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생각을 위한 작은 책 〈1〉 아이자이어 벌린 『고슴도치와 여우』
![루이프랑수아 르죈(1775~1848)이 그린 ‘모스크바 전투’. 7만 명의 사상자를 낸 이 전투는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의 주요 무대다. 아이자이어 벌린은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이분법으로 『전쟁과 평화』를 분석했다. [사진 브리지먼 예술 박물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002/22/bda32a53-9785-45fb-beda-f089a7b6bddd.jpg)
루이프랑수아 르죈(1775~1848)이 그린 ‘모스크바 전투’. 7만 명의 사상자를 낸 이 전투는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의 주요 무대다. 아이자이어 벌린은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이분법으로 『전쟁과 평화』를 분석했다. [사진 브리지먼 예술 박물관]
고전은 영혼의 보약, 경쟁력의 엔진이다. 그러나 고전은 어렵고 시간도 없다. 다른 재미난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번에 새로 연재하는 ‘큰 생각을 위한 작은 책’은 얇은 고전에 주력한다. 우리 인생에서 영원히 못 읽을지도 모르는 두꺼운 고전보다는, 일단 최소 수십 페이지에서 최대 200페이지 분량의 얇은 고전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혹시 아는가? 얇은 고전과 친해지다 보면 두꺼운 책들의 고전 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 목침 크기 고전도 팜플렛 사이즈와 맞먹는 ‘가볍게’ 보이는 고전도 우리 삶에 소중한 영감을 줄 수 있다. 독서는 생각의 실마리다. 크고 넓은 생각은 작고 엷은 책에서도 나올 수 있다.
고슴도치 ‘빅픽처’ 결단력 좋아 #여우, 뉘앙스·모순 편하게 느껴 #전체·이상주의에 반대한 벌린 #마르크스 시대에 반론 제시 #영원한 ‘자유주의의 사도’로
굳이 따진다면 여러분은 청자(聽者, listener)인가 화자(話者, talker)인가.
말을 ‘듣는 것’과 ‘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을 조금이라도 더 잘하시는가. 더 편한가.
책이나 어떤 텍스트를 읽는 독자(讀者)로서는 다독가(多讀家)인가 정독가(精讀家)인가.
견자(見者)로서는 나무와 숲 중에서 어느 쪽에 더 애정이 가는가.
억지로라도 딱 한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좌파인가 우파인가.
# 얇은 두께 고전도 영혼의 보약
세상은 컬러다.
하지만 세상을 흑백으로 보는 이분법(二分法)이 강렬하다. 칼러에 맞는 ‘무한분법(無限分法)’은커녕 삼분법(三分法)·사분법(四分法)마저도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는다. 흑백이 팽팽히 맞선 구도에 회색의 목소리를 넣으려다 당장 ‘사쿠라’로 매도당한다.

고슴도치와 여우
20세기 정치철학과 문학 비평으로 손 꼽히는 『고슴도치와 여우』(1953)는 글 쓰는 사람과 생각하는 사람을, 즉 인간을 ‘고슴도치형’과 ‘여우형’으로 나눈다.
책 제목은 고대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코스(기원전 680년께~645년께)가 한 이 말에서 나왔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단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안다(A fox knows many things, but a hedgehog one important thing).”
저자인 아이자이어 벌린(Isaiah Berlin, 1907~97)은 러시아계 영국인 철학자·지성사가(historian of ideas)다. 관심과 업적이 워낙 넓어서 사실상 분류가 불가능한 인물이다. (그의 퍼스트네임인 ‘Isaiah’는 우리 성경에도 나오는 ‘이사야’다. 영국 발음 기준으로는 ‘아이자이어’, 미국 발음으로는 ‘아이제이어’다.)
아이자이어는 ‘영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은 사람이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도 그의 똑똑함에 탄복했다. 벌린은 1935년에서 1975년까지 옥스퍼드대에서 학자 생활을 했다. 영국학술원장(1974~78)을 지냈으며 1957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아이자이어 벌린 캐리커처. [사진 아르투로 에스피노사]](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002/22/695c8c9e-739d-4537-ac2b-26c1c8d2e5b7.jpg)
아이자이어 벌린 캐리커처. [사진 아르투로 에스피노사]
고슴도치와 여우에 대해 벌린은 이렇게 말한다. "거대한 골이 패어 있다. 한 쪽에는 모든 것을 단일하고도 중심적인 비전과 결부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쪽에는 여러 가지 상호 관련성이 없으며 심지어는 모순되는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첫 번째 유형의 지식인과 예술인은 고슴도치에 속한다. 두 번째 유형은 여우다.”
