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을지로·청계천…낯익은 곳, 낯선 여행

중앙일보

입력 2020.02.21 00:04

업데이트 2020.02.2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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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세운상가 옥상 전망대에 내다본 서울 야경. 남산 아래로 충무로와 을지로가 이어진다. 먼데의 환한 빌딩과 달리 세운상가 주변 건물은 깜깜하다. 세운상가는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다. 50년 전만 해도 서울의 랜드마크였다는 뜻이다.

세운상가 옥상 전망대에 내다본 서울 야경. 남산 아래로 충무로와 을지로가 이어진다. 먼데의 환한 빌딩과 달리 세운상가 주변 건물은 깜깜하다. 세운상가는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다. 50년 전만 해도 서울의 랜드마크였다는 뜻이다.

천변풍경 2020.
어쩌다 구보씨 흉내를 내고 말았다. 서울의 낡은 골목에서 90년 전 ‘모던 뽀이’를 떠올린 건, 그때나 지금이나 황금광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우리네 딱한 처지 때문이었다. 구보 박태원(1909~86)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1934년 스물여섯 살 구보씨가 정오부터 이튿날 새벽 2시까지 경성 시내를 어슬렁거린 소설적 기록이다. 경성 시내라지만, 오늘로 보면 청계천 광교에서 을지로~충무로~남대문 일대다. 총 이동 거리는 약 10㎞이며, 이 중에서 전차로 이동한 거리는 약 5.7㎞다. 다시 말하는데, 다른 속내가 있어 식민지 청년의 자취를 되밟은 건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개장한 서울도보해설관광 ‘충무로·을지로 골목’을 걷다 문득 떠오른 이름, 아니 인연이었다.

해설사 동행 도보관광 프로그램
식민지시대 구보가 걸은 골목길
근대화의 뒤안길 둘러보는 여행

구석구석 골목 투어

필동 뒷골목 ‘예술통’. 통인증사진 찍으며 놀기에 딱 좋은 명당이다.

필동 뒷골목 ‘예술통’. 통인증사진 찍으며 놀기에 딱 좋은 명당이다.

우선 길을 소개해야겠다. 서울도보해설관광은 서울관광재단이 운영하는 도보관광 프로그램이다. 신청하면 문화관광해설사가 동행한다. 걷기여행길 이름에 ‘해설관광’이 붙은 까닭이다. 모두 232명의 해설사가 활동하고 있단다. 나는 김도경(61) 해설사와 같이 걸었다.

모두 38개 코스가 있는데, 개중에서 2.6㎞ 길이의 ‘충무로·을지로 골목’ 코스를 골랐다. 요즘 뜨는 ‘힙지로’를 헤집는다고 했다. 여태 숱하게 거닌 길이지만, 은근히 기대가 일었다. 낯익은 곳에서의 낯선 경험만큼 흥미로운 여행도 없으니까.

길은 지하철 충무로역 4번 출구 앞에서 시작한다. 남산한옥마을 어귀인데, 남산한옥마을은 따로 코스가 있어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예술통’이라 불리는 골목으로 빠졌다. 상점과 주택이 뒤섞인 필동 뒷골목이 아기자기한 벽화와 감각적인 조형물로 꾸며져 있었다. 골목 식당의 주인 얼굴을 그린 벽화를 뜯어봤다. 20명 남짓한 상인 대부분이 골목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골목에서 활력이 배어났다.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터줏대감 을지OB베어.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터줏대감 을지OB베어.

충무로를 지나고 을지로 골뱅이골목도 지나 노가리골목에 들어섰다. 허구한 날 불야성을 이루는 바로 그 생맥주 골목이다. 많은 사람이 골목을 장악한 ‘만선호프’를 알고 있지만, 이 골목의 원래 주인공은 네댓 평 남짓한 ‘을지OB베어’다. 이 집이 1980년 문을 열면서 을지로 인쇄골목의 한 갈래가 생맥주의 성지로 거듭날 수 있었다. 1000원짜리 연탄불 노가리를 곁들인 생맥주 맛은 차라리 눈물겹다. 겨울 4도 여름 2도. 이 집이 40년째 지켜온 생맥주 온도다. 구순 넘은 아버지에 이어 가게를 지키는 딸 내외와 생맥주 한 잔 따라놓고 한참 수다를 떨었다.

