.1%, 45세에 창업 

수퍼빈 김정빈(47) 대표 역시 "요새는 다들 너무 이른 나이에 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것 같다"며 "기업에 먼저 들어가 시행착오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수퍼빈 김정빈 대표. [사진 수퍼빈]

수퍼빈 김정빈 대표. [사진 수퍼빈]

김 대표는 40대 초반에 중견 철강회사 코스틸 그룹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회사를 나온 2015년 수퍼빈을 설립했다. 김 대표가 개발한 '네프론'은 쓰레기의 가치를 분류하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현재 서울 어린이대공원, 잠실, 제주도 등에 85대가 설치돼 운용 중이다. 기술력과 사업성을 인정받은 수퍼빈은 2018년 디지털 기기 업체 휴맥스로부터 20억원 상당의 투자를 받았다. 현재도 20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5년 안에 회사를 기업 가치 1조원 유니콘으로 성장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기술 창업은 창업자의 연륜이 풍부할 수록 성공률도 높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이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4년까지 270만 명의 창업자가 회사를 처음 세울 당시의 평균 나이는 41.9세로 나타났다. 기술 관련 업체로 범위를 제한하고, 그중에서도 상위 0.1%의 성장을 이룬 스타트업만 골라 봐도 창업 시점의 평균 나이는 45세였다.

비즈니스 모델로 승부해야

2015년 음반 사업에 뛰어든 석철(48) 뮤즈라이브 대표는 2018년 스파크랩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경험했다. 전문 엑셀러레이터인 스파크랩은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을 선발해 지분 일부를 받고 투자한다.

석철 뮤즈라이브 대표. [사진 뮤즈라이브]

석철 뮤즈라이브 대표. [사진 뮤즈라이브]

석 대표는 20대 초반 의류 사업을 하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 그는 "젊을 때는 절대 망하지 않겠다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며 "나보다 스무살 이상 젊은 창업자들을 만나면 자신감이 아닌 비즈니스 모델로 경쟁하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뮤즈라이브는 음반 키트를 만드는 회사다. 스마트폰의 이어폰 단자에 키트를 연결하면 화면에 음원·뮤직비디오 같은 콘텐트가 재생된다. 지금까지 뮤즈라이브가 제작한 음반 키트 120만 장이 판매됐다. SM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유명 기획사 소속 가수들의 음반을 키트로 만든 것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실물 음반으로 스트리밍 서비스와 경쟁하는 사업이다. 석 대표는 "키트 음반은 소장 가치가 있어 스트리밍 서비스에 비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치를 만드는 일...시니어 창업자의 장점

'시니어 창업자' 3명 모두 소프트웨어 개발자 출신은 아니다. 아이디어를 고안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정립한 뒤 창업했다. 이후 개발자를 영입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낸 경우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엠마우스 최천식 대표는 "창업초에 개발자를 뽑겠다고 면접을 봤는데 내가 물어볼 수 있는 말이 '집이 어디냐' 정도 밖에 없더라"며 "사람을 잘 뽑으려면 내가 아는 게 있어야겠다 싶어 닥치는대로 공부했다"고 털어놨다. 김정빈 대표도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초기, 외주 개발사에 사기를 당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모델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허 9개를 보유한 석 대표 역시 "아이디어를 구현해 줄 조력자가 있다면 창업자가 개발자가 아니어도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엠마우스는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의 혁신금융사업자로 선정됐다. 엠마우스의 가불 핀테크는 근로자가 출퇴근 인증으로 일한 적립한 근로시간을 근거로 이를 언제든 현금으로 지급해주는 방식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최저임금 근로자가 월급날 전에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혁신적인 기술력과 소외계층을 위한 아이디어가 만나 규제 샌드박스 특례를 받게 됐다.

최 대표는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인적 인프라가 훌륭하다. 정부에서도 다양한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며 "사업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다면 중장년도 스타트업에 도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빈 대표는 "이젠 제품 자체보다 '소비하고 싶은 가치가 있는 제품'인지가 더 중요한 시대"며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 중장년이 그런 가치를 찾는다면 창업에 도전해볼 만 하다"고 말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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