(그런데 저자 벌린은 독자들을 일단 ‘흑백 논리’로 꼬신 다음에 그들을 회색이 있는 세계와 총천연색의 세계로 안내한다.)
책의 부제는 ‘톨스토이의 역사관에 대한 에세이(An Essay on Tolstoy’s View History)다. 벌린은 ‘고슴도치 vs 여우’ 이분법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타난 역사관을 분석하는 데 활용했다. 일반적으로 『고슴도치와 여우』의 독자들은, 톨스토이가 고슴도치가 되기를 바랐던 여우라고 생각한다. (『고슴도치와 여우』는 문학이나 톨스토이를 지극히 사랑하지 않으면 상당한 인내력이 필요한 책이다. 그러나 도전해 볼만하다.)
# 처칠도 벌린의 똑똑함에 탄복
멀리는 아르킬로코스, 가까이는 벌린이 유행시킨 ‘고슴도치-여우’ 이분법은 끊임없이 재해석을 낳고 있다.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는 작가들이 ‘고슴도치-여우’ 분류법에 매료됐다. 21세기 환경에서는 고슴도치와 여우 중에서 누가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큰가에 대한 논란도 설왕설래 뜨겁다.
예컨대 필립 테틀록 펜실베이니아대 석좌교수(심리학)에 따르면 고슴도치는 큰 생각(big idea)·빅픽처(big picture)가 있다. 모든 문제를 한 가지 원칙으로 환원한다. 결단력이 좋다. 반면 여우는 뉘앙스나 모순을 편하게 느낀다. 여러 접근법에 대해 개방적이며 문제마다 다른 전략을 구사한다.
# 단 하나의 최종적 진리는 없어
무엇이든지 두 가지가 있으면, 그 두 가지는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자유와 평등이 충돌하며 벌린이 『자유의 두 개념』(1958)에서 분류한 ‘포지티브’ 자유와 ‘네거티브’ 자유가 충돌한다. 우리 내면에서 아마도 지금 이 순간에도 여우와 고슴도치가 서로를 일단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아이자이어 벌린은 단 하나의 진리, 최종적인 솔루션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는 공산주의를 포함한 전체주의·유토피아주의에 반대하고 다원주의·자유주의를 옹호했다.
사족처럼 말한다면 역사에는 고슴도치가 승리하는 때와 여우가 승리하는 때가 있을 것이다.
자유는 자유다 … 평등·공정도 정의도 자유를 대체할 수 없어
“부정의·가난·노예제·무지와 같은 문제들은 개혁이나 혁명으로 고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오직 악(惡)과 싸우며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개인적이거나 공동체적인 포지티브(positive) 목표로 산다. 인간이 추구하는 다양한 목표는 대다수가 예측가능한 경우가 흔하지 않으며 어떤 때는 공존할 수 없다.”
-『자유에 대한 에세이 4편(Four Essays on Liberty)』(1969)
“자유는 자유다. 자유는 평등도 공정도 정의도 인간의 행복도 조용한 양심도 아니다.”
-『자유의 두 개념(Two Concepts of Liberty)』(1958)
“인간사에서 완벽한 해법은 실용적으로나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작심하고 완벽한 해법을 시도하면 그 결과는 고통·환멸·실패일 가능성이 크다.”
-『인간성이라는 굽은 목재: 지성사의 여러 장(章)(The Crooked Timber of Humanity: Chapters in the History of Ideas』(1990)
“허풍 없이 기존 생각의 저항을 물리친 새로운 진리는 희귀하다.”
-『비코와 헤르더(Vico and Herder)』(1976)
“우주에 대한 묘사와 설명을 시도하지 않고서는, 인간이 살 수 없다.”
-1962년 ‘선데이타임스’

김환영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