세운상가 옥상에서 내려다본 을지로 인쇄골목.

세운상가 옥상에서 내려다본 을지로 인쇄골목.

청계천에 다다랐다. 길은 청계천의 22개 다리 중에서 수표교를 건넌다. 수표교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온다. 이 다리에서 김두한이 하야시를 물리쳤다. 일제강점기 청계천과 남산 사이 남촌에 일본인이 모여 살았다. 본정통(本町通)과 황금정(黃金町). 그 시절 충무로와 을지로의 이름이다. 본정통의 하야시 세력이 청계천을 넘으려는 걸 종로의 김두한 세력이 막아 세웠다.

세운상가 가는 길

세운상가 전자박물관에 전시 중인 전자부품.

세운상가 전자박물관에 전시 중인 전자부품.

괜스레 으쓱했던 기분도 잠시. 길은 가슴 시린 현대사의 현장으로 이어진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기념관. 1970년 노동삼권 보장을 외치다 스러진 스물세 살 청년 전태일을 기린 공간이다. ‘평화시장 어느 맞춤집에서 시다를 구한다고 해서… 한 달 월급 1500원이었다. 하루에 하숙비가 120원인데 일당 50원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아침 일찍 여관 손님들의 구두를 닦고 저녁 늦게는 껌과 휴지를 팔아…’ 열일곱 살 청년의 일기(1965년 8월 25일)를 읽다 목이 메었다.

이윽고 종점 세운상가에 도착했다. 세운상가는 건축가 김수근(1931~86)이 설계한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다. 1967년부터 72년까지 세운, 현대, 청계, 대림, 삼풍, 풍전, 신성, 진양상가가 차례로 세워졌다. 상가만 연결해도 1㎞에 이른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전자기기와 부품을 팔다 손수 진공관 라디오도 만들었다. 다시 세운 프로젝트.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사업의 이름이다. 청년의 발랄한 감각이 이름에서 도드라졌다.

세운상가에서 직접 만든 로보트 조형물 ‘세보트’.

세운상가에서 직접 만든 로보트 조형물 ‘세보트’.

구석구석 상가를 쏘다니다 해가 졌다. 9층 옥상 전망대에 다시 올랐다. 환히 불 밝힌 광화문 일대 고층빌딩과 달리 상가 주변 낮은 건물은 깜깜했다. 구보씨 시절에는 경성의 돈과 권력이 모여 흥청거리는 거리였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인쇄소와 철공소로 들썩이는 골목이었던 충무로와 을지로가 이제는 늙고 낡아 힘에 부치는 모습이었다. 청년 예술가가 골목을 단장하고 예술가를 따라 카페와 식당이 들어오면서 ‘힙지로’로 거듭났다지만, 아직 충무로와 을지로의 밤은 어둡다. 그래도 희망을 읽는다. 사람이 들어오고 있어서다. 재생과 재개발은 사람과 공간의 우선 순위에 따라 갈라진다.

남산 아래 불 꺼진 충무로가 눈에 들어왔다. 한때 한국 영화의 대명사였던 거리를 추억하다 지난주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감독을 떠올렸다. 구보의 피를 물려받은 감독은 낯익은 서울을 낯설게 재현해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90년 전 외조부도 남달리 재현한 천변풍경으로 문학사에 길이 이름을 남겼다. 우연치고는 얄궂다고 생각했다.

세운상가

세운상가

이용정보
서울도보해설관광 해설프로그램은 무료다. 홈페이지 (korean.visitseoul.net/walking-tour) 또는 모바일 앱에서 예약할 수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중단했던 무료 해설프로그램을 21일 재개한다. 02-6925-0777.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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